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은 5일장
가고 싶은 5일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2.0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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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대곡천 가는 길에 언양장에 들렀다. 늦은 오후 파장(罷場)이 다가왔지만 시장은 여전히 생기가 돌고 있었다. 벌써 봄나물이 선보이는가 하면 생선이 있고 할머니가 직접 만든 반찬들이 즐비했다. 골목을 헤매듯이 장터를 돌아다녔다. 볼 게 많고 맛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소머리 국밥 한 그릇에 추억 속의 5일장이 되살아났다.

설이 다가온다. 대목장을 봐야 할 때다. 이맘때면 5일장에 간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 장 보따리가 궁금하던 어릴 적 기억이 아련하다. 그때는 대목장을 봐야 설 준비를 마치고 집안이 풍성했다.

울산에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5일장이 남아있다. 언양, 남창, 호계, 봉계, 정자장 등이다. 옛날 각설이들의 장타령에도 등장했던 장들이다.

우루루 갔다 울산장/하도 바빠서 못보고

어떡가자 언양장/어정어정 못가고

넘실넘실 남창장/물이 깊어서 못보고

이제 장타령은 사라졌다. 5일마다 장은 열리는데 젊은이들이 없다. 품목도 꼭 그 장터에만 있는게 아니다. 사라지거나 쇠퇴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세상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동안 장터 골목을 걷는 대신 카트에 매달려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는게 아닌가. 빠르고 편리한 인스턴트 문화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5일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만이 아니다. 추억의 맛이 있고 사람의 정이 통(通)하는 공간이다. ‘시장통’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소통하는 공간이란 뜻이다.

거기에 흥이 넘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울산의 전통시장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단다. 시설현대화란 이름으로 아케이드와 주차장을 설치하고 진입로나 간판을 정비하는 등 많은 지원을 했지만 일부 시장은 손님이 줄고 경쟁력을 잃어간다는 진단이 나왔다.

왜 그럴까? 그 시장만이 갖고 있는 특산품이 적고 시대에 맞게 변화하지 못한 것도 주된 이유일 것이다. 통영을 가면 늘 들르는 곳이 항구 옆의 통영시장이다. 전국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유명한 곳이다. 그 곳에 가면 충무김밥과 멍게 비빕밥이 있고 해물뚝배기와 꿀빵이 있다. 통영시장에서만 제 맛이 나는 지역특산품이다. 언양장 남창장이 배워야 할 사례이다. 강원도 정선 5일장은 연간 방문객이 35만명이나 된다. 떡메치기 체험과 곤드레 나물밥, 올챙이 국수 등이 큰 인기품목이다.

이처럼 전통시장은 말 그대로 토속적이고 지역특산품이 있어야 경쟁이 있다. 울산의 5일장에는 딱 그곳만의 지역 특산품이 적다. 시장 주변의 식당도 특색 있는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 드물다. 소고기 국밥이나 두투요리, 막걸리만 가지고는 어렵다. 어디에 가도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5일장이 변해야 한다. 5일 주기만 고집할 게 아니라 토요시장을 열어 성공한 사례도 있다. 주말 도시민을 겨냥한 지역 특산물을 파는 것이다. 지역 산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매일매일 들여오는 신선한 물건을 내놓고 장에 오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도록 하면 사람들이 좋아한다.

또 문화의 장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대형마트는 카트에 물건 주워담기에 바쁜 쇼핑에 밀려나지만 5일장은 덤이 있었다. 맛이 있고 정이 있고 흥이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 문화가 숨 쉬는 공간이 되면 더욱 좋은 일이다.

‘언양장터 문화행사’ 프로그램 같은 것이 좋은 예이다. 젊은이들도 놀 수 있고 볼 만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5일장. 추억의 영화관, 추억의 음악다방 같은 ‘추억 이벤트’도 괜찮고 시티투어도 5일장에 들러 걷도록 해보자.

그렇게 5일장은 ‘느리게 쇼핑’할 수 있어야 제맛이다. 천천히 걸어 다녀야 ‘문전성시’를 이룬다. 5일장에 가서 ‘좋은 구경하고, 잘 먹고, 잘 쉬고, 재밌게 놀았다’는 입소문이 나야한다. 거기에 여러 가지 스토리를 입혀 놓으면 추억 속의 5일장이 지금 여기에 되살아난다. 그런 장터에 누가 아니 가고 베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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