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으로의 초대
바람으로의 초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3.1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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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작업실은 몹시도 추웠습니다. 마음이 추웠는지 몸이 추웠는지 정말이지 소스라치게 차가운 공기의 여운은 한참동안이나 난로 앞을 지키고 있어야 가시곤 했습니다.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는 작업실이지만 반 평 남짓한 베란다가 위안이었고 턱을 괴고 저 멀리 자연의 잔상을 바라볼 때면 세상의 모든 만물이 봄을 기다리는구나 생각하곤 했습니다. 얼마 전, 쪽방촌 사람들의 겨울나기를 한 매체에서 접했을 때, 너무 추울 땐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따라 춰 본다며 웃으시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차마 함께 웃을 수는 없었습니다.

위로 받고 싶을 때 있으신가요?

지난겨울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이 어쩌면 너무 많았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망하고 좌절하고 큰 상처를 안은 이들에게만 위로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스치는 바람에도 마음이 시리고, 가벼운 말 한마디에도 가슴을 베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함께가 아니며 때로는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오늘은 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위로가 필요한 이들의 시선이 잠시나마 머물렀으면 좋겠네요. 저는 어린 시절 ‘파란나라’라는 동요를 즐겨들었습니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면 왠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처한 현실이 힘들면 힘들수록 마냥 즐겁던 어린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현실에서 벗어난 이상의 세계, 미지의 세계, 파란나라의 세계로 불어오는 바람이 데려다 주는 듯 했습니다.

날리는 공간 속 부유물이나 자연현상을 보고 있자면 나도 바람이 되어 어디론가 날아가는 기분 좋은 상상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 아늑하고 유쾌한 상상의 끝에는 특별한 기억을 가져다주는 물건, 여행에서의 즐거웠던 기억, 살아가면서 동경해왔던 대상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또 바람이 되고 그 바람을 마음에 담아 바람을 그립니다.

작업실에 나와 순간순간을 채워나갈 때, 삶의 고단함이 사라질 만큼의 위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빠져 있다 보면 자연히 ‘몰입’이 됩니다. 자기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위로의 형태는 바로 그 ‘몰입하는 순간’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정말이지 온전하게 몰입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내가 몰입 할 수 있는 대상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대상을 알기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책을 통해 음악을 통해 그림을 통해 우리는 보다 다양한 삶의 면적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낯설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매사 접근하다보면 분명 나와 꼭 맞는 몰입의 대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도하고, 시도하고 또 시도해보아도 도통 내게 위로가 될 만한 몰입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 때, 결코 체념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책 ‘니체의 말’에서의 철학자 ‘니체’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시점을 바꾸거나 역발상을 하거나 끊임없이 바라고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끝내 지친다면, 이젠 그것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부릅뜨고 주시하라. 무슨 일을 해도 바람이 불어와 순조로운 진행을 방해한다면 이제부터는 그 바람을 이용해 보라. 돛을 높이 올리고 어떤 바람이 불어오든 모두 순풍으로 만들어라’

앞의 책에는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자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이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길 원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을 향해 던지고, 성실하고 확고하게 대답하라. 지금까지 자신이 진실로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자신의 영혼이 더 높은 차원을 향하도록 이끌어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무엇이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기쁨을 안겨주었는가? 지금까지 자신은 어떠한 것에 몰입하였는가? 이들 질문에 대답하였을 때 자신의 본질이 뚜렷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몰입 할 수 있는 삶이라면 분명 세상은 아름답고 인생은 행복할 것입니다. 사실 이번 주에는 저도 위로를 받습니다. 그동안 힘들게 작업했던 저의 목판화로 전시회를 하거든요. 최근 몇 년 길고긴 터널을 불안과 긴장 속에 지나왔었습니다. 한 주 동안은 아주 환하게 보낼 생각입니다.

봄도 왔고 전시도 왔고 한줄기 바람도 불어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가던 길 쉬지 않고 또 걸어가고 싶습니다. 바람과 함께 말이지요.

<이하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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