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이 신라의 원류’ 방증 속속 출토
‘울산이 신라의 원류’ 방증 속속 출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3.19 22: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주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실장
▲ 이주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실장
중산리 4세기 적석목곽분 황남동보다 빨라… “유적보전 힘 써야”

“중산리 고분군에서 확인된 적석목곽분은 4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신라 중심부라 할수있는 황남동, 황오동에서 발견된 적석목곽분은 5세기에 축조된 것이다. 울산지역 세력이 경주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주현 학예실장은 울산에서 성장한 일단의 세력이 대구, 포항과 연결되는 경주지역으로 진출,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신라문화의 태동이 울산에서 시작됐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 실장은 국내 고고학계 정상급 발굴 전문가다.

지금까지 몇 번의 발굴 작업을 주도 했나

대학시절부터 매년 1차례 이상 유적발굴조사에 참가했다. 1983년부터 지금까지 50여 차례 이상 참가한 것 같다. 1990년 문화재관리국 소속 문화재연구소에 근무한 뒤 발굴조사원으로 현장에 상주하면서 발굴을 주도한 것은 약 40여 건 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발굴은

모든 발굴조사가 기억에 남는다. 그 중 대학교 3학년 때 발굴조사 전 기간 동안 참가한 울주군 청량면 양동고분군과 1992년 경남 함안에서 우연히 발견된 도항리 마갑총 발굴조사가 가장 인상 깊다.

양동고분군은 경주지역에서 많이 확인되고 있는 적석목곽분이 울산에서 처음 확인된 것이다. 신라 초기세력의 형성과정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라 생각된다.

함안 도항리 마갑총은 아라가야의 중심인 함안 도항리 고분군 인근의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공사도중 발견됐다. 발굴조사 결과 한기의 목곽묘에서 고구려 벽화고분, 삼실총이나 쌍영총 등에 묘사된 갑옷을 입고 말을 탄 개마무사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갑옷과 비늘갑옷이 발굴돼 당시 크게 보도된 바 있다. 특히 말 갑옷은 이전에 발굴됐던 다른 것보다 모습이 정연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해 주요 일간지와 방송 등에서 톱뉴스로 보도됐다.

신라 발생기원을 울산이라고 추정하는데 사료가 있나

울산은 선사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무문토기시대 주거지가 울산 전역에 걸쳐 많은 수가 확인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당연히 체계화된 사회조직이 만들어지게 되고 이것이 하나의 정치체로 구성돼 고대사회에서 소국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울산지역에서도 이런 정치체가 선사와 고대를 거쳐 형성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울산지역은 바다를 이용한 대외교역의 중심지로 내륙에 위치한 경주지역보다 교역이 활발했을 것으로 보여 신라세력 형성과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울산의 중산리고분군에서 확인된 4세기 전반 무렵의 적석목곽분은 신라의 중심부인 황남동이나 황오동지역에서 발견된 적석목곽분보다 이른 시기에 조성된 유적이다. 이것은 신라 정치체 형성과정에 울산지역의 세력이 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라시대 울산의 역할은 어느 정도였다고 보는가

경주를 중심으로 성장한 신라세력은 대외적인 교역로의 확보가 매우 중요했을 것인데 울산은 이런 신라의 지정학적인 현실을 충족시키는 역할을 했다. 신라의 중요한 대외 교역항으로 고대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며 서라벌의 부심지로서의 역할도 했을 것이다.

처용을 신라와 교역하던 아랍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처용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설화다. 처용을 실제 역사적 인물로 봐야 하는가는 별도의 문제다. 그러나 삼국시대 이래로 외부와 접촉이 많았던 울산에 이국(異國)사람들이 많이 왕래했음은 분명하다. 특히, 아랍에서 쓰여진 여행기에 신라를 ‘황금의 나라’ 로 소개한 기록도 있는 것을 보면, 아랍세계와 신라와의 교류가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처용이 아랍과 관련된 인물이란 추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처용암의 가치는 대단한 것 아닌가

처용설화와 관련된 유적이 울산에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삼국유사의 기록과 관련지어 이 지역을 잘 관리하고 역사적인 유적으로 스토리텔링 한다면 울산을 보여주는 하나의 공적인 재산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유산의 활용적인 면에서 처용암의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역사유적은 사실여부를 떠나 보존해야 하는데

당연히 보존해서 울산의 자랑거리로 후손들에게 전해줘야 한다. 사라진 역사의 사실을 하나씩 찾아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이 미래의 울산지역 역사를 창조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유적지의 개발과 보존 중 어느 쪽이 우선순위인가

유적지는 보존돼야 한다. 점 단위의 보존보다 면 단위의 넓은 환경을 고려한 보존이 우선돼야 한다. 작은 유적이라도 철저한 보존이 이뤄져야 하며, 현실적으로 필요한 개발은 가급적이면 유적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을 중심으로 일정한 지구를 정해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관심을 갖고 있는 울산의 유적은

울주군 웅상면에 있는 무문토기시대 환호 유적인 검단리 유적과 경주와 경계지역에 있는 관문성 유적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검단리 유적은 울산지역 선사시대 문화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중요 유적이며 전체가 사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또 관문성은 외부에서 신라의 중심지인 경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요즘으로 말하면 공항이나 항만과 같이 출입국관리를 담당하는 곳이다. 울산과 경주의 관계와 성격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연구소 조사 유적의 대부분이 경주의 왕경유적이다. 특히, 5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발굴조사를 진행한 안압지 동편유적, 현재는 유적 명칭이 바뀌어 동궁과 월지라고 부르는데 이곳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에 열중할 생각이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안압지의 모습이 크게 바뀔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하나씩 발굴되고 있어 앞으로 조사의 결과가 크게 기대된다. 정종식 기자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