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리 작살·줄 사용 포경, 인류 해양 경제활동 시원
대곡리 작살·줄 사용 포경, 인류 해양 경제활동 시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11.0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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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신·물질문화의 원형-원형·변형문제에 대해(63)
줄이 고삐로 바뀌자 야생동물이 가축으로 바뀌었고, 그로 인해 식량 생산을 위한 노동 시간은 현저하게 단축됐으며, 오히려 잉여생산물들이 축적되었다. 그동안의 채집이나 사냥 그리고 어로 등을 주로 한 식량 획득 위주의 생활 패턴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됐는데, 그것은 여분의 식량은 오래도록 저장할 수 있는 기술 개발과 비축용 그릇 제작 등으로 이어졌다. 다시 말하자면, 토기의 제작과 함께 소금에 절이기 그리고 훈제하기 등의 기술이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삐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줄은 서로 다른 이것과 저것을 하나로 통합하고 또 아우를 수 있는 중간재이자 특정 개체의 성질을 극대화시키거나 다른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제어 수단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서로 다른 속성의 매체들을 하나의 시스템 속에 통합시킬 수 있게 되었고 또 그에 따라 새로운 기능을 갖는 변형들이 지속적으로 고안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뾰족한 돌멩이와 나무막대가 줄에 의해 결합되면서 돌도끼, 돌창, 작살 등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또한 나무와 줄이 결합되면서 활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 줄 가치 발견 문명화 본격 시작

사람들은 나무와 줄의 탄성을 결합시켜 사거리가 먼 활을 만들 수 있게 됐으며, 그것은 사냥의 성공률을 높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활은 사냥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는 게 해 주었다. 돌도끼와 돌창 그리고 작살 등도 같은 구조를 띠고 있다.

재질이 서로 다른 돌과 나무가 줄에 의해 결합되면서 기능이 보다 향상된 생활 및 사냥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됐으며, 그것들의 기본적인 구조는 수천 년의 시간이 경과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줄의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인류는 문명화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줄의 기본적인 속성은 떨어져 있거나 나눠진 것들을 묶어주고 또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줄이 생기자 바늘이 발명됐다. 바늘이 생기자 줄의 기능은 극대화됐다. 가죽을 기워서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게 됐으며, 이로써 추위를 극복할 수 있게 됐고 또 신체를 보다 잘 보호할 수 있게 됐다. 줄과 바늘이 하나의 쌍으로 조합으로 결합되자 이번에는 찢어지고 분리된 것을 잇고 갈라진 것을 붙이며, 터진 곳을 꿰매는 등 원자재의 재질을 수선하거나 개량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줄은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여야 했던 일들을 동물의 힘, 즉 축력을 통해 보다 쉽고 또 능률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또한 축력의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들은 한편으로는 수레를 만들어내게 됐고, 그것의 기능은 더욱 분화돼 사람이 타는 마차와 짐을 싣는 운송용 수레로 양분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삐의 등장은 말과 같이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동물을 기승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기승용 가축의 등장은 사람들의 활동 반경을 넓혀줬으며, 그로 인해 주변 지역과의 교류의 기회 및 신속한 정보 전달과 공유의 기회를 증대시키는 등 사람들의 삶의 질을 한 단계 격상시켜 주었다.

● 고래 장악·포획위해 도구 디자인 적극

대곡리 암각화 속에는 두 척의 배가 협력해 고래를 잡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뱃머리에 서 있는 작살자비는 긴 작살을 들고 있다. 여러 가지 정황을 놓고 볼 때 작살자비가 꼬나 든 작살에는 줄이 연결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줄은 작살에 맞은 고래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고안된 장치이다. 그러니까 그 줄은 사람과 고래 또는 고래와 배를 이어주는 특별한 장치인 것이다. 사람들은 고래의 몸통 속에 박힌 작살과 줄을 통해서 고래를 장악했으며, 줄로 인해 고래는 지치고 마침내 포획된다.

뱃머리에 묶인 줄이 고래와 연결되어 있는 모습도 이 암각화 속에는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실루엣으로 그려진 배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고, 고래는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인데, 그것은 윤곽만 쪼아서 그렸다. 배와 고래 사이에 연결된 선은 잡은 고래를 끌고 가는 줄을 형상화한 것임을 누구라도 금방 알 수 있다. 거대한 고래가 단 하나의 줄에 의해 이끌려가는 모습인데, 그것은 좌초된 고래가 아니라 먼 바다에 나가서 포경을 했던 사실을 당대의 문화 주체들이 그들의 손으로 직접 남김 생생한 증거이자 분명한 도상 기록물인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두 개의 장면, 즉 작살자비가 고래를 향해 작살을 꼬나 든 모습과 줄 하나로 고래를 끌고 가는 모습 등은 인류의 문명사에서 가장 오래된 해양 경제 활동의 기억이자 시원형이다.

그것은 보다 늦은 시기에 그려진 세계 각지의 고래잡이 장면이나 아직까지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래잡이를 하는 오지 마을 사람들, 그 밖의 포수들의 증언이나 회고담 등을 종합해 볼 때, 절차와 방식 그리고 내용 등에서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이 암각화 속에 그려진 작살자비와 고래 견인 장면 등은 적극적인 고래잡이 광경을 형상화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림 가운데는 당시의 고래잡이 어부들이 썼던 작살 촉이 고래의 몸통 가운데 분명하게 새겨져 있다. 작살의 끝은 매우 가느다란 선으로 예리하게 그려놓았으며, 동시에 그 끝은 고래의 심장 부분을 겨냥하고 있다.

심장은 생명의 근원이며, 그것을 공격하고자 하는 것은 어부들의 유전인자 속에 전해진 공격적 본능이다. 물론 이 그림을 남긴 선사시대 대곡리의 화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심장을 향해 작살을 내던진 고래잡이의 염원은 그것이 목적했던 곳을 정확히 헤집고 들어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대장장이인 작살 제작자는 그 용도에 맞게 그것을 디자인했던 것이다.

● 선사시대 고래잡이법 오늘날까지 이어져

그림 속에는 두 개의 그물이 그려져 있다. 그것도 역시 줄을 엮어서 만든 것이다. 여러 개의 줄을 엮어서 만든 망은 잡고자 하는 사냥감을 몰거나 가두어 도망가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장치이다. 그물로 고래를 몰아서 도망가지 못하게 한 후 작살을 던져 고래를 잡는 방법을 ‘아미토리식’이라고 하며, 그것은 근대 일본의 목판화 속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일본의 타이지에서는 아직까지도 이 지역의 좁고 긴 해협과 만 속으로 회유하는 고래들을 그물로 몰아서 무자비하게 포획하고 있다.

대곡리 암각화 속에는 오늘날에도 세계 각지의 포경업 종사자들 사회에서 그대로 목격할 수 있는 형상들이 그려져 있다. 작살자비가 들고 있는 작살은 작살포로 이어졌으며, 그것은 군사용 포탄과 미사일 그리고 우주선으로 이어진다.

작살자비가 작살을 들고 고래를 공격하는 모습은 이후 전 세계의 고래잡이 어부들이 고래를 잡는 모습과 동일하며, 육상에서 창을 든 창기병들의 전투도에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만들어 썼던 그물과 오늘날의 그물에는 어떠한 차이도 없다. 그들이 그물을 활용해 잡았던 고래잡이는 지금도 이용되고 있고, 그들이 공격하였던 급소는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표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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