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사는 창작·변형·복제로 생산된 물품의 총합
인류문명사는 창작·변형·복제로 생산된 물품의 총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10.2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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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정신·물질 문화는 시원문화와 직간접 연관
피그말리온·우렁각시·구미호 인간모습 변형 설화
존재의 기본형에 대한 통찰은 선사시대 이미 구현
파블로 피카소의 ‘황소(제작년도: 1942년)’는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을 결합시켜서 만든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두고, 자전거의 핸들과 안장으로 황소의 머리를 만든다면, 그것은 아주 멋진 일일 것이라고 피력하면서, 그런데 그가 만든 이 ‘황소’를 아무 데나 버렸을 때 그곳을 지나가던 청소부가 그것으로써 다시 ‘자전거의 핸들과 안장을 만든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하고, 자신의 작업에서 변형의 문제에 대해 밝힌 바가 있다. 그는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에서 소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소로 변형시켰던 것이다.

‘변형’이라는 말 속에는 언제나 ‘원형’이 전제되어 있다. 누군가가 ‘원형’을 보고 그것과 똑 같은 모양을 재현해 냈다고 한다면, 그것은 복제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변형’이란, 마치 피카소의 황소와 같이 원형을 제3의 형으로 바꾸는 일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이 경우, 마치 피카소의 ‘황소’처럼 원래의 것이 갖고 있던 속성이 제3의 형으로 뒤바뀌게 되는 경우도 있고, 또 그 기능이나 속성은 ‘원형’ 그대로이지만, 외형이 약간 바뀌는 경우도 있다. 한편, 이전에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을 만드는 일은 복제도 변형도 아닌 ‘창작’이 될 것이다.

미술사는 물론 인류가 걸어온 길고 긴 문명사는 바로 그 창작과 변형 그리고 복제 등에 의해서 생산된 물품들의 총합이라고 해도 절대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 및 물질문화의 절대적인 다수는 인류의 먼 조상들이 향유했던 시원문화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더욱이 구체적인 외형을 갖는 물질문화의 경우, 그 연원이 선사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이며, 이들의 대부분은 그 속에 제작자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다.

동서양의 신화나 전설 가운데는 변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그리스 신화 속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타입의 변형이 있다. 하나는 신이 스스로의 모습을 바꾸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신이 강제적으로 인간을 제3의 모습으로 변형시키는 경우이다.

전자는 제우스 등 신들이 상황에 따라 그의 모습을 바꾸는 것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후자, 즉 신이 인간을 강제로 변형시키는 경우는 그 내용과 성격에 따라서 다시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신을 기쁘게 해서 얻게 되는 긍정적인 변형이며, 다른 하나는 신을 노엽게 해서 받게 되는 부정적인 변형이다.

둘 가운데서 긍정적인 변형의 대표적인 예는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피그말리온의 이야기에서는 대리석으로 조각한 여인이 사람으로 바뀌는 변형이 일어나는데, 그 밑바닥에는 모든 것을 신에 의탁하고 또 신에 순종하면, 신은 인간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다. 그와는 달리 부정적인 변형의 예로는 ‘아라크네’나 ‘악타이온’ 등의 이야기가 있다. 여신 아테나와 베 짜기 경기를 하여 이기고자 한 아라크네는 ‘거미’가 됐으며, 여신 디아나의 목욕 장면을 훔쳐보았던 사냥꾼 악타이온은 사슴으로 바뀌는 형벌을 받았다.

동양의 신화 속에서도 숱한 변형의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황제와 치우 등이 전투를 하면서 스스로 바꾸었던 동물 변형은 좋은 예들이다.

민담 가운데는 구미호가 사람으로 바뀌는 이야기나 우렁각시 등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수렵민들의 신화 가운데는 사람과 동물의 본래의 모습이 같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다만 그들이 어떤 옷(가죽)을 입느냐에 따라서 동물도 되고 또 사람도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소나 사슴 또는 곰과 그 원래의 모습이 똑같지만, 단지 사람의 가죽을 둘러썼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렵민들의 믿음 속에는 사람과 동물이 다를 수가 없는 것이다. 수렵민에게는 동물과 사람의 원래의 모습, 즉 원형은 서로 같았던 것이다.

‘원형’에 대한 탐구는 화가들의 불변의 과제 가운데 하나였음을 미술사는 증명해 주고 있다. 모든 사물의 가장 근본적인 구조, 즉 원형에 대해서는 P.세잔느에 의해서 명쾌하게 정의됐다.

세잔느가 E.베르나르에게 보낸 1904년 4월 15일자 편지 속에는 이에 관한 생각이 분명하게 언명되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연은 ‘공, 원뿔, 원통’으로 처리돼야 한다는 말이며, 이 말 속에는 물상의 궁극을 밝히려 한 세잔느의 직관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이 말에 자극받은 젊은 화가 피카소와 브라크는 또 하나의 변형을 창출하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입체파’이다.

세잔느의 이와 같은 개념은 이후 W.칸딘스키에 의해 ‘점·선·면’이라는 보다 정교한 개념으로 재정의 되었다. 존재의 근원 또는 본질에 대한 직관적인 표현은 피렌체의 화가 지오토(Giotto, 1266~1337)에 의해서 이미 르네상스 시대에 이미 시도되었다. 교황 베네틱투스 12세 앞에서 그가 그려낸 소위 ‘지오토의 동그라미(圓)’는 시작과 끝이 하나로 연결된 도형이다. 동그라미에 양감을 더하면 공이 되고 또 그것을 가장 작은 것으로 축약시키면 점이 되는 것이다.

사실 조형 예술에서 점은 기하학이나 수학에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위치뿐만 아니라 크기와 양감 등도 모두 갖추고 있다. 그것은 모든 표현의 시작점이자 마침표이며, 동시에 그것의 확장이 바로 동그라미인 것이다. 그런데,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선사 시대의 화가들은 지오토의 동그라미보다 더 원초적인 도형으로서의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동물의 배 밑에 그려진 소위 ‘다산의 상징’ 기호로서의 동그라미였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레나 강변의 쉬쉬키노 암면에 그려진 말 형상 가운데서 살필 수 있다. 특히 구석기 시대 동물 형상의 배 밑에 그려진 동그라미는, 때로는 점으로 또 때로는 바위구멍으로도 표현되어 있다. 물론 그것의 가장 최소형은 점이며, 보다 상징적인 도형은 타원형이다. 이 점은 미분화된 생명의 원형이며, 그러므로 그것은 씨앗과 알의 상징적인 표현이기도 한 셈이다. 씨앗이 분화되면 식물이 되며, 알이 분화하면 애벌레가 되고 또 동물이 되는 것이다.

존재의 본질 또는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모양에 대한 탐구는 P.세잔느나 W.칸딘스키 등 현대 화가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선사시대의 화가들은 분명하게 도형으로 각인시켜 놓았던 것이다. 이렇듯, 동물의 배 밑에 그려진 동그라미는 그 자체가 가장 원초적인 도형인 동시에 존재의 근원에 대한 당대 화가들의 인식이었으며, 나아가 풍요로움의 상징적인 표현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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