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大) 탕평의 꿈
대(大) 탕평의 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12.20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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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첫 발언은 통합과 대(大)탕평이었다. 한마디로 탕평책을 쓰겠다는 것이다. 민생대통령과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과 함께 대탕평을 최고의 국정운영 가치로 내세운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과거 반세기 동안 이어진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화해와 대탕평으로 끊겠다”고 말했다. 또 이를 위해 “모든 지역·세대·성별의 사람들을 골고루 등용하고 대한민국의 능력을 최대로 늘려 한 분 한 분과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꿈이자 소망”이라고 밝혔다.

지난 선거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으로 갈라졌고 지역도 갈렸다. 세대간 대결현상도 보였다. 선거기간 내내 네거티브라는 흑색선전도 얼마나 많았는가. 이런 편가름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려면 지지층 통합에 못지않게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을 아우르고 품어야 한다. 승자와 패자란 말 대신 당선과 낙선만 있을 뿐이라는 선언이라도 하면 더욱 좋겠다. 그리고 나서 우선적으로 탕평책을 펴는 것이다. 국민통합이란 말이다. 52대 48로 갈라진 나라를 하나로 만들려면 내 편을 먼저 누르고 다른 편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탕평(蕩平)은 말 그대로 “싸움이나 시비, 논쟁 따위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음”이란 뜻이다. 서경(書經) 홍범(洪範) 편에서 따온 말이다.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이란 말을 줄여서 ‘탕평(蕩平)’이라 한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탕평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던 지도자가 있다. 조선 22대 정조(正祖)대왕이다. 정조는 조선의 모든 잘못과 폐단이 당파와 붕당(朋黨)에서 시작되었다고 진단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탕평채(蕩平菜)란 요리를 함께 먹도록 했다는 설까지 있다. 탕평에 대한 간절함이 얼마나 컸으면 먹는 것에도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을까. 무서운 집념이다. 그래야만 정조 자신과 백성, 나라가 온전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지금 이 땅의 선거에 비유하면 여야와 영호남, 보수진보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융합된 상태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진정한 탕평이다.

210여년 전, 정조의 꿈이었던 탕평은 무산되었다. 조선 재건의 마지막 기회도 함께 사라졌다. 그 후 여러 차례 탕평이란 말이 나왔지만 구두선에 그쳤다. 이제 18대 대통령이 다시 탕평의 꿈을 밝혔다. 변방의 가야계 김유신을 중용하며 내 편이었던 비담을 내치는 선덕여왕의 의지가 읽힌다. 선거기간 내내 지적된 불통이란 약점을 극복하고 주변에 둘러쳐진 인의 장막을 제거할 기회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우리는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소 불안한 시선도 있을 것이다. 꼭 반대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의 약속이라고 해서 모두 선하게 실현되지는 않더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울산과 관련된 공약도 마찬가지다. 어떤 공약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날 수도 있고, 어떤 약속은 다른 지역과의 힘겨룸에서 밀리거나 달라진 상황에 따라 변경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탕평과 함께 통합과 소통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그래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만들어진다. 더욱이 사교육비 문제와 청년실업 해결은 급선무이다. 비정규직과 양극화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약자를 우선 보듬고 그들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민주주의의 권력은 모두 선거를 통해서 나온다. 우리의 헌법은 어떤 정권의 유효기간도 5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도 대통령 선거는 계속된다. 권력이 내가 장악한 내 소유가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반대했던 나머지 절반의 마음, 나와 다른 생각을 잘 읽고 다독일 때 미래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그래서 탕평책이다. 그것이 탕평을 하는 이유이다.

1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광해’에서 왕은 이런 말을 했다. “내 나라, 내 백성을 지키는 왕이 되겠소” 탕평과 함께 지도자가 명심해야 할 명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대한 지도자들은 모두 그랬다. 국민들을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국민 속으로 들어갔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신 국민과 함께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도 이제 그런 대통령을 꿈꾼다. 평평탕탕! 정조의 꿈이 실현되는 나라에 살고 싶은 것이다.

김잠출 기획국장 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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