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황새’라는 놈
‘여우와 황새’라는 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12.2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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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시인이며 우화작가인 라퐁텐(La Fontaine 1621~1695)이 있다. 그의 대표작은, 12권으로 된 ‘우화시집’(Fables)인데 240여편의 우화시가 탐스럽게 담겨져 있다. 그는 이 시들을 완전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고치고 고쳐 30년이나 걸렸다고 하니 대단한 역작이다.

그 중에 익히 알고 있는 ‘여우와 황새’라는 유명한 우화가 있다. 이 둘은 숲속에 살면서 너무나 친하게 지낸다. 서로가 교대로 집으로 초대하여 대접하는 장면이 눈에 띈다. 그런데 여우에게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주는 불편한 모습, 황새에게는 넓적한 접시에 음식을 담아 대접하는 모습은, 상대를 골탕 먹이는 수작으로 밖에 볼 수가 없다. 서로가 먹기 편하게 음식을 담아주는 것이 기본적인 배려가 아닌가? 배려의 마음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놈들이다.

며칠 전 중학교 주변에서 목격한 일이다. 오후 3, 4시경 하교 길인 듯하다. 교복을 입은 두 명의 여학생이 사이좋게 걸어가고 있다. 한 학생은 키가 크고 한 학생은 키가 작다. 보기에 너무 대조적이라 필자에게 유난히 눈에 띈 것 같다. 근처 슈퍼에서 뭔가를 사들고 걸어가면서 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 시간은 아무래도 장난끼 많은 아이들에게는 배가 고플 시간일 테다.

언뜻 보기에 삼각모양의 일본식 김밥 같은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요즈음 젊은이에게 인기 있는 요깃거리다. 반질반질한 종이 테를 조용히 벗겨내더니 삼각모양의 비닐을 떼어내 땅바닥에 살포시 떨어트리고는 아무런 공중의식도 없이 태연하게 걷는다. 그리고 주위 사람이 주시하는 것 따위 전혀 개의치 않는다.

화제를 아파트 생활로 돌려보자. 무엇을 하기에 이렇게 아래층에 사는 사람의 생활을 방해하는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경비 아저씨와 함께 위층으로 쳐들어갔다. 사내아이가 둘, 계집아이가 하나, 도합 꼬맹이 세 명이 사는 가족이다. 현관 벨을 눌러 선의의 충고 말을 하니 애비라는 놈이 하는 말이 그렇게 우리 애들이 뛰면서 시끄럽게 한 적이 없단다.

심지어 자기들이 잘못한 일이 없다며 되레 경비 아저씨의 멱살까지 잡아 흔들어대니… 이것이야 말로 요즘말로 ‘멘붕’이 아닌가?

동경 중심지에 120년의 역사를 가진 데이코쿠(帝國)호텔이 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영원한 섹시 심벌 마를린 먼로 같은 세계적인 귀빈들이 머물렀던 호텔로도 유명하다. 이 호텔에서 30년간 근무한 적이 있는 가나와 유키오씨는, 그가 쓴 저서’帝國ホテル 傳統のおもてなし’에서 고객에 대한 섬세한 배려를 어떻게 하는 건지 또한 명품 서비스정신이 어떤 것인지 하나하나 설명해 놓고 있다.

일례를 보면, 서빙하는 직원이라면 고객이 마시는 찻잔에 유달리 관심을 갖는다. 차를 마실 때 찻잔이 어느 정도 기울어져 있는지 그 찻잔의 기울기를 보고 리필 여부를 판단한다. 그뿐이 아니다. 객실손님이 묵고 떠난 호텔 룸에 깜빡 잊고 두고 간 조그마한 물건은 물론, 손님이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 휴지종이까지 소중히 보관해 둔다. 즉 고객이 남기고 간 모든 것을 봉지에 그대로 담아 이름·체크아웃 일자 등을 기록하여 매달아 놓는다.

이렇게 그들은 고객을 위하여 극진히 배려하고 섬기는 오랜 전통과 서비스 정신이 몸에 가득 배어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그리코(江崎 Glico)라는 껌 회사에서 판매하는 특이한 상품을 하나 소개하자. 껌을 다 씹고 난 뒤 아무 곳에나 버리지 말라는 뜻에서 ‘매너 포켓’이 부착된 상품이다.

껌을 담아 버릴 수 있는 주머니를 달아 상품화한 것으로 기발한 아이디어의 기호품이다. 이 회사야말로 사회에 대한 배려가 유달리 돋보이는 양심기업이 아닌가?

더욱이 인간의 생활 속 사소한 일까지 배려해주는 회사(Suwada流)도 있다. 이 회사에서 만든 손톱깎이는 값비싸지만 장인정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의 발톱도 깎을 수 있는 다양한 것도 있다. 그중 손톱을 깎을 때 손톱이 튀지 않게 깎을 수 있는 것도 있으니, 실로 인간의 일상 구석구석까지 배려하는 그들의 마음이 놀랍다.

아무런 공중의식이 없는 아이들, 남이야 어떻든 자기만 잘 살면 된다는 사고방식, 명품 서비스정신이 배어있는 데이코쿠 호텔, 사소한 일에까지 배려해주는 일본의 기업을 보면서, 임진년 한해를 보내는 지금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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