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스런 다리 하나
멋스런 다리 하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2.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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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을 시인으로 만든다
한삼건교수의도시이야기

대다수 우리 국민이 파리도 직접 가보기 힘들었던 1980년대 이전, 사랑에 빠진 많은 이들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로 시작되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를 통해 이국의 강과 다리를 그려 보곤 했었다. 이 시에 등장하는 파리의 미라보 다리는 시인이 한창 감수성 예민한 18살 때인 1897년에 폴 라벨이라는 건축가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길이 173m에 쇳덩어리로 만들어 졌지만, 전체 모양이 아치로 되어 있고, 4개의 동상과 디자인된 난간, 그리고 강변의 수목과 비슷한 색깔인 녹색페인트가 칠해져서 세느강과 잘 어울린다. 디자인의 힘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처럼 교량이 시의 소재가 되고, 그 시를 통해 가보지 않은 도시를 떠 올릴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태화강에도 많은 다리가 있는데, 미라보 다리처럼 그 다리가 시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지어진 시를 통해 울산을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이 도시를 동경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 베니스의 ‘리알토’다리.

울산만과 태화강의 교량은 건설 중인 울산대교, 동해남부선 철교, 명촌교, 학성교, 번영교, 울산교, 태화교, 십리대밭교, 3개의 삼호교, 그리고 역시 건설 중인 태화강대교 순으로 걸려 있다. 울산만 입구에서 구영리와 굴화리 경계까지가 된다. 태화강 교량건설의 역사는 1910년 당시 지금의 울산교 자리에 목조 다리인 성남교와 울산교가 가설되면서 나룻배 시대에서 다리 시대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1924년에 최초의 콘크리트 교량인 삼호교가 가설되고, 1935년에는 울산교가 콘크리트 교량으로 바뀌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울산이 공업도시가 되면서 많은 대형 교량이 지어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주목되는 것은 십리대밭교다. 이미 울산교와 구 삼호교가 안전상의 문제로 차량용에서 인도교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는 가운데, 이 다리는 처음부터 인도교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최근의 보도를 보면 앞으로 물환경관 부근에 제2의 인도교가 가설될 것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다리가 단순히 강이라는 장벽을 극복하는 장치라고 보는 시대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이 시점에서 태화강의 교량 디자인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다리는 시선 축, 혹은 시선 회랑이라고 할 수 있는 강위에 걸린다. 그 때문에 다리는 강변을 지나가는 차량 이용자나 보행자에게 가장 긴 시간 동안 시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강을 패스(path)라고 보면, 이 통로에 다리는 보통 직각으로 걸리기 때문에 가장 많이, 그리고 긴 시간 동안 시야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 런던 ‘런던다리’.

이런 관점에서 울산의 상징이자, 도심에서 가장 중요한 패스(path)인 태화강에 걸린 교량을 어떻게 하는 것이 울산 도시디자인을 위해 바람직한 일인지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2015년을 목표로 현재 교각이 완공 단계에 있는 울산대교는 경간 길이만 무려 1천115m이고, 주탑 높이가 203m에 달하는 것으로 울산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이 다리가 통과하는 울산만 양안이 모두 공장 시설로 채워져 있어서 매암동이나 장생포, 그리고 방어진해안도로와 화암 등에서 긴 시간 동안 다리 전체를 감상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다리 아래로는 화물선이나 다닐 뿐 여객선은 고사하고 나룻배 하나 없어서 이래저래 아름다운 울산대교 모습을 일반시민이 즐기기에는 제약이 너무 많다. 이런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방어진 체육공원과 동구청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만나는 장소와 장생포 고래생태마을 등에 울산대교 조망을 위한 전망대를 설치하고, 울산만에는 유람선을 도입하면 효과적일 것이다.

