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9.19 2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모처럼 햇살이 개운한 오늘입니다. 회색 빛 짙은 콘크리트 건물, 작은 창 틈사이로 내려앉은 가닥가닥의 햇살조각은 오늘 하루를 살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에너지를 선물합니다.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가고 초가을의 하늘과 나뭇잎 군데군데에 살짜기 스며앉은 가을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섭니다.

“낙엽만 굴러도 꺄르르 웃음이 나는 시절이 니들 시절이야~”

여고시절, 선생님이라면 너나할 것 없이 말씀하셨던 단골메뉴입니다.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딱 그러하였던 것 같습니다. 사소한 얘깃거리에도 크게 놀라 반응하고, 시시한 유머에도 목젖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깔깔대며, 작은 슬픔에도 죽을만큼 아파했었지요.

달리는 차의 방향마다 달라지는 빛의 자리에 가지 끝에 매달린 가을도 그 색이 다 다름을 알아챕니다. 나무도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는 듯 성질 급한 놈은 가을을 벌써부터 부여잡았고 느긋한 놈은 여전히 녹음을 즐기고 있습니다.

화선지에 떨어진 먹물이 사르르 젖어들 듯 그 스며듬을 눈치 채기도 전에 녀석들은 온통 세상을 가을로 물들일 것입니다. 생각이 속도를 내기 시작합니다. 내 마음은 벌써 저만치 낙엽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바스락거리며 발밑에서 놀아대던 그 녀석들의 기운이 신경줄기를 타고 기어올라 입꼬리 끝에 대롱거립니다.

“~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얕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코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중에서

“~발길에 밟힐 때면 낙엽은 영혼처럼 흐느끼고/ 날개 소리 여자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를 내누나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이리 와다오 언젠가는 우리도 가련한 낙엽이 되거니 /이리 와다오 이미 날은 저물고 바람은 우리를 감싸고 있누나~” 구르몽의 시 ‘낙엽’ 중에서

문득, 학창시절 배웠던 글이 떠오릅니다. 나의 여고시절은 많은 것들을 꿈꾸었음에도 자유와 이상을 그리고 상상만 할 뿐, 어떠한 성찰조차 끄집어 낼 만큼의 여유는 없었던 그저 생활이 눈앞의 현상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문학에는 다소 건조함이 있었지요.

그러나 ‘낙엽을 태우면서’나 구르몽의 시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들의 그 나이가 되고 보니 그 글이 주는 감흥을 굳이 전과를 펼쳐 해석하지 않아도, 연과 행을 구분하며 밑줄 그어 설명하지 않아도 심장을 울리고 그 전율에 온몸이 지배됨을 느낍니다. 삶은 이러한가 봅니다. 억지스럽지 않게 때를 기다려 알게 하는 것 말입니다.

푸석거리며 타들어가는 낙엽의 냄새가 갓 볶아낸 커피 향으로 느껴지고, 낙엽을 태우는 일상에서 비롯하여 마침내 생활의 발견을 하게 되는 ‘때’, 낙엽 밟는 소리에서 영혼의 흐느낌을 느끼고, 낙엽을 통해 머지않은 미래를 그려내는 삶의 단상을 이해하게 되는 바로 그 ‘때’를 자연스런 시간을 통해 알게 하는 것이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때’라는 것에 대한 시간적 개념은 저마다 차이가 있을 테지만, 저의 경우엔 지금이 그 때의 시점에 든 듯합니다. 새삼스레 드라마의 대사가 알알이 박히고, 누군가가 읊조리는 싯구절이 후비어들며, 흘러간 노래의 가삿말에 또르르 눈물이 이는, 비단 지나온 삶이 굴곡지지 않았더라도 내게 온 이 선물같은 현상을 삶에 한 발자욱 다가선 것이라 그리 바라봅니다.

예전에 비해 비문학, 운문문학, 산문문학 그리고 고전으로 세분화된 문학을 배우는 아이들의 색색깔 볼펜으로 빼곡하게 분석 정리한 교과서에서 오래전 나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봅니다. 그래서 또한 거기에서 공평한 삶을 느낍니다.

이 아이들에게도 그저 글자와 문장이 아닌, 주제와 소재의 분석이 아닌, 다른 이의 이야기와 삶을 그린 노래 속에서 각자의 삶을 발견하는 ‘유레카’의 때가 자연스럽게 올 테지요.

올가을엔 봄을 그리는 꿈 켜켜이 쌓여 바스락거리는 그 길을 꼭 걸어야겠습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오양옥 씨>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