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嚼鷄肋
如嚼鷄肋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1.2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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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작계륵:닭 갈비 들고 먹을지 버릴지 생각함>
중국 후한 삼국시대 위(魏)나라 양수(楊修)는 지식과 재능이 탁월해 일찍이 조조(曹操)의 부름을 받아 벼슬이 주부에 까지 올랐다. 그는 조조의 아들이자 천재 시인인 조식(曹植)의 스승으로 있으면서 누구보다 조조의 의중을 틀림없이 알아냈으며 심지어 조조도 그의 예지를 마음속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한번은 조조가 유비(劉備)의 본거지인 대륙서쪽 한중(漢中)을 치기위해 진격해 들어가 전투를 하면서 유비의 군사 재갈공명의 전략에 말려 악전고투를 하면서 여러모로 전황이 어렵게 처하게 됐다. 조조 자신은 물론 수하 장수들까지도 은근이 철군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막상 철군을 하자니 천해의 요새 같은 땅에서 유비의 세력이 커지는 것이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적지에서 방어에만 치중하고 있었다. 하루는 조조의 저녁식사 상에 삶은 닭이 올라와 있어 조조가 살 고기를 다 먹은 다음 마지막 닭갈비를 들고 먹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수하 부장 하우돈이 들어와 이날 밤 군이 사용할 암호를 묻었다. 조조는 자신이 들고 있던 닭갈비를 보고 계륵(鷄肋)으로 하라고 명하자, 곁에서 보고 있던 양수가 조조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즉시 군진으로 가 군사들에게 조만간에 철군하게 될 것인즉 미리 준비하라는 언질을 주었다. 그러자 군사들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모두 짐을 꾸리며 분산하자 조조가 이상하게 여겨 그 까닭을 알아보니 양수가 조조의 명령이 있기 전에 내린 언질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즉시 양수를 처형하고 철군하고 말았다. 여작계륵이란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는 ‘취하기에는 거북하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경우’를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며칠 전 울주군지역에 유치하기로 했던 영어마을 건설 사업을 운영상 어려움을 들어 교육당국에서 계획을 포기한 바 있다. 이미 버린 사업을 두고 잘잘못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쩌면 울산교육을 한 단계 올라서게 할 좋은 사업이 틀림없는데 그 운영을 감당하기 어려워 상 위에 놓인 닭갈비처럼 하는 수 없이 버리게 되는 이 고장의 교육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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