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승리로 이끈 장군의 흔적
임진왜란 승리로 이끈 장군의 흔적
  • 김영수 기자
  • 승인 2008.05.29 2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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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키워드 이순신

절망을 돌파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이런 사람의 아름다움은 세계의 구조적 폭력과 야만성 속에서 비로소 존재하고 빛날 수 있다. 1592년부터 7년간 조선은 왜군의 침입이라는 폭력과 야만성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절망의 시대. 아무도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 그 중 한 사람 정확한 사실에만 입각하는 인물이 있었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사실에만 충실했던 한 남자. 이순신.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고, 미천한 신하는 죽지 않았습니다(今臣戰船 尙有十二 微臣不死). 헛된 희망을 품지않고 과학적 사실에 입각해 야만과 폭력의 시대를 당당히 돌파해갔다. 원수들을 다 죽일 수 있다면 비록 죽을지라도 사양하지 않겠다고 바다와 산에 맹세했던 이순신. 호국보훈의 달 6월을 앞두고 이순신의 일대기를 다룬 창작 칸타타 ‘남해찬가’와 이순신의 흔적을 느낄수 있는 여행지를 소개한다.

이순신 일대기 다룬 ‘남해찬가’ 공연

울산시립합창단, 다음달 3일

아무런 희망도 없는 절망의 7년전쟁 임진왜란. 헛된 희망에 기대지 않고 절망을 그대로 통과해 나간 인간 이순신의 일대기를 담은 창작칸타타 ‘남해찬가’가 다음달 3일 7시 30분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진다.

울산시립합창단(상임지휘자 김명엽)과 국립합창단의 합동 공연으로 진행되는 창작칸타타 ‘남해찬가’는 이순신의 활약과 순국 과정을 전 2부 12장에 그린 대작이다.

지난 1981년에 완성되고 초연된 ‘남해찬가’는 김달성이 김용호의 장편서시사 ‘남해찬가’에 곡을 붙여 각 배역을 맡은 독창자와 대규모의 연합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동원되는 장면이 있는 칸타타(Szenen Kantata)다.

그러나 초연이후 방대한 규모로 인해 공연되지 못하다가 지난 1월 30일 창작관현악 축제를 통해 김명엽 울산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의 지휘로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재연됐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열리는 이번 울산공연은 남해찬가의 3번째 공연.

이날 공연은 울산시립합창단 55명 국립합창단 50명 총 105명의 합창단 과 베이스 솔로, 남성 4중창, 혼성 8중창 등 대규모 편성으로 이뤄지며 2대의 엘렉톤이라는 전자악기를 사용해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재현한다.

1시간 40분의 공연 시간동안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영상자료와 노랫말이 대형스크린을 통해 상영된다. 또 지역연극인 김종수씨가 나레이션을 맡아 단순한 작품해설뿐만 아니라 연극적인 대사전달로 관객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이순신 역에는 비오티 발세지아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리톤 노운병씨가, 일렉톤 연주는 사쿠라이 유키호와 정혜주씨가 맡는다.

김명엽 울산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는 “남해찬가는 너무 방대한 규모로 인해 1981년 초연이후 공연돼지 못하다가 25년이 지난 올해 1월 울산시립합창단, 국립합창단, 그리고 코리안심포니의 합동 공연으로 재현한 작품”이라며 “25년전에 3개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동원되는 대작 칸타타가 완성됐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남해찬가는 2부 12장으로 제1부 ‘역풍속에서’는 제1장 ‘여기 오오랜 역사, 태양 함께 있어’ 제2장 ‘적은 노한 파도처럼’ 제3장 ‘출진의 깃발은 동을 향하여’ 제4장 ‘연달아 승전고는 울리고’ 제5장 ‘모해의 역풍 속에서’ 제6장 ‘한산섬아 어이 네 이름이 한산섬이냐’이며, 제2부 ‘시련을 헤치고’는 제7장 ‘봄과 더불어’ 제8장 ‘초계 당 백의는 잠 못 이루고’ 제9장 ‘미신이 살고 아직도 열 두척이 있사옵거늘’ 제10장 ‘11대 330’ 제11장 ‘바다는 다시 푸르건만’ 제12장 ‘영원히 민족의 이름으로’로 구성된다..

여행지 소개

치열한 전투 끝에 장군 숨져

▷ 남해 이락사

“前方急 愼勿言我死” - 눈 앞의 전투가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1598년 선조 31년 음력 11월 18일 노량해협.

일본으로 돌아가려던 고니시 유키나가를 지원하기 위해 출동한 왜 수군 500척과 조명 연합함대 200여척이 마지막 해전을 펼쳤다.

전투는 치열했고 18일 밤을 지나 19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항아리 같은 관음포에서 패잔선 50여척을 섬멸하던 이순신은 왜군이 쏜 유탄에 맞아 숨을 거뒀다. 순국한 이순신의 유해가 맨 처음 육지에 오른 곳이 바로 남해 고현면 관음포에 위치한 ‘이락사’ 다.

남해대교를 건너 4km정도 들어오면 사적 제232호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를 만날 수 있다. 흔히 ‘이락사’(李落祠)라고 불리는 이 사당은 이순신이 전사한지 234년뒤 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향권이 유허비와 비각을 세워 순국성지의 모습을 갖췄다.

조선수군 학익진 펼처 왜선 점멸

▷ 한산도

한산도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자 앉아 / 큰 칼 옆에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1592년 선조 25년 7월 7일. 견내량 이순신 이억기 원균 조선 연합함대 97척은 왜 함대 70여척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했다. 조선수군은 학익진을 펼쳐 왜선을 점멸했다. 이 해전이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히는 한산대첩이다.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카페리호를 타고 30분을 가면 한산도에 도착한다. 이 뱃길 사이에는 암초위에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거북등대를 만나 볼 수 있다. 한산도에 도착해서 오른쪽으로 가면 이순신이 거처하면서 삼도 수군을 지휘하며 무기를 제작하고 군량을 비축하던 제승당을 만날 수 있다. 홍살문을 지나면 제승당의 강역의 첫 관문인 충무문을 만난다. 제승당은 한산도 안에 있는 누각으로 이순신이 세운 운주당이 있는 누각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임진왜란 끝난 후 이순신 전공 기념

▷ 통영 세병관

통영은 통제영의 약칭으로, 곳곳에 이순신과 관련된 유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중 세병관은 국보 305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군사 목조건물. 세병관은 두보의 시 중 하늘에서 은하수를 끌어와 갑옷과 병기를 깨끗이 씻는다 (挽河洗兵)에서 병기를 깨끗이 씻는다는 ‘세병(洗兵)’을 따와 붙인 것이다. 세병관이라고 걸어놓은 현판은 통제사 서유대의 글씨라고 전한다. 임진왜란이 끝난뒤 이순신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세병관은 1604년 선조 37년에 완공했다. 그후 경상 전라 충청 3도 수군을 총지휘했던 수군통제영의 핵심건물로 사용됐다. 하지만 1895년 일본에 의해 조선수군이 해체돼 통제영의 핵심건물의 역할이 끝나게 됐다.

/김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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