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색 지역혼 담아내야 ‘남다른 도시’ 된다
지역색 지역혼 담아내야 ‘남다른 도시’ 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3.1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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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 세계적인 것’ 역사문화 장소 보전 필수
건축물은 최소 50년 붙박이… 애초 밑그림 중요
한삼건교수의 도시이야기

도시디자인을 잘 하는 길이 없을까. 이 문제에 관여하고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9회까지의 글에 대한 중간정리를 겸해서 도시디자인 방법론 한 가지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 도시 미관을 해치는 태화강 주변에 겹겹이 들어선 아파트들은 녹지를 막고있어 도시환경 재디자인이 필요하다.

보통 ‘디자인’하면 그 요체는 ‘창의성’에 있다. 남의 디자인을 베끼는 순간 거의 모든 디자인은 2류가 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도시디자인도 다른 도시에 없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디자인이 분명히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나 건축물 정도의 사이즈가 되면 이전 것과 전혀 다른,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이란 사실 상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이전에 있었던 것을 참조하고, 연구해서 새로운 건축디자인이 탄생됐으며 도시가 만들어져 왔다. 실제로 20세기 이전 유럽은 물론 지금의 건축설계 교육에서도 ‘건축역사’ 공부가 크게 중요시 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도시나 건축물이 인간이 사용하는 보통의 물품에 비해 사이즈가 특히 크고, 그리고 특정한 장소에 뿌리박고 있다는 태생적인 한계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커다란 몸집 전부를 아주 새롭게 바꾸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효율을 생각할 때 굳이 전체 모양을 바꿀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도시나 건축이 특정 장소에 고정되어 있어서 생기는 문제는 많다. 입지에 따라 열대, 온대, 냉대 등 기후조건이 달라지고, 사막이나 숲, 고산지대, 평원, 수변 중 어디에 위치하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생업과 생활은 완전히 달라진다. 일본국민은 지진대에 속하는 일본열도에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과거에도 앞으로도 지진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만 한다.

▲ 일제시대 울산도시계획도.

도시나 건축이 가진 이런 측면은 현대자동차 제품이 전 세계 어디에서나 팔리고, 삼성이 만든 스마트폰이 남극까지 가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도시디자인에는 ‘장소’에 대한 이해와 장소를 읽어내는 ‘감각’이 요구된다. 특정 도시가 입지한 곳의 기후 풍토와 지형은 물론이고 그 장소에서 이어져온 사람들의 생활문화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가지고,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그 도시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공부가 도시디자인의 바탕이 된다는 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하나의 도시는 고유의 장소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엄밀하게 따지면 이 세상에는 같은 입지 조건을 가진 도시는 두 곳이 있을 수 없으며, 더구나 역사를 함께하는 도시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바로 이런 점이 도시나 건축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개발’을 담당하고 있고, 기초학문이 아닌 실용과 응용학문인 공학이라는 학문영역에 속하면서도 ‘건축역사’와 ‘도시역사’를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특정 도시의 독특한 기후풍토와 식생, 역사와 문화는 모두 도시디자인의 기본자산이자 출발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울산 도시디자인을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될까.

▲ 현재 수리조합 사업과 비행장 확장으로 본 모습을 잃은 삼산동의 옛 모습.

첫째, 울산이라는 땅을 알아야 한다. 산과 강, 바다, 해안선, 마을, 도시 등등 빠짐없이 조사하고 파악을 하되, 도시계획과 디자인을 위한 기본자료라는 관점에서 축적하고, 나아가서 이 자료를 도시계획과 디자인에 접목시키고 활용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필자는 지금까지 일제강점기에 울산이 어떻게 개발됐으며, 1962년의 공업센터 지정 과정과 이후의 개발이 조선총독부나 우리 정부가 필요로 했던 부분만 떼어서 개발하고 소비했다고 지적해 왔다. 그 지적은 이런 일이 가진 당시의 시대적 한계나 국가적 당위성을 지금 시점에서 일방적으로 비판하거나 깎아내리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간 일을 거울삼아 그런 전철을 밟지 않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울산을 개발하고 관리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제대로 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잘 아는 것처럼 울산은 1997년에 광역시가 되었다. 자치권한이 기초시일 때에 비해서 엄청나게 신장돼 울산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열어나갈 길이 열리고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런데도 광역시 승격에 힘을 쏟았던 그 만큼의 노력과 열정을 이후의 울산 도시계획이나 디자인에 쏟지는 않고 있다. 이는 결국 도시계획과 디자인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로 읽혀진다.이런 분위기는 앞으로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우선 도시기본계획과 도시 관리계획을 광역시 패러다임에 맞게 새로 짜고, 행정시스템을 도시의 장기비전을 마련하는 쪽으로 특화하고, 울산발전연구원 같은 기관이 도시발전 마스터플랜 구상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또, 경전철 도입같은 대중교통수단의 획기적인 개선방안과 도시고속도로 건설, 중구와 남구 구도심의 토지이용 개선과 질적 제고, 울산만의 활용 등이 현안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도시디자인 관점에서는 해안선과 항구, 태화강변 디자인 등에 힘을 기울이고, 문수산과 무룡산, 영남알프스 등 산과 봉우리를 염두에 둔 가로망 구상과 시가지개발을 할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공장입지도 문제이다. 농촌자연마을을 뒤덮은 축사와 창고 입지도 분명 문제이다. 시가지 주변의 녹지와 그린벨트를 가로막은 두 겹, 세 겹의 장벽같은 아파트단지개발도 도시디자인이나 도시환경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는 못하다.

