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우리 학교 선생님을 동네 순경이 뭐라고 해도 덤벼들고, 남녀 공학의 남학생들은 자기 학교 여학생을 다른 학교 남학생이 말만 걸어도 ‘히야가시’한다고 싸움을 걸었었다.
소설가 이문열은 대학 때 은사이신 김윤식 교수가 이 시대의 이야기꾼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문학평론의 입장에서 비평했을 때, 무척 발끈(?)하여 신문지상에 반박하는 글을 썼다. 내가 쓴 소설을 내 자식과 같은 심정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정치평론 잘못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다. 경제정책(경제평론) 잘못 건드렸다가는 세무사찰 받는다. 교육평론은 내 자식이 대학을 졸업한 뒤에 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더구나 모든 사람이 쉽게 하는 것이어서 크게 걱정 안 해도 되는 일이다.
화가 천경자님은 당신의 모조품이 발견되었을 때 무척 불쾌해 하였다. 이것은 마치 자기 그림에 누가 개칠한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일반 사람들은 그 모조품의 어떤 점이 진품과 얼마나 다르길래 저럴까 궁금할 정도였다. 그만큼 구별할 수도 없었는데 천경자님의 말은, ‘내 작품의 가격을 놓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작품의 순수성을 따지는 것이다’이었다. 서정주님의 ‘국화 옆에서’ 첫 연에 ‘소쩍새’가 나온다. 서정주 시인(詩人)은 오랫동안 ‘소짝새’라고 해야 한다고 하였다. 사투리가 아니라 낭독할 때 ‘짝’이라고 하면 벌어지는 우리의 입모습이 간절해서 좋고, ‘쩍’이라고 할 때 치켜드는 턱의 모습이 싫다고 하였다.
대학신문에서 견습 기자로 일하는 김 군이 어느 교수에게 원고를 청탁하였을 때, 그 교수의 첫마디가 내 원고에 손을 대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꼭 고치거나 줄여야 할 일이 있으면 사전에 양해를 받고서 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김 군이 무심코 상당 부분을 줄여서 대학신문에 실어버렸다. 점잖은 그 교수는, ‘아침 출근길에 똥 밟은 심정이야’라고 중얼거리며 김 군을 불러서 나무라지도 않았다.
가르쳐서 고쳐질 가능성이 엿보이는 학생이라면 열 번이라도 타이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으면 무관심이 최선의 대응책이기 때문이다. 다만 ‘셰익스피어 작품을 아무리 잘 평론해도 셰익스피어만큼 예술의 창작성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독백을 할 뿐이다. / 박문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