내 맘에, 내 몸집에 맞는 옷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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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4.0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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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 방향의 재검토
한삼건교수의도시이야기
▲ 1962년 최초의 울산도시계획도.
주체의식 잃은 울산공업센터 개발

앞서 연재된 글에서 울산 삼산 신시가지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됐는지 살펴보고, 이어서 울산의 성격을 상징하는 성곽유적을 활용한 도시디자인 필요성에 대해 적은 바 있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했던 울산 도심지역 도시계획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왜 요구되는지, 또 도시계획의 일관성은 어떻게 담보돼야 하는지 다뤄 보고자 한다.

울산을 아는 이라면 설명이 필요 없지만, 지난해 울산은 공업센터 지정 50주년과 시승격 50주년을 함께 맞았다. 지금부터 만 51년 전 그때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지정된 국가공단이자 최초의 계획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한 울산은 우리 겨레와 민족의 부귀와 번영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그 결과는 세계사적으로도 평가받을 만큼 대단한 성과로 나타나서 울산사람으로서 큰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십이분 감안하더라도 초창기 개발이다 보니 그 시절 울산개발에 적용된 설익은 방법론과 좁은 시야는 현재의 시각에서 볼 때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즉, 울산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정부가 그네들의 전쟁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 개발하기 시작했고, 1962년부터 박정희 정부는 일제강점기의 이 개발계획을 입수해 실현에 옮김으로써 좁게는 군사 혁명의 당위성을 획득했고, 넓게는 우리나라의 지금모습을 만드는 초석을 성공적으로 놓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울산을 중심으로 바라볼 때 이런 일련의 과정은 정작 울산은 개발 주체에서 빠져버린 타자(他者)에 의한, 타자를 위한 개발로 이해된다. 그러다보니 공업센터는 울산이라는 땅에서 씨를 뿌리고 성장했지만 그 주체는 언제나 중앙정부나 타 도시에 본사를 둔 재벌회사, 그 회사에 소속돼 잠시 근무하다 돌아가는 임직원들이었다. 울산을 내 것으로 돌아보는 주인의식도 책임도 생겨나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런 측면은 지방정부인 울산시에서도 드러난다. 즉, 적어도 기초시였던 1997년 이전의 울산에서 도시 성장과 발전에 울산시가 진정한 자기결정권을 가진 경우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중앙집권식 체제와 상의하달식 조직문화에서는 기초시인 울산시와 거기에 소속된 공무원의 의사결정권은 처음부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울산이 중앙정부 주도로 개발되다보니 대통령 이하 수많은 상급자가 관심을 가지고 이 도시를 지켜보고 있었고, 또 단기간 부임해 와서 일하다 떠나는 임명직 시장이 시정을 주관하는 행정체제에서는 도시계획의 연속성이나 일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웠고, 중앙정부의 시각이 아닌 울산의 독자적인 발전 전략을 갖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광역시 승격과 기본도시계획 수립

그러나 울산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은 드디어 1997년 7월 15일에 광역시 승격이라는 비원을 이뤄내게 했다. 필자는 여러 강연에서 서기 997년에 고려 성종이 울산을 방문한 이후 꼭 1천년 만에 얻은 광역시승격을 딱 맞아떨어지는 ‘1000’이라는 수와 함께 울산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기회가 다시 왔다고 이야기 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신라 멸망 후 수도 외곽 국제무역항의 지위를 잃고 실의에 빠진 울산은 성종에 의해 ‘흥려부’에서 ‘공화현’으로 낮춰지고, 더 나아가 직접 울산을 찾은 왕에 의해 지역 세력이 결정적으로 해체됐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후 울산은 고려 현종 임금때인 1011년에 ‘울주성’이 축성되고 이어서 1018년에 방어사가 주둔한 이후 조선말기인 1895년까지 변방의 군사도시로 운명이 결정됐던 것이다. 그러던 울산이 이로부터 다시 102년이 더 지난 1997년에 광역시가 돼서 광역지방자치단체가 된 것이므로 그 의미가 특별하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도 1997년 이후 지난 15년간의 울산변화는 괄목할 만해서 광역시 승격의 의미가 새삼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이가 많을 것으로 본다.

