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그림에 10년, 실행에 50년’ 정신 가져야
‘밑그림에 10년, 실행에 50년’ 정신 가져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3.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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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토지자원, 큰 시각으로 조화이뤄야
방향 잘못 잡은 개발, 복구에 수십년 필요
한삼건교수의도시이야기

- 풍경에 녹아드는 중·상류 디자인

강변 디자인은 강 하류인 시가지 구간도 중요하지만, 도심을 벗어난 중·상류 구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시가지와 전원지대의 구분은 명확할수록 좋은데, 우리는 보통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산을 깎고 들을 메워서 도로를 만들고 다리를 짓는다. 태화강 하류는 개발이 완료된 곳이지만 중상류지역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점은 다소 염려스럽다. 왜냐하면 바람직한 인간생활을 위해서는 집과 도로 뿐만 아니라 산과 들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 태화강 주변.

이런 관점에서 태화강 중상류 구간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우선, 자연 상태에서 인공적인 개발을 가할 때는 깊은 고민과 겸허한 태도가 필요하다. 토지자원은 본래 유한한데다가 짧은 시간에 훌륭한 자연을 창조하거나 재생하는 것이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태화강 중상류구간 가운데 특히 주의를 기울여 다루어야 할 곳은 척과천, 대곡천, 둔기천, 작수천 등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구간이다. 세 줄기의 강물이 만나는 만큼 풍경이 좋은 반면 물을 다루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자연 상태를 유지하고,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은 강변에 도로를 만들거나 다리를 놓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다. 개발 후의 모습이 풍경을 훼손하지 않고 풍경 속에 녹아드는 디자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계부서나 기관 등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논의하는 시스템의 활용이 요구된다. 각 구군과 울산광역시에 도시디자인이나 경관을 다루는 부서와 위원회가 갖추어져 있고 기본계획이 수립되어 있지만 완벽하게 기능하고 있지는 않다. 바람직한 도시 디자인을 위해서는 개발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에서부터 이런 기본계획과 지침을 잘 이해하고 습득한 후에 이를 반영한 개발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태화강 전체 구간에 대한 일관된 디자인 원리와 구성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관할 구군별로 모습이 달라지고, 하천이나 도로, 또는 개발이나 보존이라는 각 부서별 성격에 따라 중구난방의 디자인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 또한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각종 계획과 지침은 수립되어 있다. 하지만 역시 용역으로 끝나고 보고서로 존재할 뿐 같은 행정기관이라도 모든 관계자가 이를 알고 실무에 참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태화강공원.

- 도심 속 자연 어우러진 삼호~태화교

다음은 태화강 중상류 각 구간별로 어떤 특성이 있는지, 그리고 바람직한 디자인 방향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먼저, 삼호교에서 태화교 구간은 도심구역이지만 좁게 형성된 골짜기 가운데를 태화강이 여유롭게 흘러가고, 강북쪽으로는 태화동 불고기단지가 강을 따라 길게 자리 잡고 있는데도 건물의 높이가 낮아 난곡과 운곡의 야산을 가로막지 않아서 풍경이 시원하다. 강남쪽은 길게 늘어선 십리대밭이 삼호동 와와지구의 시가지를 가려주고 있는데다가 남산봉우리의 기개가 사철 자연을 느끼게 해 준다. 120만 가까운 인구가 모여 사는 대도시 도심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중구 태화동과 다운동 일대, 그리고 강남쪽 삼호동 와와지구는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된 공해주민 이주사업으로 탄생한 곳이다. 토지공사가 택지지구로 개발해서 매암동, 여천동, 부곡동 등 공해피해가 심한 곳에서 이주한 주민들이 정착하도록 했다. 이런 개발이 시작된 지 벌써 만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는데도 여전히 아름다운 강변 풍경이 남아 있는 것은 도시계획으로 건물 높이를 낮게 유지하도록 했고, 대규모 구조물이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 획일적·평면적인 태화교 정비

그러나, 이곳에도 앞으로는 적지 않은 변화가 들이닥칠 것 같다. 지난 주 글에서 다룬 오산대교가 조만간 건설돼야 하고, 주변 일대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설 가능성이 아주 없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미 남구와 인접한 범서읍 굴화리 일대는 대규모 고층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태화강변 산책로에서 바로보이는 풍경은 대단히 인공적이다. 여기에다가 부산-포항 동해안고속도로에 걸리는 태화강 대교와 그 대교보다 더 높은 송전용 철탑은 이 일대의 풍경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버릴 것이다. 이런 시설을 계획하고 시공하면서 아름다운 태화강변 디자인을 고려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 내오산 부근.

