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도로 ‘시민의 강’막아… 물 맑아졌지만 ‘풍경오염’ 가속
양안도로 ‘시민의 강’막아… 물 맑아졌지만 ‘풍경오염’ 가속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2.0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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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망권 민간업자 독식, 공공문화시설 집중배치 필요
한삼건 교수의 도시이야기
▲ 삼산동 강변.

대한민국 산천이 다 그랬지만, 본격적인 공업화 이전의 태화강은 물이 정말 깨끗하고 맑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에는 생활 오수도 폐수도 발생하지 않아서 강물을 더럽힐 오염원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공업화와 도시화가 본격화 되면서 그 맑던 태화강은 한때 심하게 오염됐다. 어린 시절 멱을 감고 물고기를 잡았던 강은 간 곳 없고 강변을 지나기가 꺼려질 정도로 냄새가 날 때는 안타까움도 컸다.

그런데 시민들의 이런 안타까운 맘을 헤아린 듯 광역시 승격 무렵부터 지금까지 조 단위의 예산을 투입한 결과 태화강은 눈에 띄게 맑아졌다. 강물의 오염원이 태화강으로 유입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오수관거 분리사업과 함께 이미 강바닥에 깔려 있는 오염된 퇴적물 제거가 이뤄지고, 오수와 하수를 정화하는 처리장 건설 덕분에 얻어진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런 성과는 울산시를 비롯한 각 관계부서와 담당자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강물은 맑아졌지만, 태화강변의 풍경은 굳이 나쁘게 표현하자면 지금도 오염이 확산되고 있고 그 흐름 또한 멈추거나 바뀌지 않고 있다. 강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이 ‘물의 질(水質)’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예전의 태화강을 다시 떠올려보면 물이 있는 하상 이외에도 강변과 강변 배후지가 모두 자연 상태로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전원풍경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런 태화강변의 자연은 점차 주택이 들어서고 도로가 통과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왔다.

● 고층빌딩·대규모 아파트단지 빽빽

도시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건축물은 태화강변을 오염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존재다. 그 중에서도 고층빌딩과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문제의 중심에 있다. 그 다음은 강변도로다. 4차선으로 건설된 태화강변 양안의 도로는 대소의 많은 차량이 질주하고 있고, 이것이 사람들의 이동을 막아서 강과 시가지를 높은 장벽처럼 단절시키고 있다. 오늘날 태화강변이 이렇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도시계획 때문이다. 태화강변을 따라 간선도로 노선을 결정하고, 강변도로와 접한 구역 대부분을 준주거지역, 또는 상업지역으로 도시계획 결정을 하면서 지금과 같은 강변풍경의 바탕을 우리가 만들었다. 도시계획이 이런 가능성을 열어주다 보니 ‘조망’이 아름다운 강변에 고층아파트가 집중적으로 입지하고, 그 결과는 역설적으로 아름답지 못한 도시경관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태화강 강변 경관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 대규모 고층아파트다. 필자가 인터넷을 통해 약식 조사한 바로는 태화강변에 접하고 있거나 강변에서 바라보이는 위치에 입지해서 태화강 경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아파트는 강남·북을 합쳐서 31개 단지 2만1천379세대에 이른다. 여기에 해당하는 구간은 울주군 범서읍 굴화리 부터 남구 삼산동과 북구 염포동까지다.

이 중에 남구지역에서 가장 먼저 생긴 것이 남산 앞에 서 있는 크로바 아파트다. 1990년 7월에 준공 됐는데, 높이가 15층이나 되다보니 남산을 가리는 장벽이 되고 말았다. 이어서 같은 해 12월에는 삼산현대아파트가 학성공원 건너편에 13층 규모로 세워졌다. 이 두 아파트는 요즘 아파트에 비해 동 길이가 길다보니 높이보다 길이가 더욱 문제가 된다. 이에 비해서 2000년대 이후에 들어선 아파트는 고층이 대세를 이룬다. 2005년 2월에 준공된 삼산동 아데라움 아파트는 최고층수가 20층이지만 굴화월드메르디앙, 무거위브자이, 센트럴하이츠, 삼산푸르지오는 24-25층이고, 신정1차푸르지오는 33층, 주상복합아파트인 엑슬루타워와 위브더제니스는 각각 43층과 47층이나 된다.

