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맛나는 세상
그래도 살맛나는 세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10.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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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시간여유가 있으면 학교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자주 울산 시내나 시 외각을 무작정 떠나보는 것이 취미다. 그리고 출근할 때에도 집이 학교 근방이라 좀처럼 차를 몰고 가지 않는다. 비록 조금 먼 곳에 볼일이 있더라도 건강을 위하여 걷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어느 신바람 박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자가용차는 영구차요, 두 다리는 의사’라는 명언이 더욱 생각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일을 보러 가는데 초행길이라 버스 운전기사에게 잠깐 물어봤다. “기사 아저씨! 잘 몰라서 묻습니다. 다음 정거장이 군청 앞입니까?”라고 했다. 그러니까 기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안내방송을 들어 보시요!”라고 아예 귀찮은 듯 명령조로 대답한다. 옥동에 있는 법원에서 볼일을 보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도 버스를 탔다. 필자는 늘 교통 버스카드를 구입하여 편리하게 사용하는데 그날따라 교통 카드에 잔액이 얼마 없어 불안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던 게 화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계에 갖다 대니 그야말로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 나왔다. “요금이 부족합니다”라고 기계가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오천원짜리 지폐를 덥석 넣어버렸던 것이다. 기사 왈 “이러면 어떻게 해요!”라고 큰 소리로 야단치는 것이다.

필자는 너무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그냥 버스 안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마침 옆에 앉아있던 젊은 아줌마가 그 광경을 보고 딱하게 생각했는지 영문도 모르는 채 버스요금을 대신 요금통에 넣어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상황은 일단 끝이 났다.

이렇게 무지막지하고 친절하지 못한 운전기사가 있는 한 우리의 교통문화가 즐거워질 수 있을까 실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런 양지의 선한 사람도 있으니 그래도 살맛나는 세상이 아닌가?

연구원 시절 일본 동경에 살면서 거의 매일 운동을 했다. 운동이라고 해봐야 특별히 어떤 골프 회원이나 운동 프로그램에 가입하여 값비싼 돈을 투자한 것도 아니다. 그저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훌륭한 운동이라 생각하고 기본적인 건강을 관리했던 것 같다. 오전에는 연구실에서 관련 자료를 수집 검토하고 오후에는 아내와 더불어 집을 출발하여 동서남북으로 하루 한 번씩 행선지를 바꾸어 걸었다. 모처럼의 해외생활이라 관광을 겸하면서, 세계적인 도시 동경의 모습이 어떤지 관찰을 하며 몸도 한번 챙겨본다는 소박한 생각이었다.

동경의 버스는 도시형 저상(低床)버스로 냉난방이 제법 잘 되어 있다. 출퇴근 시간은 분명 러시아워인데도 생각보다 그렇게 붐비지 않는다. 이곳의 버스는 운행하는 코스가 짧은 것이 특징이며 운행 도중에는 승객이 서 있는 채로 갈 수 없다. 반드시 버스가 정차한 후에 내리게 되어있다.

그리고 운전수 원맨(ワンマン)으로 운영하면서 회사 고유의 유니폼에 모자를 쓰고 있으며 그 밑에는 소형 콤팩트 마이크가 달려있어 직접 안내방송도 한다. 더욱 특이한 점은 운전기사가 방송을 할 때에는 승객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조용조용 말하는 것이다.

하물며 과속을 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어디까지나 승객들에게 최대한 편리하고 안락함을 준다는 고객 위주의 서비스 정신이 박혀있는 셈이다.

몇 년 전 유럽을 대표하는 봉우리인 스위스 융프라우(Jungfraujoch)행 빨간 산악 열차를 타 본 적이 있다. 융프라우로 올라가면서 양쪽으로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는데 도착지로 향하기까지는 그야말로 유토피아행 열차를 탄 느낌이다. 중간 중간에 코발트색 호수가 있는가 하면 가까이에는 눈 덮인 거대한 고봉의 산들도 있다. 게다가 산 아래 언덕 쪽은 잔디를 깔아 놓은 듯 그야말로 비단결 같고 초록 물감을 칠한 수채화 같다. 그 위에는 흰색 초콜릿색 무늬의 젖소들이, 군데군데 무리 지어 한가하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장면은 가히 목가적이고 평온 그 자체이다.

바야흐로 우리도 이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는 여건이 탄탄히 돼있지 않은가? 왜 우리는 이러한 유토피아 같은 환경에서 살 수 없는지 잠시 세상을 원망해보기도 한다.

서민이 이용하는 대중 교통수단 버스. 여기에는 반드시 시정해야할 것이 있다. 몇 가지를 제안하면 먼저 운전기사는 승객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또한 회사의 유니폼을 입고 운행하기를 바라고, 때때로 기사의 핸드폰 대화소리가 너무 커 승객이 불안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고쳐야 할 것은 뿌리박혀 있는 ‘과속’이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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