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상품의 진실성
예술상품의 진실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5.2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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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자기 과(科)의 학생을 다른 과의 교수가 꾸중을 하면 싫다. 자기 과의 학생을 사랑하면 사랑하는 만큼 싫다. 직장에서 우리 부서의 직원을 다른 부서의 직원이 비방하면 싫다. 내 부서를 아끼면 아끼는 만큼 싫다. 내 자식의 얼굴이 조금 못 생겼어도 이웃집 사람이 이상하게 생겼다고 하면 싫다. 내 자식이니까 그렇다. 더구나 내 마누라를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하여도 조금 뚱뚱한 편이라고 하거나, ‘건물이 크면 유지비가 많이 들어 힘이 들겠어’라고 농담하는 것은 싫다. 내 마누라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쁜 것이다. 특히, 내 부모를 두고 계급이 낮다거나, 돈을 못 번다거나, 상놈 집 자손이라고 평하는 것은 김일의 박치기로 한방 먹여주고 싶은 심정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내 핏줄을 욕보이는 것이니까 그렇다. 내가 이렇게 존재하고 싶어서 존재하게 되었느냐고 따지고 싶다.

옛날에는 우리 학교 선생님을 동네 순경이 뭐라고 해도 덤벼들고, 남녀 공학의 남학생들은 자기 학교 여학생을 다른 학교 남학생이 말만 걸어도 ‘히야가시’한다고 싸움을 걸었었다.

소설가 이문열은 대학 때 은사이신 김윤식 교수가 이 시대의 이야기꾼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문학평론의 입장에서 비평했을 때, 무척 발끈(?)하여 신문지상에 반박하는 글을 썼다. 내가 쓴 소설을 내 자식과 같은 심정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정치평론 잘못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다. 경제정책(경제평론) 잘못 건드렸다가는 세무사찰 받는다. 교육평론은 내 자식이 대학을 졸업한 뒤에 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더구나 모든 사람이 쉽게 하는 것이어서 크게 걱정 안 해도 되는 일이다.

화가 천경자님은 당신의 모조품이 발견되었을 때 무척 불쾌해 하였다. 이것은 마치 자기 그림에 누가 개칠한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일반 사람들은 그 모조품의 어떤 점이 진품과 얼마나 다르길래 저럴까 궁금할 정도였다. 그만큼 구별할 수도 없었는데 천경자님의 말은, ‘내 작품의 가격을 놓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작품의 순수성을 따지는 것이다’이었다. 서정주님의 ‘국화 옆에서’ 첫 연에 ‘소쩍새’가 나온다. 서정주 시인(詩人)은 오랫동안 ‘소짝새’라고 해야 한다고 하였다. 사투리가 아니라 낭독할 때 ‘짝’이라고 하면 벌어지는 우리의 입모습이 간절해서 좋고, ‘쩍’이라고 할 때 치켜드는 턱의 모습이 싫다고 하였다.

대학신문에서 견습 기자로 일하는 김 군이 어느 교수에게 원고를 청탁하였을 때, 그 교수의 첫마디가 내 원고에 손을 대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꼭 고치거나 줄여야 할 일이 있으면 사전에 양해를 받고서 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김 군이 무심코 상당 부분을 줄여서 대학신문에 실어버렸다. 점잖은 그 교수는, ‘아침 출근길에 똥 밟은 심정이야’라고 중얼거리며 김 군을 불러서 나무라지도 않았다.

가르쳐서 고쳐질 가능성이 엿보이는 학생이라면 열 번이라도 타이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으면 무관심이 최선의 대응책이기 때문이다. 다만 ‘셰익스피어 작품을 아무리 잘 평론해도 셰익스피어만큼 예술의 창작성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독백을 할 뿐이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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