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길
시인의 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12.1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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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편집의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도 끝내 버리지 못한 것은 시인을 향한 꿈이었다. 이른바 ‘늦깎이 등단’을 시작으로 나와의 싸움을 펼친 지 어느덧 4년이란 세월이 강물처럼 흘렀다.

그간 오랜 세월 묵혀 두었던 습작 노트의 켜켜이 쌓인 먼지를 툭툭 털어 내고 무뎌진 감성을 다듬어 제대로 된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짧은 단어 하나에 매달려 며칠 밤을 끙끙 앓고 나면 ‘내가 왜 이 어려운 길을 다시 선택했을까’하는 회의에 빠지기가 일쑤였다. 그러다가도 고민하던 시어(詩語)가 번뜩 뇌리에서 솟구치기라도 하면 가눌 수 없는 희열에 흠뻑 젖기도 했다.

아무튼 이제 지독한 글쓰기의 매력에 끌려 그다지 진부하지 않은 삶을 잇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의 선택이 그리 어설프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오늘이 있기까지는 그간 쌓인 내면의 응어리를 풀어내려 숱한 불면의 밤과 화해를 시도해야만 했다. 게다가 뒤늦게 옛길을 찾아 나서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이 늘 나의 뒤통수를 간질였다. 하지만 나는 그 어설픈 상황에 마냥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어 어느 날부터인가 눈을 질끈 감은 채 나의 앞에 무겁게 둘러 처진 높은 벽을 향해 조금씩 다가서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써 내려가던 청년 시절의 그 풋풋함을 되살리며 창작을 향한 욕망의 바다에 과감히 몸을 던졌다.

이미 잔뜩 낀 녹을 조금씩 닦아 내며 타고난 소질만 믿고 정말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다. 누구도 넘보지 않는 나만의 세계에 흠뻑 도취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한 나날이 이어지고 계절이 예닐곱 번쯤 바뀌었을까. 마침내 60여 편의 시가 탄생했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출간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토록 갈망하던 첫 시집이 태어난다는 기쁨은 어디에도 비할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나의 작품에 대해 몹시 궁금해 하던 아내 앞에 첫 시집 원고를 펼쳐 보이며 출간의 뜻을 당당히 밝혔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원고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한 동안 침묵하던 아내가 나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건 시가 아니에요.”

너무 충격적인 아내의 짧은 이 한 마디에 나는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평소 나의 창작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아내가 전혀 예상치 않은, 엄청난 수모를 내게 안겨 준 꼴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아내 앞에 놓인 원고를 주섬주섬 챙긴 다음 서재로 갔다. 그리곤 밤 새워 60여 편의 시들을 다시 차근차근 뜯어보았다. 아내의 말대로 그것은 ‘시’가 아니었다. 서툰 구절구절마다 ‘조급함’, ‘어색함’, ‘거만함’ 따위의 빛깔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먼동이 터 올 무렵, 나는 60여 편의 미숙아들(?)과 과감한 이별을 하고 말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엄청난 폭풍이 나의 내면을 할퀴고 지나간 뒤 한동안 나는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높디높은 문학의 벽을 우습게 여긴 경솔함과 무례함을 탓하며 날마다 자성의 시간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근황을 접한 문학회의 한 선배 시인이 짤막한 문자 메시지를 보내 왔다.

‘후배야, 폭풍이 지나간 들에도 꽃은 핀다네.’

그 선배의 메시지가 큰 힘이 되었을까. 아무튼 그날 이후 나는 마음을 모두 비운 채 그립던 원고지와 다시 마주했다. 그 결과 시련이 약이 되었는지 마침내 새롭게 엮은 첫 시집을 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엔 비록 대단하진 않지만 첫 문학상을 수상하는 작은 기쁨도 누렸다.

그러나 쓰면 쓸수록 어렵고, 두려움은 늘 나의 주변을 떠돈다.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천성을 이기지 못해 앞으로도 숱한 불면의 밤과 화해를 해 나가야 한다는 숙제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어느 날 두려움에 무감각해져 내 스스로 ‘시인의 길’을 갈지자로 걷지나 않을까 은근히 염려도 된다.

바야흐로 미래의 작가들이 신춘문예의 꿈을 안고 잠 못 이루는 계절이다. 문인의 푸른 꿈을 키워 가던 내 젊은 날의 초상을 문득 떠올리며, 권기만 시인이 던진 가슴 뜨끔한 메시지를 다시 꺼내 읽어 본다.

‘함부로 시인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다가 안 되면 결국 가짜 시인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 사이비 시인이 너무 많아서 행복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래서 참다운 상상력을 만나는 일이 쉽지가 않다. 혼선이고 뒤죽박죽이고 지루하고 무겁다. 유명하다는 시인들이 더 시대정신이 없다. 더 시대를 앓지 않는다.’

김부조 시인·동서문화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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