필자가 예전에 본 태화강 정비 계획에는 요트를 비롯한 많은 배가 강을 오가는 조감도가 실려 있었다. 실제로 1980년대까지도 나룻배가 오갔고, 일제강점기 때는 염포 새장터에서 태화나루까지 매일 화물을 실은 돛단배가 왕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의 태화강은 배가 다니기 어렵다. 그 이유는 하상이 얕아서인데, 더 큰 문제는 교량의 교각 부분 수심이 특히 얕은데 있다. 수년 전에 태화강 관리단 도움으로 고무보트를 이용해서 명촌교부터 물환경관 구간을 답사한 적이 있다. 그때 울산교 아래에서는 고무보트 바닥이 강바닥에 걸렸던 기억이 있다. 그 뿐 아니다. 울산대교를 제외한 태화강의 모든 교량은 선박 통행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각 높이도 너무 낮다. 이런 점 때문에 배 다니기가 어렵다.

외국의 여러 도시를 보면 강을 이용하는 그들의 지혜에 탄복할 때가 많다.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필자가 직접 본 곳 만해도 그들의 번영이 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더구나 유람선도 없는 곳이 없다.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 같은 곳은 하상의 높이가 다른 강에 운하를 설치해서까지 유람선을 띄우고 있다. 강에서 바라보는 도시풍경과 그 강을 바라보는 곳을 잘 활용하고 있는 그들의 감각과 안목이 우리에게도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강에 배를 띄우기 위해서는 강의 모습, 다리의 구조, 배 자체의 디자인이 각각 연관이 되어 있다. 수 십년 전의 조감도처럼 태화강에 배를 띄우기 위해서는 옛 영도다리나 압록강 철교처럼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공기부양정같은 선박을 도입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또는 수륙양용버스도 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태화강을 즐기고 울산이라는 도시를 즐기는 그날이 언제 올까.

그 다음 문제는 앞으로 지어질 교량 디자인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제2보행교 건설이 조만간 시작될 것 같고, 주민들과의 마찰로 논란이 되었던 오산대교(가칭)도 수년 안에 지어져야 한다. 그리고 울산~포항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태화강대교는 교각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새로 지어지고 있거나 계획 중인 이들 교량 디자인만큼은 지금까지처럼 ‘강을 건너는’ 기능 중심의 관점을 넘어서 태화강과 조화가 되는지, 주변의 향후 변화 모습과는 잘 어울릴 것인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그 결과를 교량디자인에 잘 반영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건설 중인 태화강대교만 하더라도 다리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길이 없다. 흔한 조감도 한 장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어질 오산대교는 남산봉우리를 관통하는 터널 구간이 있는데다가 무엇보다도 십리대밭 상공을 지나가게 되어 있다. 태화강에 걸린 어떤 다리보다도 교량 디자인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가능하다면 오산대교가 주변의 이런 풍경에 녹아드는 것은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새로운 울산의 풍경을 만들어주는 단계까지 가 주어야 한다. 그런 정도의 디자인 목표를 가지고 교량 설계에 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곧 새로 지어질 제2인도교는 남산의 솔마루길과 남구가 추진 중인 남산로변 수변 문화공간, 물환경관, 태화강 양안의 산책로, 그리고 태화강대공원과의 관계를 잘 읽어내고 디자인해야 한다. 이 다리의 주 기능을 남구의 옥동 대공원과 중구의 태화강대공원이라는 울산을 대표하는 두 공원을 연결하는 중심 보행축이라는 개념에서 설정할 필요가 있다.

태화강은 도심을 흐르고 있는데다가 길이가 길고 그 폭도 도심구간은 400~500m에 이르기 때문에 눈길이 강을 따라 흐르는 시각회랑 역할을 한다. 여러 번 언급했듯이 강은 패스(path)이자 엣지(edge)이며, 심지어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특히 강을 패스(path)로 볼 경우 교량은 강의 흐름에 직각으로 걸리기 때문에 시선을 가장 많이 받는다. 교량 디자인에 특별한 궁리가 필요한 이유다. 태화강에 걸리는 다리 디자인의 질만 높여도 태화강의 이미지는 물론 울산이라는 도시이미지도 크게 개선되는 것은 물론이다.

<한삼건 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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