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움 경험한 자연물상에 절대적 가치 부여
성스러움 경험한 자연물상에 절대적 가치 부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10.0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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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넘어선 곳에
경이·장엄·숭고함 부여
세계의 중심이자
문명 발아된 곳 추앙
희생제물 바치거나
조형·가무로 성역화
나무나 바위 그리고 그 밖의 산이나 하천 따위로부터 겪는 신비 체험을 M.엘리아데는 ‘성현(聖顯·hierophany)’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여기에서 ‘성현’이란 나무나 바위 등이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숭배 대상이 된 나무나 바위가 처음부터 성스러운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 순간 그것으로부터 ‘거룩한 무엇’이 드러남으로써 성스러운 것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현’이란, 어쩌면 바로 그와 같은 나무나 바위 또는 산봉우리 등에서 사람들이 믿었던 신의 모습이나 신들이 오르내리는 모습 그리고 그들의 사다리 등을 보는 일이었고, 또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던 온갖 물색의 헝겊이 장식된 나무나 ‘술라이만 토’와 ‘구지봉’ 같은 산봉우리 그리고 ‘부하·노용·바아바이’와 같은 바위 등은 그것들이 언젠가 거룩한 모습을 드러낸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신의 모습을 목격한 바로 그 순간부터 바위나 벽 따위에 신은 깃들어 있게 됐으며, 그에 따라서 그동안 한 낱 보잘 것 없던 바위 등 물상들이 바로 그 시점을 기준으로 해 특별한 물건 또는 공간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그것 또는 그곳은 성스러운 곳, 즉 세속적인 세계가 아니라 성스러운 물건이나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사람들은 성역을 설정하고 또 때마다 그곳을 정화하며, 신령한 존재들을 위하여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으로 희생제물을 바치면서 의례를 거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공간은 일반적으로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면, 부리아트인들의 ‘부하·노용·바아바이’나 ‘하라·아지라이’ 등이 깃들었다고 믿는 바위나 대구의 ‘건들바위’ 그리고 ‘구지가’ 설화가 전해지는 ‘구지봉’ 등은 그 지역 주민들의 삶에서 ‘태초’ 또는 ‘처음’ 등의 말과 관련되는 공간이었으며, 그것으로부터 사람과 세계 그리고 문화 등이 파생된 셈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와 같은 공간들은 일반적으로 ‘하늘’로 통칭되는 세계로부터 신이 하강하거나 혹은 천상의 절대자로부터의 계시를 받은 곳이기 때문에 그것은 곧 세계의 축에 해당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로 그곳에서 거역 불가능의 절대적인 힘을 지닌 존재, 즉 신의 모습을 체험하게 됐으며, 그로부터 공포와 불안감에 압도당함과 동시에 스스로가 지극히 미미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성현이라고 하는 비일상적인 체험을 통해서 기이함과 두려움 그리고 위압감 따위를 느끼게 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와 같은 이미지들은 경이로움이나 장엄함 또는 숭고함 따위의 매혹적인 힘을 발산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서 사람들은 그가 체험한 신성한 존재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이미지, 즉 한 없이 두려운 존재이자 동시에 무한한 존경의 대상이 그 속에 동시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복합적인 이미지를 바로 외경, 외포, 경외 등의 말로 언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그가 목격하였던 성현, 즉 신의 모습을 항구 불변하는 존재로 정형화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조형물을 제작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노래와 춤 등을 만들게 되었다. 그 가운데 전자는 신상과 그의 협역 그리고 우주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일이었으며, 그의 실례가 바로 동굴벽화와 바위그림 그리고 각종 조소상 등이었다.

이에 반해 후자는 신화와 전설, 춤과 연희 그리고 의례의 규범 등 무형문화였다. 물론 이와 같은 이미지와 구비전승을 포함한 무형문화 등을 통하여 당대의 문화 주체들이 목격하였던 신상과 그들의 출현 및 계시 따위는 소위 ‘성소’와 의례의 구성 요소로 고착되어 있다.

사람들은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으로 세계의 중심이자 신과의 소통이 가능한 이곳으로 나아가서 의례를 거행했다. 그들의 신상 앞에 제물을 바치면서 소망을 피력하였으며, 또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에벵키족의 ‘싱켈라분’이 그것이다. 이는 에벵키족들이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며 벌이는 축제인데, 그것은 마을 한 가운데 있는 ‘부가드’라는 바위 앞에서 펼쳐진다. 바위에는 붉은 색의 신상이 그려져 있으며, 사람들은 이곳에 희생제물을 바치고 또 동물의 번식과 사냥 등을 기원하는 의례를 거행한다.

한편 남부시베리아의 하카시야에는 ‘후르차흐홀’이라는 바위그림 유적지가 있는데, 이곳에도 여러 시기에 그려진 신상, 십자가, 말발굽 모양의 기호 그리고 각종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현지 주민들은 지금도 바위 중간에 새겨진 신상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며, 의례를 거행하고 있다. 같은 유형의 의례는 지금도 시베리아의 오지에서 사냥을 하면서 살아가는 수렵민 세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축제와 의례들은, 아주 오래된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같은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거행되고 있다. 문화 주체가 바뀌고 또 숭배의 대상 및 종교적 이념 그리고 의례의 속성 등이 변함에 따라 성소는 이질적인 종교 시설들이 합성된 거대한 종교적 콤플렉스로 변했다. 그에 따라서 앞 시대와 연결되는 후속 세대들은 전 시대의 문화주인공들이 숭배하였던 신상들을 지우려고 애쓰거나 혹은 그 위에 덧그리면서 자신들의 신상을 보다 뚜렷하게 각인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성소 가운데는 여러 시기의 종교적 시설물들과 더불어 서로 상이한 신상들이 혼재되어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몇몇 사례들을 통해서, 성소가 갖고 있는 외적 조건들을 검토해 보았다. 성소는 신이 스스로 하강하는 공간이었다. 또한 신이 그의 목소리를 들려준 공간이었으며, 다시 그의 세계로 되돌아 가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은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난 공간이었으며, 그러므로 우주가 처음으로 합일한 곳이었고, 세계가 하나의 축을 이룩한 공간이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 그리고 땅속이 대통합을 이룬 공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곳은 세계의 ‘중심’이며, 문명이 발아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으로부터 사람들이 퍼져나갔으며, 사람들은 다시 시간이 되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따라서 이곳은 시작점이자 동시에 종결점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문화의 주인공이 바뀌고 또 종교의 성격이 바뀌어도 사람들은 그들의 성소를 그곳에 세우고 그들의 신상을 그려 그곳을 성화하며, 새로운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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