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어머니의 자장가
제3화 어머니의 자장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5.29 1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아 철아 우리 철아

멍멍개야 짖지 마라

꼬꼬닭도 울지 마라

우리 철이 잘도 잔다’

동강 선생이 ‘야산의 들꽃처럼 피었다가 떨어진 한 인생의 이야기’를 끝내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속삭임이 ‘철아 철아 우리 철아’로 기록되어 남아 있다. 자서전 형식을 빌어 남기신 글이다. ‘요즘 들어서 어릴 때 어머니께서 불러주시던 자장가가 자주 떠오른다. 어린 나를 품에 안고 잠재우기 위해 나지막하게 불러주시던 어머니의 자장가…. 어머니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든다면 영영 깨어나지 못한다 해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동강 선생이 병상에서 들려준 어머니의 그리움이다.

동강 선생은 1933년 봄 울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별천지(別天地)’의 학교생활을 시작하였다. 대가족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둘레 어른들만의 보살핌 속에 갇혀 있던 7세 어린이가 큰 건물과 넓은 운동장을 보았을 때는 별천지라는 충격이 왔다. 처음 만나는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노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말도 그렇고 장난도 그렇고 어른들 틈에서 보호 받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자극이었다. 특히, 동강 선생의 부친께서 신학문을 접하신 서울의 ‘선린학습’ 출신이어서 동강 선생을 7세에 신식교육을 시키는 학교로 보내신 것이다. 당시 울산읍은 인구가 3만이 채 안 되던 시절이었다. 아주 드문, 소위 개화(開化)된 집안이었다.

이렇게 재미있게 지내던 어느 여름날, 미열이 나고 기운이 빠져 늑막염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에 정신이 팔리기를 여러 날 하다가 그만 건강을 잃고 늑막염을 얻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도 허약한 몸에 병치레가 잦아서 어른들의 애를 타게 하던 참이라 금방 집에 갇히고 말았다. 집에서 치료를 받으며 고생할 때, 마당의 평상에 누워 잠이 들려는 동강 선생을 위해 더위를 물리치려고 부채질 해주시던 어머니의 자장가, 첫 구절이 ‘철아, 철아, 우리 철아’이다. 이때 문득 시야에 들어온 밤하늘의 별들. 매연이 없던 그 시절, 맑은 하늘의 수많은 별들 속에서 외롭게 홀로 떠있는 밝은 별 하나. ‘… 한참 동안 멍하니 별을 바라보던 나는 그만 욕심이 생겼다. 내 마음을 빼앗아간 그 별을 따오고 싶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의 별 바라보기는 여름이 다 가도록 계속 되었다.’ 그 외로운 별을 평생 동안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 것 만큼이나 ‘철아, 철아, 우리 철아’를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외로움’을 간직하고, 그 외로움으로 어려운 일을 해치고 나갔다. 동강 선생의 ‘외로움’을 물려받아, 외로움의 힘으로 동강병원의 살림을 챙기고 있는 이진흥 사무국장의 변(辯)을 들어보자. 이영자 간호이사님도 모시고 옛이야기를 풀어본다.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