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박물관의 변신을 기대한다
대곡박물관의 변신을 기대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11.22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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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울주군 두동면 삼정리 방리마을. 대곡댐 건설을 위한 문화재 발굴조사가 마무리됐다. 수많은 토기와 자기, 기와가 쏟아져 나왔다. 수레와 바퀴 자국도 확인됐다. 무덤은 무려 1천100기가 발견됐고 오리모양 토기, 뿔잔받침과 철로 만든 갑옷과 칼이 나와 과거 전쟁의 흔적도 엿볼 수 있었다. 대곡천 유물은 김해박물관에 보관되거나 대곡박물관에 전시중이다.

대곡천(한실내, 반계)은 백운산에서 발원한 태화강의 한 지류다. 그러나 여느 하천과는 다른 특이한 계곡이다. 자연환경이 빼어날 뿐 아니라 문화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은 곳이다. 1억년 전 살았던 공룡들은 이 곳 바위에 24개의 발자국을 남겼다.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라는 국보도 있다. 신라 진흥왕은 어릴 때 놀러 왔고 신라 왕실의 애틋한 로맨스도 남아있다. 화랑들과 언양의 승려,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흔적을 남겨 놓은 곳이다. 포은선생이 시를 지으며 임금을 그리워하던 곳이고 겸재가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조선의 선비들도 대곡천을 사랑했다. 도남 최남복은 방리 잠방골에 수옥정(백련정)을 지었고 운암 최신기는 집청정(集淸亭)을 세웠다. 언양의 천사 송찬규는 반계구음곡 10수를 남겼다. 모두 대곡천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 권종술, 신창호 등 언양의 유림들이 반구서원을 복원하고 유허비를 세웠다. 울산의 역사와 문화, 선인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모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곡천을 ‘울산 역사문화의 발원지이자 집합지’라고 한다.

이런 곳에 박물관이 있어야 당연하니 2009년에 대곡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개관 초기 구곡문화를 재조명한 전시와 실향민들의 추억사진전, 수몰지 유물전시 등은 대곡박물관만의 신선한 기획이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각종 학습과 체험교실도 호응이 좋았다.

이제 대곡박물관의 변신을 기대한다. 때마침 관장도 바뀌었다. 새로운 분위기가 필요할 때이다. 박물관의 정체성 확립이 우선이다. 그런 다음 구곡문화의 참 뜻을 규명하고 알리기 위해 이름붙이기와 설명문을 달아놓고 구곡 탐방로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걸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청동기 유물을 위주로 한 고고전문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을 공고히 하면서도 전문가의 지식과 상상력을 발휘해 다양한 전시 기획을 시도해야 한다. 삼짇날 대곡천변에서 공룡발자국을 탁본하는 어린이들과 화전과 꽃지지미를 만드는 어머니들, 대곡천 전체를 야외전시장이나 무대로 삼아 예술의 향기를 날리고 달빛기행을 곁들이는 상상을 하면 황홀하기까지 하다.

또 굳이 대곡댐 수몰지역에 한정된 유물 전시만 고집할 필요도 없다. 댐으로 인한 수몰 실향민들에게 추억의 공간으로 제공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울산 곳곳의 망향비를 모아 실향민들의 향수를 달래고 수몰 전 대곡천과 언양지방의 실경 산수화 전시를 하는 일도 기대한다. 1960년대 이후 울산 이주민들의 역사 문화를 모으는 작업도 대곡박물관이 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이 와야 한다. 작은 도서관을 보면 박물관의 길이 보인다. 크기와 전문성이 다른 박물관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큰 박물관과는 다른 이색적인 주제와 특이한 내용의 전시를 통해 작은 박물관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에코뮤지엄(Ecomuseum) 운동’이나 지방자치가 발달된 유럽의 마을박물관도 참고해야 한다. 언양을 중심으로 한 서부울산의 공동체가 주체가 되는 지역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울주군과 지역민들이 함께 꿈꾸고 가꾸는 박물관을 고민해 보자.

언양의 자랑은 산세와 절경뿐 아니라 유명 인물도 많다. 울산 최초의 신문기자이자 국정교과서의 대부였던 김기오, 고무신 시인 박종우, 봉선화 시인 이호경, 소설가 오영수, 설화작가이자 영문학자 정인섭 선생 등 문화예술인들이 수도 없이 많다. 신격호, 서갑호, 김만중 등 언양의 갑부들도 있다. 이들을 조명하는 전시나 기획은 모두 대곡박물관의 몫이다.

박물관은 오래된 유물이나 문화적, 학술적 의의가 깊은 자료를 수집해 보관하고 전시하는 곳이다. 유물발굴과 연구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박물관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동시대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공연이나 영화감상 기회를 갖고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세미나와 회의장소로 제공해도 하나도 이상할게 없는 시대이다. 박물관이라고 해서 더 이상 멈춰진 시간, 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생동감 있고 살아있는 공간으로 변하라는 것이다. 박물관은 살아 있다는 말은 그 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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