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젖줄 역사 입혀 ‘문화의 강’ 만든 주역
울산젖줄 역사 입혀 ‘문화의 강’ 만든 주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3.05 21: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미연 대곡박물관 학예사 인터뷰
구곡문화 남은 태화강 유교문화 증언
영남 천주교 중심… ‘언양학’ 수준 연구
건축에 관심, 인문학적 접근 전시욕심
대곡박물관 박미연 학예사. 그는 태화강의 격조를 한 단계 높였다. 강 상류에 있었던 울산 구곡문화를 밝혀냄으로써 태화강이 단순한 하천이 아니라 ‘문화의 강’임을 증명했다. 구곡도록을 기획·편찬하면서다. 박 학예사는 ‘언양학’이라고 할 정도로 언양에 무궁무진한 자료가 있다고 한다. 최근 발간된 천주교 관련 도록도 그 연장선에 있다. 대구 출신이면서도 울산지역 역사문화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구곡문화에 많은 관심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울산 구곡문화의 특징은 무엇인가.

주자의 성리학과 구곡이 16세기 이래로 조선에 와서 꽃피웠다.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구곡도가를 짓고 구곡도를 남기고 구곡을 경영했다. 우리나라에는 80여 곳의 구곡이 남아있다. 특히 퇴계와 율곡의 학맥을 이은 경북과 충북지역에 집중돼 있고 경상도 남쪽에는 울산의 3곳과 기장의 1곳에만 존재한다. 울산의 구곡은 백련구곡, 반계구곡, 굽이마다 바위면에1곡, 2곡이라 새긴 이른바 각자(刻字)구곡 3곳인데 모두 사연댐과 대곡댐에 걸친 대곡천 유역에 집중돼 있다. 구곡은 구곡가(九曲歌), 구곡도(九曲圖), 5곡에 건립되는 정사(精舍)로 표현된다. 도와 최남복이 경영한 백련구곡은 이 모두가 남아있는 흔치 않는 예이다. 우리나라의 구곡 중에서도 구곡도로 남은 것은 단 7곳이다. 구곡을 경영했다는 것은 성리학적 전통이 남아있다는 의미로 산업도시의 이미지만 강한 울산에 유교 문화가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일반인들이 구곡문화에 접근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은가.

울산의 구곡이 위치한 대곡천에는 국보인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을 비롯해 암각화박물관과 대곡박물관이 있다. 대부분이 댐에 수몰돼 있어 아쉽지만 문화자원들이 한자리에 있는 좋은 답사처이다. 구곡이 위치한 곳은 경관도 빼어난 곳이다. 앞으로 울산의 구곡을 알려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필요성도 있다.

대구 출신이다. 울산 구곡문화에 관심을 갖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울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대곡박물관이 대곡댐 유적의 전시에만 그치지 않고 울산 서부지역의 역사와 문화로 주제를 넓히는 것으로 박물관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일환으로 현재 서부 지역의 역사와 생활상을 이해하고 자료로 남기기 위한 마을조사도 진행 중이다. 대곡박물관 개관을 준비하면서 대곡천 유역의 자료를 조사하던 중 백련구곡도를 찾아냈다. 논문에 실린 작은 사진이었는데 개관까지 실물을 찾아 전시를 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특별전으로 백련구곡도와 울산의 구곡을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고, 개관1주년 기념으로 구곡문화를 주제로 한 특별전을 열었다. 진짜 실물 백련구곡도의 소장처를 찾는 것이 과제다.

2010년 발행한 구곡문화 도록 도판 해설을 맡았다. 이 정도면 상당한 지식이 있다고 봐야 하는데.

전시를 기획하면서 구곡문화에 대한 사상적 의미와 구곡도에 대한 자료조사를 했다. 보통 전시준비의 8할은 전시주제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와 자료를 찾는데 둔다. 구곡문화 특별전에서는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정리되지 않은 우리나라 구곡의 현황을 정리할 수 있었고, 울산 뿐만아니라 연구자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백련구곡도를 소개할 수 있어 보람을 느꼈다.

해설판을 만들 때 어려움은 없었는가.

어려움이라기보다 중국 복건성에 있는 주자의 무이구곡이나 우리나라의 구곡을 실제답사를 해보지 못했고 울산의 구곡도 수몰 전에 못해봐서 생생한 자료를 싣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후에라도 백련구곡도나 반계구곡도를 현대에 재구성해서 그림으로 남기고 전시를 했으면 한다.

요즘 전시되고 있는 천주교 관련 유물전시 기획도 맡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역시 전시자료를 대여하는 일이었다. 대부분 천주교 관련 기관을 통해 대여를 해야 했는데 천주교 자료는 교계에서 성물(聖物)로 숭배하는 것들로 대여 사례도 없었기에 쉽게 허가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여결정 후에는 적극적 협조를 해주셨다. 천주교 신자도 아니고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천주교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또한 어려움이었다.

전시 준비를 하면서 울산 천주교 역사에 대해 느낀 게 있나.

울산에는 천주교 유적지가 많이 남아있다. 특히 언양은 영남 남부에서 최초로 신앙공동체가 생긴 곳으로, 조선에 천주교가 들어오고 6년 뒤의 일로 아주 이른 시기에 천주교의 싹이 텄다. 창녕 성씨 양반 가문이나 향리 가문의 역할이 컸음이 특징이다. 이후로도 언양은 많은 성직자를 배출해 영남 남부 천주교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죽림굴 등 많은 천주교 유적지가 남아있어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답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주교 쪽을 택한 이유는 뭔가.

언양과 울산 서부지역의 마을조사를 하고 있다. 근대 울산 서부지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주교 수용의 역사를 이해할 필요성이 있었다. 특정 종교의 관점이 아니라 언양의 지역사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면서 전시를 준비했다. 하반기에는 석남사와 불교문화에 대한 전시도 계획하고 있다.

전시를 기획·시행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뭔가.

가장 중요한 것이 전시 주제에 대한 충분한 연구다. 내용 없는 전시는 골동품 상가의 진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충분한 자료조사와 연구를 할 수 있는 시간과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다른 전시계획은 없나.

마을 조사가 끝나는 대로 그 결과물을 전시를 통해 소개하는 것이 과제다. 개인적으로는 건축에 관심이 있어 새로운 전시방법을 시도해 인문학적으로 이해하는 길에 대한 전시를 해보고 싶다. 정종식 기자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