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으로 알아낸 신비의 공간 나타내기 위한 장치
체험으로 알아낸 신비의 공간 나타내기 위한 장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9.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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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것과 아닌 것 구별 표식

오지를 여행하다 보면, 호숫가나 고갯마루 그리고 숲 근처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 또는 사막 가운데 난 관목더미 등에 온갖 물색의 헝겊들이 매달려 있는 것을 살필 수 있다.

때로는 접근하기가 어렵고 또 위험한 낭떠러지에 서 있는 나무이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형형색색의 헝겊들을 가지마다 무수히 매달아 놓았다. 주위에도 나무들이 여러 그루 서있지만, 유독 그 한 그루의 나무에만 집중적으로 매달아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주위의 다른 나무와 쉽게 구별되며,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곁에 서 있는 나무들과 서로 같은 종이지만, 헝겊을 매단 사람들에게는 그 나무가 아주 특별한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또한 바로 그와 같은 표시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주의하고 또 경계하는 것이다.

이렇듯, 그 한 그루의 나무는 다른 것들과 함께 똑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두 같은 것으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바로 그 헝겊들이 그와 같은 점을 분명하게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비단 나무뿐만 아니라 바위나 물 그리고 산봉우리 등도 마찬가지이다. 여럿 가운데 하나의 바위나 한 지점에서 솟아나는 물 그리고 홀로 우뚝 솟아 오른 산봉우리 등을 사람들은 특별한 것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특별한 어떤 것임을 예의 헝겊 따위로 표시를 했거나 혹은 그림을 그렸으며, 그것도 아니면 돌기둥을 세우거나 돌무더기를 쌓는 등의 특별한 표시를 했던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점으로써,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공간과 그 속에 존재하는 물상들이 모두 동일한 가치로 인식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서로 같지 않음(非均質)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여럿 가운데서 혹은 그의 무리와는 무엇인가 특별히 구별되는 차이점이 있음을 살펴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여럿 가운데서 특별하게 인식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주목했던 것은 그 자체가 스스로 발산해 낸 특이성 이었으며, 그것은 주위의 다른 것들에서는 살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특별한 표식은 비가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고, 또 그것이 갖고 있는 외적인 차별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서 전자는 그것을 통해서 느끼는 신비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무언가의 물상으로부터 신이 나타나거나, 그것을 통해서 신 또는 그와 관련된 존재들이 오르내리는 모습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든가 하는 따위의 일들이 그것이다. 신비체험은 샤머니즘과 더불어 기독교나 불교 그리고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삼국유사’의 ‘기이’편 중 ‘구지가’나 ‘감통’편의 ‘진신수공’ 등은 그에 대한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무병을 앓던 사람들이 접신 체험을 하는 과정에서 목격하는 몸 주의 모습도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 비가시적 현상·신성 구분

신화와 전설의 형식으로 구전되어 오던 그와 유사한 화소들은 물론이고, 꿈이나 환청 또는 환상 가운데서도 신비 체험의 예들이 살펴진다. 특히 샤먼들의 접신 체험은 오늘날에도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종교적 현상이다. 무당이 되기를 한사코 거부하다가 앓는 무병이나 강신한 몸 주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갈등과 싸움 그리고 내림굿 등에 관한 이야기 등은 잘 알려져 있다.

무당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의 몸 주를 무신도 속에 그려놓는다. 무당에게는 몸 주가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나 그가 오르내리는 신목 등이 곧 신역(神域), 즉 신성한 공간인 것이다.

후자는, 그것이 무리의 다른 것들과 서로 구별되는 외적인 차별성 때문에 신성한 것으로 취급받는 경우이다. 돌연변이와 같이 심하게 변형된 동식물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그와 같은 것을 특수한 그룹으로 분류한다. 여럿 가운데서 보이는 기형이나 변형 등은 성스러움과 혐오감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샴쌍둥이나 손발가락이 많거나 적은 사람, 꼬리가 달린 사람 등은 그의 좋은 예이다.

시베리아의 오지 주민들은 껍질이 검은 자작나무나 가지와 기둥에 혹이 달린 나무 등을 신성한 것으로 취급했다. 그와 같은 것은 크게 볼 때 두 가지 속성이 하나로 합성된 것이다. 그 밖에도 그것이 사람이나 동물 또는 생식기를 닮은 바위 등도 같은 부류로 분류되어 신성시했다.

● 유적지 신화·전설 이어져

시베리아의 레나 강변에 있는 쉬쉬키노 바위그림 유적지에는 ‘부하·노용·바아바이’라고 하는 신성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옆으로 누운 소 모양을 하고 있다. 부리아트 족 샤먼들의 전승에 의하면, 그것은 제왕 소(牛) 부하·노용·바아바이가 화석화된 것이라고 한다. 부하·노용·바아바이는 부리아트인의 선조이자 쌍둥이 영웅인 ‘에히리트’와 ‘부라가트’를 낳았고 또 숙적인 검은 소 ‘타이지·한’을 물리친 뒤, 그 자리에서 쉬다가 그대로 굳어 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부리아트 족 샤먼 신화의 주인공이자 신령 중에서 최고의 전투 신이었으며, 이와 관련된 유사 전승들이 지금도 바이칼 호수 인근에서는 전해지고 있다.

쉬쉬키노와 관련된 부리아트의 신화 가운데는, ‘하라·아지라이’도 등장한다. 그는 하늘의 주인이었는데, 지상으로 내려와 레나 강뿐만 아니라 오르혼섬(바이칼 호수 가운데 있는 섬)까지도 지배했다는 것이다. 부리아트족의 샤먼들은 하라·아지라이를 위한 희생 제물로 흠이 없는 양이나 말의 생피를 바쳤다. 그들은 이 지역의 지배자인 하라·아지라이가 원래 쉬쉬키노 암벽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부리아트 사람들에 따르면, 레나 강에 두 명의 주인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부하·노용·바아바이였으며, 다른 하나가 하라·아지라이였다는 것이다.

● 사람들 성소 미스테리 직접겪어

쉬쉬키노 바위그림 유적지, 그 중에서도 특히 ‘부하·노용·바아바이’ 바위를 두고, 한 때 세 개의 서로 다른 종교가 격렬한 세력 다툼을 펼쳤다고 한다. 부리아트 족 샤먼들은 이 바위 자체, 즉 ‘부하·노용·바아바이’ 바위를 그들의 성소로 삼았으며 또 직접 희생제물을 바치면서 의례를 거행했다고 한다. 한편, 러시아 정교의 선교사들은 뿔이 있는 방향, 즉 오른쪽에 그들의 예배당을 세웠으며, 라마교의 승려들은 왼쪽에 사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하나의 암벽을 두고 그다지 오래지 않은 과거에 벌어진 종교 갈등이었다.

이렇듯, 균질하다고 믿었던 공간이나 그 속에 존재하는 초목과 바위, 하천 그리고 산 등은 그것과 교류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수한 개체 또는 공간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변환의 동기는 주로 신비 체험과 관련된다. 그의 대표적인 예가 스스로 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바위나 돌멩이 또는 벽 따위이다. 그와 더불어 신들이 오르내리거나 드나드는 문 또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나무나 바위 또는 산봉우리 등도 좋은 예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겪은 신비 체험을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 그와 같은 곳에 여러 가지 장치들을 하는데, 헝겊 매달기, 돌무더기 쌓기, 신상 그리기 그리고 신체 봉안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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