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받는 전직 대통령
박수받는 전직 대통령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2.2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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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기분 좋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김해 봉하마을에 돌아가서 고향 사람들 앞에서 외치던 말이다. 2008년 2월 25일이었다. 청와대를 나와 기차를 타고 귀향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감동을 느꼈다. 우리 역사상 어떤 대통령이 귀향을 했으며 어떤 전직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던가. 환호와 박수는 당연한 것이었다.

5년이 지난 2013년 2월 25일 0시. 일요일 밤을 넘기고 월요일이 시작되는 이 시각을 기준으로 이명박 대통령도 전직 대통령이 된다. 새로운 5년의 시작이다.

우리의 대통령제에서는 권불오년(權不五年)이다. 전직이란 명칭과 함께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이 대통령은 지난 퇴임연설에서 모든 것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겠다고 했다. 그런데 너무 공(功)을 강조해 많이 실망했다. 물론 `과(過)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지난 5년을 돌아보면 ‘명박산성’으로 대표되는 불통 이미지와 회전문인사, 부자와 특권층을 위한 정권이란 부정적인 인식이 더 크게 남는다. 대북관계는 거꾸로 얼어붙었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당했고 마지막까지 북한 핵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실망뿐이었고 인권과 민주주의 후퇴, 언론장악, 친인척 측근 비리는 과거에도 봐왔던 눈에 익은 장면들이었다. 마지막엔 특별사면에 셀프 훈장논란도 있었다.

이처럼 우리의 전직 대통령은 거의 마지막이 문제다. 그리고 퇴임 후 박수 받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5년 후로 미뤄야 한다. 다음 주부터 전직이 되는 이 대통령도 그렇게 박수를 받고 나가는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어느 분의 지적처럼 대통령은 정말 되기도 어렵지만 하는 것도 어렵고 끝난 후도 어렵다는게 맞는 것 같다.

미국의 39대 대통령이었던 지미카터는 가장 실패한 대통령이었지만 퇴임 후의 활동은 모범으로 꼽힌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헤비타트 운동을 벌이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재 등 국제분쟁을 해결하는데 헌신한 공로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아흔 가까운 나이인 지금도 여전히 빈곤현장을 찾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의 국부라는 드골은 퇴임 후 귀향 때 서류뭉치가 든 가방하나 들고 떠났다고 한다. 대통령 연금도 사양하고 예비역 대령보다 적은 연금만 받았다. 이발비나 개인 편지 발송비용 등 사적인 일에는 모두 개인 돈을 썼다. 귀향한 뒤에도 공식자리에는 나타나지 않고 자선모임에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 모두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가 서민의 모습으로 여생을 보냈다.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서울에 살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벼슬이 끝나면 대개 낙향해 후진향성에 힘을 쏟았다. 현대의 전직 대통령들은 표 얻을 때만 자신의 고향을 자랑하고 국가 균형발전을 외치고 지방발전을 역설해 놓고 퇴임하면 자신은 고향에 살지 않는다.

참 아이러니하다. 노 전 대통령만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오리 벼농사를 짓고 차나무를 심으며 화포천과 봉하산을 가꾸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찾았고 서민의 모습으로 대화했다. 때로는 사진 모델이 되어주었고 때로는 힐링을 위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합천이나 대구, 거제도에 가서 전직 대통령의 일상을 보기도 하고 고향사람들과 함께 삶을 살며 어른으로 대우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전직 대통령...

이 대통령도 퇴임하면 당연히 서울에 살 것이다. 고향 덕실마을에 기념관은 지어 놓을 것이다. 다만 4대강 주변에서는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퇴임 후 꽃피는 계절이 오면 4대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우리 강산을 한번 둘러보고 싶다”고 말했으니까. 평가와는 별개로 전직 대통령을 강변에서 만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올 봄 그의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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