지난해까지 삼호교부근에서 선바위까지 강변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그리고 하상정리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도시민이 좋아하는 깔끔한 풍경이 완성되었고, 자동차도 지나갈만한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는 휴일이면 걷고 달리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태화강이 주는 천혜의 선물을 울산시가 잘 포장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영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결과를 놓고 보면 태화강변을 정비하는 개념이 너무 획일적이고, 평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붉고 푸르게 포장된 똑바르고 넓은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는 결국 속도를 부른다. 걷는 사람도 건강을 위해 빨리 걸으려 하고, 자전거를 탄 사람도 헬멧에 고글로 중무장한 이들이 주인공이다. 필자도 이 길을 걸으면서 속도를 즐기는 이들로부터 느리게 달리거나 걷는 이들을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치부하는 몸짓과 표정을 숱하게 느꼈다. 속도중시는 결국 ‘산책’이 아닌 도달시간과 운동량만이 목적이 될 뿐이고, 나아가서 주변 풍경에 대한 모독은 아닐까 싶다.

- 자연·산천 풍경 우수한 삼호교~언양 구수리

올해부터는 선바위구간부터 언양읍내에 이르는 나머지 구간에 대한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정비가 시작되었다. 필자와 시민단체는 1년 전 이맘때 이 구간 전체를 도보로 답사한 적이 있다. 이 구간은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범서읍 지역이 그린벨트로 지정되어 있다 보니 인공적인 개발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강은 하상의 경사가 급하다보니 낙차보가 많고, 강바닥 대부분은 암반이거나 자갈로 이루어져 있다. 상류에 별다른 오염원도 없는데다가 언양읍 구수리에 하수처리장이 가동되고 있어서 물이 맑다. 제방이 있는 구간도 별로 없고, 대신 대부분의 강변은 높고 낮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강과 직접 접한 옛 마을로는 망성마을, 진목마을, 무동마을 등이 있고 반천 현대아파트는 요즘 형성된 주택단지라고 하겠다.

삼호교-언양 구수리 구간이 이런 성격을 가진 곳이다 보니 우선 유역 일대의 인구가 적고, 홍수가 났을 때 직접 침수피해가 예상되는 마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홍수 시에 일부 전답 침수는 예상되지만 강의 흐름이 빨라서 오랜 시간 침수될 것도 거의 없다. 반천리 일대 논의 경우 공장이나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배수가 안 되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구간의 자연, 산천의 풍경은 대단히 우수하다. 울산이 대도시인 만큼 더욱 소중한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가진 곳이 많을수록 울산의 도시 경쟁력이 올라가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 반천현대아파트 일대.

그렇다면, 현재 추진 중인 강변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의 모습이 중·남구 지역 시가지 중심부나 아파트 밀집지인 구영리와 같아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이가 필자뿐일까. 이 구간의 디자인 원칙은 자연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는데 두면 좋을 것 같다. 인간을 위한 활용범위는 최소한으로 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이 길을 지나다닐 사람이 얼마나 될지, 바람직한 이용 양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혹은 어떤 방식의 이용이 바람직한지를 먼저 조사하고 충분히 논의해서 결정하고 그 다음 단계에 비로소 시설물 설계가 시작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 공업단지로 토지자원 낭비 최상류 상북면

언양읍내 시장부근 남천강변은 수년전에 주차장이 정비된 곳이다. 이곳에서 동남쪽 방향은 KTX 역세권 개발지역으로 현재 토목공사가 한창이지만, 맞은편 삼남면 교동리 중평, 상평 마을 일대는 계획적으로 개발된 곳이 아니다. 이 일대는 강변 산책로 정비가 일단락되었고, 군데군데 운동시설도 설치되어 있다. 장차, 역세권, 언양읍성, 영남알프스가 제대로 관광객을 끌어들일 때가 되면 크게 쓰일 장소이다. 그런 만큼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이 구역의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덮어가는 그런 공공디자인과 도시계획이 마련되면 좋을 것이다.

언양읍내를 지나면 금방 상북면으로 들어선다. 상북면 지역은 태화강 최상류 지역이자 영남알프스 품안이지만, 희한하게도 길천일반산업단지와 상북농공단지가 태화강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공해문제나 일자리문제를 떠나서 이 일대의 대규모 공장건물을 보면 과연 지역의 성격에 맞는 개발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너무 쉬운 방법으로 귀한 토지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업단지가 아닌 활용방안은 정말 없었는지 궁금하다.

또 이 지역에는 강변을 따라 언양의 옛 이름이 남아 있는 이이불(지화)을 비롯해서 향산, 길천, 양등, 궁근정 등 여러 전통마을이 자리 잡고 있지만 대규모 공단개발과 공장건설로 마을 풍경은 어지러워졌고, 강변은 건조해졌다. 울산광역시 전체를 놓고서 이 지역의 개발 방향이 검토되었어야 했지만 지금의 모습이 결국은 소지역 논리가 빚어낸 결과는 아닌지 반성이 필요해 보인다.

이 글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지만, 토지자원이야 말로 유한한 것이다. 한번 잘못 방향을 잡아서 개발이 이루어지면 짧게 잡아도 수 십 년 이상 그 땅은 손댈 수가 없어진다. 언제 어느 때를 막론하고 큰 그림과 디테일이 조화를 이루고 과거와 미래가 어우러지는 도시디자인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울산대학교 한삼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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