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적 측면 망각 디테일 집착하면 조화 무너져
시·공간적 측면 망각 디테일 집착하면 조화 무너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1.2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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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건 교수의 도시이야기
▲ 비대칭 건물 배치 ‘못난 번영로’
▲ 주차장·도로에 빼앗긴 태화강변

우리가 도시 디자인을 할 때 흔히 범하는 실수는 디테일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 디자인의 핵심은 도시의 시간, 공간적인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데 있다. 즉 산천과 도로, 건물과 시설 등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도시전체의 구조는 어떠한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개별 시설물의 입지와 디자인에 대한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래야 겉치레에 그치지 않는 도시디자인, 독특한 지역성이 반영되고, 진정으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도시디자인이 비로소 가능해 지는 것이다.

● 인공제방으로 수해 취약도시 전락

이러한 도시디자인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울산광역시의 도심에서 사람의 등뼈 역할을 하는 것은 번영로와 태화강으로, 통로(path)에 해당된다. 또 도로변과 강변 시가지의 테두리 같은 역할도 하므로 가장자리(edge)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곳은 시민들의 눈에 가장 많이 띄고, 가장 오래 시선이 머무는 곳이므로 이런 장소에 대해 디자인을 할 경우 그 효과는 특히 높을 수밖에 없다.

번영로와 태화강을 울산시의 대표적인 통로(path)라고 본다면, 이곳은 울산시에서 가장 위계가 높은 곳으로서 울산광역시를 대표하는 여러 시설은 이 두 요소에 배치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울산에서 도시 구성의 5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path에 해당하는 태화강은 자연하천이지만, 지금처럼 강변의 경계선이 만들어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경이다.

당시 수리조합 사업으로 제방이 만들어졌고, 그 제방에 도로가 만들어진 것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터다. 제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평상시의 강물 수위보다 조금 높은 자연제방이 있었으며 강 남·북쪽 모두 유수지 역할을 하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이런 자연제방을 없애고 인공제방을 축조한 목적은 홍수방지에 있었다. 그런데 홍수 때의 유수지 범위보다 훨씬 좁게 강폭을 제한한 인공제방축조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홍수방지용으로 만든 제방 때문에 홍수 때마다 제방 바깥 시가지가 침수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태화강으로 잘 흘러들던 유곡천, 강정천(우정천), 손골거랑 같은 지천의 물이 인공 제방이 생기자 태화강 본류 수위가 높아지면 빠져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제방 축조 이전에는 강변에 넓은 유수지도 있고, 또 마을도 자연제방 바깥 홍수선 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홍수방지가 됐다. 그러나 농토 확보와 농업용수 장사에만 초점을 맞춘 근시안적인 제방 축조는 그 이후 울산시 중구와 남구 중심지에 영구히 수해 취약도시라는 굴레를 씌워버렸다.

하나 더 덧붙이면, 제방은 유사 이래 항구도시였던 울산시가지 중심부를 태화강과 바다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고 말았다.

● 무분별 건축 시각과 기능 부조화

태화강과 마찬가지로 path에 해당하는 번영로의 탄생과 변화과정을 살펴보자. 번영로가 처음 계획된 것은 일본인 민간 사업자가 1938년부터 추진했던 울산공업도시개발이다. 이 내용을 담은 도시계획 도면을 보면 지금의 번영로에 해당하는 33m 폭의 도로가 확인된다. 당시의 계획은 일본의 패전으로 묻혀버렸지만, 1962년부터 시작된 울산공업센터 개발에서 이 계획은 부활한다. 개발주체가 일본인 사업자에서 우리 정부와 울산시로 바뀌었을 뿐 적어도 개발초기의 기본 골격은 일제강점기 때의 그것과 차이가 없었다.

이 두 개발계획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번영로다. 도로 선형이 지금처럼 결정된 이유는 울산역에서 찾을 수 있다. 계획으로 끝난 이 울산역은 남구 달동 현대해상사거리 남쪽 일대에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자리 잡았었고, 역 북쪽 중앙부분에서 뻗어나가도록 설계된 것이 바로 지금의 번영로였다.

역 위치 때문에 번영로의 당초 선형이 결정되었건만,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도시계획 변경이 이뤄지면서 도로의 기준이 된 역은 자리를 옮겼는데도 이를 바탕으로 결정된 남구 중심지의 도로망은 그대로 남겨졌다. 이렇게 만든 도로는 태화강과도 어긋나게 만나고, 그 결과 강과 직각으로 걸린 번영교 같은 교량과도 불편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개념 없이 만들어진 번영로는 그 양끝단도 허전하다. 세종로 끝의 경복궁이나 창원시의 경남도청을 보면 주요시설을 넓은 도로 끝에 배치해 바라보는 이의 눈길을 붙들어준다. 과거 울산에도 이런 배치 기법은 있었다. 조선시대 울산객사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지금의 번영로 폭원은 50m로, 울산시에서는 가장 폭이 넓은 도로다. 이 폭과 길이 및 자리 잡은 위치로 인해 번영로는 울산의 척추가 된다. 척추 기능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번영로 양끝단과 좌우 도로변 디자인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번영로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건축은 성남동 롯데캐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상복합아파트와 번영로의 관계는 세종로와 광화문의 관계와 같다. 그나마 도로가 태화강변에서 꺾이기 때문에 우연히 이런 결과가 나왔을 뿐이고, 야음삼거리와 효문역 부근에 있는 도로 양 끝단에서는 디자인 요소라고는 아무것도 만날 수 없다.

번영로 양측의 경우도 시각적으로, 기능적으로 비대칭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문화예술회관과 KBS사옥은 기능적으로는 이 도로에 잘 어울리는 건물이지만 높이는 낮다. 그런데 하필 이 건물 맞은편에는 30층이 넘는 초고층건물이 들어섰다.

기능적으로도 한편은 문화시설, 반대편은 아파트와 일반 상업시설이 들어서다보니 도로는 경계선이나 벽의 역할을 하게 돼 도로양쪽을 편하게 이어주거나 시각적인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결국 번영로는 그저 자동차만 많이 달리고, 시야 중심에 주상복합 아파트만 내내 바라보이는 그저 그런 도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 시민공간 확장 근본적 변화 필요

한편, 태화강변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태화교에서 명촌교까지 직선거리 4.3km 구간은 울산광역시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번영로 보다 더욱 중요한 곳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구간은 이미 고층 아파트로 막혀버렸다. 태화강변을 아무리 잘 정비해도 결국 강 자체만 활용해야하는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 있다고 하겠다. 아파트는 개인의 사적공간인데다가 디자인의 질이 평범한데 비해 그 스케일은 너무 커서 도시디자인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금 울산에서는 태화강이라는 천혜의 자산을 활용하는 도시디자인 전략이 필요하다. 세계의 많은 아름다운 도시에서는 path와 edge 역할을 하는 도심 하천과 거기에 접한 시가지가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 등으로 아주 잘 활용되고 있다. 런던, 파리, 빌바오, 프랑크푸르트 등등 열거하기도 힘들다. 만약에 도심구간 태화강변이 지금처럼 자동차 도로와 개인의 사유공간으로만 채워지지 않고, 시민 누구나 이용가능하고 접근할 수 있는 문화시설과 공공시설이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울산의 모습과 도시디자인의 질은 엄청나게 높아질 것이다.

울산 태화강변에는 이미 태화강 대공원이 조성됐고, 태화루 역사공원정비도 한창이다. 이 프로젝트를 출발점으로 도심 태화강변 일대 시가지가 모든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한삼건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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