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이룩 물질문화의 가장 오래된 원형은 고삐
인류 이룩 물질문화의 가장 오래된 원형은 고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10.2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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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신·물질문화의 원형-원형·변형문제에 대해(62)
조형예술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쉬쉬키노 바위그림 중 말 그림의 배 밑에 그려진 동그라미는 형태상으로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의 단위이며, 그러므로 그것을 궁극의 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더 세분시킬 경우, 그것은 시각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며, 그러므로 그 동그라미(점)는 모든 형태의 근원이자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상징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모든 생명체의 씨앗이자 알이다. 시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존재의 시작인 동시에 귀결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아직 발아하거나 분화되기 이전의 상태이고, 또 모든 활동들이 동결된 모습이다. 그것은 겉으로는 완결된 하나의 개체로서의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미분화됐기에 카오스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요소들이 응집된 집합체이기도 하다.

‘모든 요소들이 응집되어 있다’는 말은 곧 다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고유한 속성들이 그 집합체 속에 내포되어 있다는 말이다. 비록 그것이 미분화되어 있을지라도, 그 껍데기 속에는 온전한 개체의 고유한 속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주는 유전인자들이 들어 있으며, 물론 그 인자들 속에는 그것이 온전한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에 대한 경험과 기억들이 간직되어 있다. 그것이 외형을 갖추도록 해 주는 영양소뿐만 아니라 내용을 구성하는 경험과 기억들이 그 작은 타원형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속에 그와 같은 요소들이 간직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특정한 그 무엇 또는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 석기시대 바위그림 원형·타원형 형상화

쉬쉬키노를 비롯한 석기 시대의 바위그림을 남긴 화가들은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원형을 그와 같은 타원형으로 형상화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동물 형상과 같이 병치했던 배 밑의 타원형은 동물의 미분화된 상태이며, 동물형상은 타원형이 분화·성장한 모습인 셈이다. 결국 구체적인 모습을 띤 동물형상과 가장 단순한 모습으로 축약된 타원형은 기본적으로 등가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 연구자들은 석기 시대의 벽화 가운데서 동물 형상과 더불어 나열된 점열들이 그 동물의 개체 수를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렇듯 타원형은 조형예술에서 존재의 가장 기초적이자 기본적이며 최소의 형태이며, 그러므로 이것이 없는 한 어떠한 형상의 표현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타원형은 이미 밝힌 바 있듯이 점이나 바위구멍 등으로도 표현되어 왔으며, 그것으로부터 동심원, 가로 또는 세로 등 둘로 양분된 도형(태극형), 그 밖의 제3의 도형으로 분화와 변형들이 이루어졌고 또 그에 대한 저마다의 이름들이 붙여졌다.

물론 점이나 타원형 또는 바위구멍 등은 시간과 공간이 바뀌고 또 제작 집단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그려져 왔고 또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려질 것이다.

● 짐 실은 소·말→ 수레끄는 동물→ 마차로

그러나 시간이 경과되면서 특정 이미지의 시원 형과 그 제작 동기 그리고 의미 등은 새로운 제작 주체들에 의해 변질됐으며, 그에 따라서 특정 형상들은 차례로 이어진 시기마다 제작 주체들이 안고 있었던 새로운 고민들과 당대의 핫 이슈들이 그 속에 첨가되면서 최초의 모습 또는 의미와는 다른 문화상, 즉 원형과는 구별되는 변형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새롭게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는 제작 주체가 체험했던 온갖 종류의 자연 현상과 어떤 한 순간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사회적 사건 그리고 당대의 정신문화 및 물질문명 등이 용해되어 있는 것이다.

시원미술 가운데는 이전에 어디에서도 살펴본 적이 없는 형상들이 그려져 있다. 그런 까닭에 이를 통해서 특정 형상의 원형과 변형의 문제들을 짚어낼 수 있다. 선사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지속적으로 현장을 조사하고 새로운 유적을 발견하기 위하여 애쓰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원형에 대한 탐구에 있다. 연구자들은 언제나 제일 먼저 그려진 형상은 무엇이었고 또 그것을 어디에, 어떤 방법으로 그려졌으며, 그것을 왜 그렸는지 등의 문제를 풀어내고자 노력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형상은 주로 동물이었다. 동물 형상 가운데 일부가 피를 흘리거나 창이나 화살에 상처를 입은 형상 등을 통해서 그것들이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주술과 관련됐다는 주장이 펼쳐졌다. 이와 같은 주장들은 이후 지속적으로 그려진 수렵 관련 주제들이나 모의사냥 의례 등과 결부되어 설득력을 지니게 됐다.

또한 그림의 구성 방식, 즉 중심과 주변, 중심제재와 보조제재 등을 통하여 그림의 구성 방식의 일관성을 확인하기에 이르며, 이를 토대로 해 그동안 제기됐던 무질서하다거나 공간 의식이 없었다는 주장들은 폐기됐고, 대신에 선사 미술은 일관적인 시스템에 의거해 제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후 그와 같은 설은 선사미술이 제작 집단의 삶과 죽음의 세계관을 은유(metaphor)와 환유(metonymy)라고 하는 상징 시스템에 의해 표현된 것이라고 주장으로 확대된다.

한편, 물질문화의 발달과정을 추적하는데도 선사 미술 속의 형상들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때 동물이 중심을 이루고 있던 선사 미술의 제재는 서서히 사람과 각종 생활이기에 의해 교체되는데, 그에 따라서 그림 속에는 이전에 보기 어려웠던 사람 관련 주제, 즉 사람들이 활이나 창 그리고 작살을 들고 사냥하는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림 속에는 고삐를 매어 동물을 끌고 가는 사람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이어서 등에 짐을 싣고 가는 소나 말 등도 그려지기 시작한다. 보다 늦은 시기가 되면, 바퀴가 달린 수레를 끄는 동물이 그려지기 시작하는데, 그 수레는 나중에 마차로 교체된다.

● 원상·변형과정 선사미술에 고스란히 각인

이와 같은 일련의 제재들을 통해서 야생동물이 어떻게 사냥감으로 바뀌었고 또 그것이 어떻게 가축화됐으며, 어떤 방식으로 이용되어 왔는지를 살필 수 있다. 어떤 시기에 수레가 등장했고, 또 그것은 언제 마차와 교체됐는지도 그림들은 증명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물질문화의 원상과 그 변형들이 이와 같은 선사 미술 속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물질문화의 발달과정을 역추적하면, 그 정점에서 역설적이게도 야생동물과 조우하게 된다. 사냥 대상이었던 야생동물을 가축화하기 위해 만든 고삐가 물질문화의 가장 고형 가운데 하나이자 문명의 이기를 만든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바로 고삐가 만들어짐으로써 가축이 생기게 됐고, 이로써 식량 획득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동물의 힘을 이용하여 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고삐는 야생동물을 가축으로 바꾸는 수단이었으며, 나아가 그것은 소나 말이 수레와 마차를 끌도록 하는 동력 추진 장치였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고삐는 인류가 이룩한 물질문화의 가장 오래된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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