● 강-시가지 장벽 조성·유적 파괴 원인

중구나 북구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모두 14개 단지 8천897세대가 태화강에 접하고 있거나 강변에서 직접 바라다보여서 역시 경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구지역은 동강병원 일대가 강변고층아파트의 서막을 연 곳이다. 1986년 10월에 최고층수 13층의 강변맨션 298세대가 들어선 이후 89년 말에 한라궁전 아파트가 준공되고, 이어서 91년 10월에는 13층 높이의 태화동 남운 전원타운이 준공됐다. 공교롭게도 남산 크로바 아파트와 강변맨션, 한라궁전, 남운 전원타운 등은 모두 ‘태화루’ 옛터 가까이에 있다. 다시 말하면 울산팔영이 노래한 곳 중에 4곳(4영)의 풍경이 이들 아파트로 인해 훼손된 것이다. 삼산현대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울산팔영과 팔영의 무대인 삼산은 물론, 학성공원에서 바라보는 강변풍경을 훼손한 첫 사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한 가지 더 주목되는 사례가 있다. 학계에 ‘반구동유적’과 ‘반구동 토성’으로 알려진 곳에 들어선 아파트가 바로 그것이다. 당초 1991년에 반구동 토성이 발견된 것은 원래 반구동 소유였던 임야가 아파트부지로 변경되면서 공사가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토성 유적 일부가 드러났다. 당시 급격한 성장일로에 있었던 울산시는 택지가 부족해 자연녹지였던 이곳을 ‘주거지역’으로 용도를 바꾸면서 강을 낀 이 부지가 아파트사업자의 눈에 들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문제는 ‘서원산’이라 불리던 이 땅이 조선시대에는 울산지역의 유일한 사액서원인 ‘구강서원’이 있었던 곳이고, 통일신라시대에는 경주로 출입하는 물동량을 통제하던 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측된다는 점이다. 2006년부터 시작된 아파트재개발은 토성지 인접부지에서 길이 260m에 이르는 2열의 대형 목책 유적과 4곳의 망루유적 발견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이 장소는 적어도 태화루 부지와 더불어 울산시내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현장으로 평가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e-편한세상’이라는 대단지 아파트가 건설 중이다. 이 아파트가 준공되면 건너편의 평창리비에르 아파트와 함께 동천강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나아가서 학성공원과 학성산에서 바라보이는 울산만을 차폐해서 울산의 역사현장 파괴는 물론 강변 경관에 또 하나의 오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면서 깨끗하고 맑은 강물과 더불어 태화강변을 아름답게 가꿔 갈 방도는 없는 것일까.

● 공공시설용지 우선·집중배치 필요

그 방법은 태화강변 일대 시가지에 대한 도시계획의 패러다임 전환에서 찾을 수 있다. 정책의 핵심은 토지이용에 관한 것으로 강변에 공공시설용지를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방안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이미 울산시는 좋은 선례를 만들어 뒀다. 바로 ‘태화루 역사공원’이다. 누각 건립비용 100억원은 민간의 기부로 마련됐고, 그보다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 부지매입과 지장물을 철거 했다. 이처럼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태화루 역사공원이 개인 땅에서 시민 모두의 것이 됐기 때문에 그만한 값어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지금부터 울산시는 제2, 제3의 태화루 역사공원을 태화강변에 입지시켜야 한다. 큰 예산이 필요하겠지만 도시계획을 잘 활용하고, 민자유치, 민간개발에 따른 개발이익 환수, 공공시설을 우선적으로 입지시키는 등의 노력을 하면 보다 적은 비용으로도 태화강변을 시민과 후손에게 돌려 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울산미술관이 태화강 대공원에 들어와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다. 비록 미술관부지는 울산초등학교로 결정됐지만 또 다른 문화시설이 태화강 대공원을 비롯한 태화강변에 자리 잡을 날을 고대해 본다.

<한삼건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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