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봐도 똑같은 모습… 운율·테마있는 배치 아쉬워
어딜 봐도 똑같은 모습… 운율·테마있는 배치 아쉬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01.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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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이미지’를 만드는 것
멋스런 옛 소재 八景·八詠 못살리고 양적 팽창 급급
박물관 미술관 광장 사원 즐비한 세느강 모범 삼아야
한삼건 교수의 도시이야기
▲ 울산 랜드마크 공업탑.

실체로서의 울산이라는 도시를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울산을 느끼고 경험하고 생활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 수 만큼의 울산의 모습이 존재한다. 즉, 울산에서 살고 있거나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의 나이, 직업, 가치관 등에 따라 울산을 각각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며 각자의 이미지를 갖게 된다. 이는 울산에서 생활하는 시민이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잠깐의 여행에서도 울산에 대한 이미지를 얻게 마련이다. 그런데 시민이나 당국자라면 울산의 이미지가 이왕이면 긍적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지고 기억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도시이미지나 부정적인 도시이미지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질까? 미국의 도시디자인 전문가인 케빈린치의 견해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케빈린치는 1960년에 MIT대학 출판부에서 ‘도시의 이미지(The Image of The City)’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케빈린치는 보스톤과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저지시티와 같은 대도시의 이미지를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의 시각을 통해서 찾아내고 유형화했다. 심층면담과 약도그리기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그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의 눈에 비치고 마음에 그려진 심상, 즉 도시이미지를 찾아냈다. 이 때 도시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은 도시가 얼마나 알기 쉬우냐와 겉모습이 얼마나 명료하냐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도시이미지를 판단하는 요소를 찾아냈는데, 통로(path), 랜드마크(landmark), 가장자리(edge), 결절점(node), 지역(district)의 다섯 가지였다.

그는 특히 어떤 도시의 주민 대다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심상을 그 도시의 ‘퍼블릭 이미지(public image)’라고 이름 지었다. 이 퍼블릭 이미지는 조사대상자들이 속한 특정한 물리적 현실과 공통의 문화, 그리고 기초적인 생리학적 특질이라는 3가지 요소가 상호작용을 할 때 거기에서 일치돼 생겨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울산의 퍼블릭 이미지, 즉 도시이미지는 어떤 모습일까? 케빈린치의 시각에서 본다면 과연 명료하고 알기 쉬운 바람직한 도시이미지를 발산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수긍하기는 어렵다. 물론 케빈린치의 이론이 미국 대도시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근거로 울산의 도시이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하지만 시민들이 도시에서 거주하면서, 통근과 통학을 하고 쇼핑을 하며 나들이를 하는 일상적인 도시의 모습은 현대 울산시와 미국의 대도시가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울산도 도시규모가 크지 않았던 과거에는 도시모습이 대단히 명료하고 알기 쉬웠다. 즉, 울산 읍내(district)는 건물 밀집지와 그 외곽의 전답으로 경계선(edge)이 명확했고, 객사문루와 동헌정문(가학루), 그리고 문수산, 은월봉, 무룡산 등은 훌륭한 랜드마크(landmark)였다. 성문 역시 탁월한 결절점(node)이자 랜드마크였다. 객사 앞 시장이 서던 길을 포함한 사방의 대로는 말 그대로 패스(path)였다.

이렇던 울산이 지금은 그 외양이 명료하지도 않고, 도심에서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기 어렵고, 낯선 곳을 찾아가는 일이 밀림을 헤매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된 까닭이 단순히 도시공간의 물리적인 크기가 확대된 때문일까. 도시가 성장하면서 인구나 면적이 늘어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지만, 도시이미지가 잘 관리된 다른 도시 중에는 울산보다 규모가 커도 도시공간 파악이 쉬운 곳이 많다. 그 까닭은 눈에 띄고 주변과 구별되는 시설물이 도시 여기저기에 잘 배치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건물이나 큰 구조물 뿐 아니라 공지, 나무와 숲과 같은 식물군, 도로에서 얻는 운동감, 시각적인 콘트라스트 같은 특징이 도시를 바라볼 때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런던이나 파리, 도쿄같은 도시를 보면 우리처럼 시가지 가까이에 산이 없는데도 넓은 인공 숲이 조성돼 있다. 한편, 파리는 직교하는 도로와 대각선 도로가 만들어내는 초점마다 중요 시설물을 배치하고, 건물의 높이와 외관은 거의 완벽하게 조화돼 있다. 런던은 템즈강 수면과 강 양안에 다리, 군함, 회전관람차, 보행교, 문화시설 등 수많은 디자인 요소를 배치하고 있다. 세느강변도 예외는 아니다. 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 에펠탑, 콩코드광장, 노뜨르담 사원 등이 강변을 감싸고 이어져 있다.

앞에서 울산을 예로 케빈린치식 5요소를 찾아봤는데, 고려시대 이후 울산의 도시이미지를 보여주는 예를 하나 더 소개해 본다. 그것은 ‘울산 팔경(八景)’과 ‘팔영(八詠)’이다. 팔경은 중국 송나라시대의 ‘소상팔경(瀟湘八景)’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국이나 한국, 일본에 두루 전하고 있다. 울산 팔경은 이런 중국의 팔경관념에서 빌어온 것으로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전하고, 울산팔영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팔경은 ‘동봉일출, 산사송풍, 성루화각, 강정매설, 조대소우, 염촌담연, 전함홍기, 남포월명’이고, 팔영은 고려시대에 정포가 쓴 시에서 유래한 것으로 ‘태화루, 평원각, 장춘오, 은월봉, 망해대, 벽파정, 백련암, 개운포’를 노래한 것이다. 이들을 또 다른 울산팔경과 함께 분석해 보면, 태화동과 나루건너(越津), 삼산과 반구동, 문수산, 무룡산, 백양사, 개운포가 팔경의 주 무대임을 알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보이는데, 도시중심부에서 직접 바라다 보이는 대상을 울산의 대표 풍경으로 노래했고, 특히 팔영에서 노래한 장소 가운데 절반은 태화루와 태화루에서 바라보는 장소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적어도 지난 천 년간 울산의 명소로 노래되던 이 장소는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무룡산과 문수산 만이 현재 겨우 그 모습을 남기고 있지만, 그 옛날 읍내에서 바라보던 모습은 아니며, 더욱이 시내에서 이 두 산을 볼 수 있는 장소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인공적인 시설도 마찬가지다. 울산초등학교에 있던 울산객사는 그 중요성에 걸맞게 사방 어디에서나 잘 보일만큼 입지가 좋았고, 규모가 컸었다. 그런데 지금의 울산시청이나 5개 구·군청, 교육청과 법원, 미술관과 문수구장 어느 것도 울산이라는 도시를 명료하게 하고 파악하기 쉽게 하는 역할을 포기하고 있다. 이들이 가진 역할이나 사회적 기능은 울산을 대표하지만 시민들에게 울산의 도시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점에서는 울산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점을 좀 더 자세하게 짚어보자.

<한삼건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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