두 번째는 울산의 도시역사를 알아야 한다. 도시디자인이 개성있는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울산의 도시역사를 잘 살피고 이것을 디자인에 반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먼저 울산시와 구군의 실무자가 울산을 잘 알아야 하고, 나아가서 울산을 잘 알고 있는 업체가 도시계획과 디자인을 해야 한다. 이는 ‘기술적 측면’ 뿐 아니라 ‘학술적 측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공무원과 실무자 양성을 위해 울산에서 울산 도시디자인을 담당할 전문가를 교육시켜야 한다. 울산이 필요로 하는 여러 인재 상(像) 중에 도시계획이나 디자인을 비롯한 도시문제를 담당할 지역인재 양성은 특히 중요하다. 이런 일은 울산시가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그렇듯이 과거에 있었던 울산의 개발사업이나 사건은 모두 나름대로 당시의 논리가 개입돼 있고, 그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으로 결정되고 만들어져서 오늘에 전하고 있다. 어떤 일이 생겨난 까닭과 그것이 울산 땅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흔적을 남겼는지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도시개발을 하고 도로를 만들고, 공원을 만들 때 가장 큰 시사점을 던져 준다. 즉, 울산이라는 현장의 교과서 속에는 오늘 우리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울산발전을 이끌어줄 열쇠라는 조상의 선물이 담겨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서 지난 100년간 우리가 울산 땅을 잘못 개발해 온 몇 가지 사건에서도 반성과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삼산, 반구동, 병영성, 개운포 등 역사적인 장소가 개발된 과정이다. ‘구강서원지’를 보면 조선후기에도 반구동 내황마을에 있던 시장에서는 멀리 황해도, 함경도의 상선이 늘상 드나들면서 곡식, 해산물, 담배, 소금무역이 성했다. 이런 포구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의 ‘울산수리조합’사업으로 태화강제방이 만들어지면서 명맥이 끊어졌다. 땅 몇 평과 논의 물세를 위해 울산의 유구한 역사와 도시풍경을 영원히 바꿔 버린 것이다. 울산의 명승인 삼산도 이 수리조합 사업과 뒤이은 비행장 확장으로 사라졌다.

한편, 개운포 일대는 일제강점기 이후의 공업단지계획으로 사라졌다. 공단개발을 하더라도 울산의 성격을 드러내는 이런 역사현장은 남길 수 있었는데도 이 장소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처용암이나 개운포성은 공단과 쓰레기 매립장으로 포위되어 버렸다. 병영성 안과 밖도 토지구획정리사업과 도로개설로 예전 모습은 대부분 바뀌어 버렸고, 계변성과 울산 고읍성이 있었던 반구동 서원마을과 학성동 학성제2공원 등도 아파트와 각종 건물로 뒤덮여 버렸다. 이들 성터는 모두 1980년대 이후 울산시의 급격한 인구증가에 따른 택지공급 때 그 운명이 결정되어 버렸다.

도시디자인에서 해당 지역의 지형과 역사풍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디자인 방향이 결정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절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장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도시의 태생적인 한계와 너무 규모가 커서 일시에 도시디자인을 바꿀 수 없는 현실적인 제약조건을 감안하면 도시디자인은 결국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그리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울산 도시디자인에서 이 원칙이 지켜질 때 가장 개성 넘치는 울산만의 도시디자인도 자리를 잡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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