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회장의 ‘경청’
어느 회장의 ‘경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11.2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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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로 걸어가다 보면 크리스마스 캐럴이 이제 제법 들린다. 그런 가운데 제18대 대통령선거도 며칠 남지 않은 것 같다. 각 대선 후보들은 다양한 단체나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찾아가 그들의 요구사항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이 연일 매스컴에 목격된다.

신이 인간에게 한 개의 혀(舌)와 두 개의 귀(耳)를 내려준 것은, 말하는 것보다 두 배 더 많이 들으라는 뜻이 아닐까? 귀가 외이, 중이, 내이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은 상대의 말하는 바를 귀담아 잘 듣고 무슨 말을 하는지를 신중히 생각하게 하며,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구분 지어 이해하라는 것일 테다.

삼성가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셋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이 신입사원으로 첫 출근하는 어느 날, 자기 방으로 제일 먼저 출근하라고 한다. 다름 아닌 첫 출근선물을 주기 위해서다. 방에 먼저 들어와 앉아있는 이건희 사원에게 준 선물은 단지 ‘경청하라’는 말 한마디였다.

창업주는 아들에게 많은 현장에서 부딪히며 스스로 익히도록 하는 교육방식을 가르쳐왔고 또한 경영일선에 항상 아들을 동반하면서도 그 어떤 일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물으며 사고를 키워왔다.

4대 성인 중 한사람인 소크라테스는 강조해 말하기를 ‘세련된 화법은 듣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그는 아테네 청년들에게 항상 ‘자네들이 먼저 이야기해 보게나! 나는 그것으로 판단할 지어다!’라고 하면서 말을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입신출세하는 방법을 잘 가르쳐주는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1888-1955)는 전 세계적으로 6천만부나 판매돼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바 있는 그의 저서 ‘인간관계론’에서 ‘어느 누구도 성공하고 싶다면 듣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라고 했다. 오늘날에 사는 우리들의 심각한 문제는 그야말로 대화의 상실이 아닐까? 상대방의 이야기를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실시한 학기초 수강신청 결과를 보면, 놀랍게도 듣기 강좌의 과목보다 말하기 강좌의 과목이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하니 더욱 실감이 난다.

미국 내 시청자만 2천200만명 세계 105개국으로 방영되었던 유명한 토크쇼의 주인공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 1954~)가 있다. 사생아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토크쇼에서 게스트의 발언 하나하나를 매우 주의 깊게 경청한다. 그런 후 정말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중간 중간에 살짝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하나같이 달변가도 아닌 평범한 게스트들은, 그녀의 이런 질문을 이정표로 삼아 생생하고 감동적인 자신의 라이프 스토리를 잘 털어 놓았다고 한다.

같은 여성으로 심리학자 겸 칼럼니스트인 조이스 브러더스(Joyce Brothers, 1927~)는 ‘상대에게 가장 충실한 아부란, 무조건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잘 이해해 주는 사람에게 우리들은 끌리게 마련이다. 상대가 우리의 이야기를 많이 경청하고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잘 이해해주고 있다는 말이다. 진정한 관심이야말로 우리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뜻 깊은 선물이 아닐까?

뉴욕의 어느 은행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자. 은행이라는 서비스업계에서 첫 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경영진이 합리적인 경영방침이라고 뭔가를 내놓았다.

5천달러 이상의 금액을 출납할 경우에는 출납창구를 이용하게 하고, 그 이하의 금액은 자동출납기를 이용하도록 해 인건비를 줄이려는 졸렬한 방법을 고안했다. 며칠이 지나자 은행 예금액이 갑자기 줄어들었다. 원인을 조사해보니, 자동출납기라는 기계를 상대로 해야 하는 고객들은 한결같이 불만을 토로하고서 다른 은행으로 구좌를 모두 옮겨 가버리는 것이다. 기계는 입력된 내용만을 취급할 뿐이지, 고객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전혀 들을 수도 이야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라도 성공하려 한다면 상대방의 말에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말속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으며 문제와 해답이 있고 또한 신뢰와 불신, 교만과 겸손 같은 심오한 말들이 내포돼 있으니 더욱 그렇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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