사실 광역시 승격 역시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울산시와 광역시승격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활동은 정말 대단했으며 특히 당시 울산지역 정치인들의 역할이 광역시 승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필자로서는 크게 안타깝게 생각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광역시 승격 이후 울산의 미래 청사진에 관련된 문제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짚어보기 위해 울산의 도시기본계획을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도시기본계획은 지난 1981년의 도시계획법 개정으로 처음 도입돼 도시의 장기발전 구상이 가능하게 됐다. 이 제도 도입으로 울산시도 2001년을 목표연도로 하는 울산도시기본계획을 1986년에 처음으로 수립했고, 이후 매 5년마다 수정된 기본계획이 만들어 지고 있다. 2011, 2016, 2021, 2025 울산도시기본계획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2016년을 목표연도로 하는 울산도시기본계획은 1997년 7월에 정부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아서 결정·고시됐다. 광역시 승격에 앞서 울산은 1995년에 도농통합시가 돼 기존 울주군이 합쳐진 거대 행정구역을 갖추고 있었다. 이 시기에 2016 울산도시기본계획이 수립된 것이다. 그런데, 기초시인 도농통합시와 광역시는 그 위상이 전혀 다른데다가 정부로부터 2016도시기본계획이 최종 승인된 것은 광역시 승격 불과 2-3일 전이었다. 이 말은 광역시 승격 후의 울산발전 비전을 이 기본계획에 제대로 담아낼 수 없었다는 뜻이다. 광역시 승격여부가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어느 실무자가 승격 이후의 비전을 담고자 시도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듯이 당시 지역의 모든 관심과 정치적인 움직임은 오로지 광역시승격에만 맞춰져 있었다. 그 때문에 온 시민이 합심노력 한 결과 광역시 승격은 이뤄냈지만 승격 후의 도시발전 비전은 제대로 만들 기회도 없었고 시도도 해 보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2016 울산도시기본계획은 처음으로 울주군 지역을 포함하는 도시계획 틀을 담아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간선 가로망과 언양, 두동, 웅촌 등의 도시계획지정 정도에 머무르고 있어서 기초적인 접근에 머물렀다고 하겠다. 특히, 기존에 개발된 중구, 남구, 동구 등의 시가지를 대상으로 한 기본계획 내용은 2001년을 목표연도로 했던 1986년의 계획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찾기 어렵다. 사실 2013년은 2001년 기본계획 수립 기준연도인 1980년에 비해 만 33년, 수립시점인 1986년에서 만 27년, 그리고 목표연도인 2001년을 12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이미 계획에서 그린대로 도시가 완성이 됐다. 다만 남부순환도로에서 울산대교로 접속되는 도로 정도가 계획과 상이할 뿐이다.

도시변화 반영·자체 계획 통한 재개발

그런데 의문스러운 것은 2001 도시기본계획에 뒤이어 수립된 2011, 2016, 2021, 2025년 기본계획 모두 중구, 남구, 동구 등 도심구역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담아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기초시와 광역시는 그 성격을 초등학생과 대학생 정도의 차이로 설명 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울산시가 1986년의 도시기본계획 틀을 가지고 지금 현재 2025년을 얘기하고 있는 것은 초등학생에서 이미 대학생 몸집이 됐는데도 앞으로 20년 후에까지도 계속해서 초등학생 몸집에 맞는 옷만 사들이려고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물론, 울산시는 그동안 중장기 발전계획과 그 수정계획을 비롯해서 많은 장기 계획들을 수립해 왔다. 결코 미래비전을 수립하지 않거나 그 중요성을 모르고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런 중장기 발전계획을 비롯해서 교통계획과 공원녹지계획 같은 모든 관련 계획이 도시기본계획과 부합돼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설명하자면 우리 제도상 도시 계획의 경우 도시기본계획이 가장 상위 계획이기 때문에 여기서 받아주지 않는 하위계획이나 관련 계획은 사실상 쉽지가 않다. 만일 이대로 간다면 울산의 기존 시가지는 현재 모습에서 도로망의 성격도 바꾸기 어렵고 다리를 더 만드는 일도, 용도지역을 조정하는 일도 기대하기 어렵다. 즉, 개발이 완료된 기존 도심의 질적인 개선과 재생을 통해 광역시로서의 새로운 비전을 담아낼 수 없다는 말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 기본계획도 마찬가지다. 현재 2020년을 목표연도로 84개 지구 약 600만 평방미터가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 고시돼 있다. 치밀하게 조사하고 분석해 구역을 설정했기 때문에 이들 대상지는 모두 노후화가 많이 진행됐고, 기반시설이 취약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도시기능의 회복이 필요하거나 주거환경이 불량한 지역”의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주거생활의 질을 높이는데 이바지”하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도시구조를 바꾸는 개념보다는 건축물의 질을 높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점을 뒤집어 보면 울산시내의 84개 정비예정 지구 모두를 정비해도 집은 새집이 되지만 도시공간의 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아파트경기가 둔화되고 그 결과 모든 재개발이 중단된 상태에서는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도시재개발을 통해 도시기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도시기본계획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그 실현 방안을 담아내 주어야 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앞의 내용을 다시 정리해 보자. 울산의 경우는 1997년에 광역시 승격이라는 근본적인 도시여건의 변화를 겪었지만 이를 반영한 도시기본계획은 수립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했다. 도시기본계획은 20년 장기 계획이다. 문자 그대로 20년 후의 모습을 담아내는 계획이지만 그 목표상은 양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현재의 틀에 머무르고 있다.

이렇게 된 근본 이유는 도시계획 수립 주체가 장기비전의 중요성 보다는 기계적인 기본계획 수립에 무게를 둔 행보를 해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는 울산이 광역시인 만큼 스스로의 도시문제를 파악해서 해결하고 비전을 제대로 제시할 도시전문가를 독자적으로 육성해야 되지만, 그런 필요성을 도외시한 채 도시계획이나 도시디자인 전문가를 거의 대부분 외부지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일관성과 연속성이 담보된 학술적인 도시연구는 기대하기 어렵고, 기술적인 용역마저도 거의 대부분 타 지역 소재 기관이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결코 울산의 높아진 위상에 부합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도시발전에도 큰 장애가 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 점이 울산으로 해금 여전히 타자에 의한 도시에 머무르게 하는 상당한 이유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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