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적 진단은 평화적 정권교체 때, 대통령 정치권력 인수위원회(?), 특히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가 했었다. 이 진단의 결과가 친기업적 정부 정책을 입안한다고 하여 일자리 창출을 장담했었다. 영어교육도 정책진단에 따른 처방의 하나로, 영어가 국제화 시대에 필수적인 요소이어서 철저하게 영어실력을 배양한다고 외치고, 구상했었다. 기타 실리외교의 절박함을 진단하여 실리외교의 실행으로 미국도 다녀오고, 우리 대통령은 대단한 대접도 받았다. 그러나 이 정책진단에서 결정적 결함이 있었다.
좌파정권 10년 동안, IMF사태 이후에 표면으로만 떠오른 민생고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운동권 출신들의 격분에만 그친 처방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것이다. 정규직의 증원을 기피하는 기업정서(企業情緖)는 기업가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로 인한 실업자의 급증과 더불어 비정규직의 증원은 서민들의 가슴에 멍을 들게 하였다. 직업의 안정성이 없으니 나라 안의 소비(내수)가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극히 일부만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이것을 보는 어느 특정 단체는 양극화라는 이름으로 서민층의 화를 부추겼다. 일부 생산업체는 수입하는 원자재의 폭등으로 생산 단가가 휘청거리는데, 다른 일부 특정 업체만 달러화의 강세로 호황을 누리는 절름발이 국민경제가 서로를 화나게 만들었다. 있으면 있는 데로, ‘내 돈 내가 벌었어!’, 없으면 없는 데로, ‘우리가 없으면 너 혼자서 돈 벌 수 있었어?’의 화가 속으로 잠복해 있다가 촛불시위로 터져 나왔다.
좌파도 없고 우파도 없이 먹고 사는 데에만 매달려온 서민들이 지난 10여 년 간 잔뜩 울화가 치밀어 있는데, 누가, 정말 누가 인터넷이건 특정 단체의 모임이건 간에 화풀이의 불씨를 지폈다. 촛불 시위의 촛불은 촛불이 아니라 화(火)풀이 불이다. 권력의 맛을 느껴본 그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하는 일에 사사건건 호시탐탐 시비를 걸고넘어질 것이라고 모 일간지가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 경고했었다. 이 경고를 제대로 받아들였으면 촛불에 불 붙일 건수를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정책진단에 오진이 있었고 이에 따른 정책 실행에 착오가 생겼더라도 이제는 이 불씨를 누가 붙였는지, 쇠고기 수입협상이 잘 못되었으면 그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 제3자의 입장에 사법부가 처방을 내려야 한다.
권토중래(捲土重來)할 기회만 엿보고 있을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건재함을 보여줄 처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