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팥죽
동지 팥죽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7.12.2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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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 팥죽 쑤는 일은 전 식구가 동원되는 하나의 큰 ‘행사’였다.

요즘은 집 밖에만 나서면 가게에서 쉽게 팥죽을 구입해 먹을 수 있지만 군것질 거리가 흔치 않던 지난 60, 70년대에는 동짓날에만 맛 볼 수 있던 별미였다.

푹 삶은 팥을 헝겊에 싸서 눌려 짜면 붉은 빛의 액체가 스며 나오는데 이것을 시꺼먼 재래식 솥에 넣고 장작불로 수 시간 달이면 뻑뻑해지면서 팥죽 국물이 된다. 이 국물의 농도를 적당하게 조절하는 것이 팥죽의 맛을 결정하는데 다년간의 경험을 쌓은 어머니 몫이다.

애들도 그냥 놀지 만은 않는다.

부엌 아궁이에 장작불을 계속 지펴 불길을 유지하는 것은 보통 큰아이의 임무다.

방앗간에서 빻아 온 쌀로 반죽을 만들어 동글동글한 ‘새알’을 빗는 것은 나머지 개구쟁이들의 일이었다.

하루 종일 애써 만든 팥죽을 반드시 이웃에 한 그릇 씩 보내는 것이 당시 ‘이웃 간의 우의’의 표시였다.

일찍 찾아오는 겨울날 저녁, 가족이 둘러앉아 ‘동치미’ 국물과 함께 먹던 팥죽 맛은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팥죽 쑤는 날 도저히 이해하지 못 할 일이 하나 있었는데 세월이 한 참 지난 뒤에야 알게 됐다.

동짓날 저녁, 식구가 팥죽을 먹기 전에 어머니는 팥죽을 부엌에 뿌리고 화장실 벽에도 바르곤 하셨다. 심지어는 하얀 창호지 문에다 팥죽을 뿌려 묘한 무늬를 남기곤 했던 일이다.

동서 고금 할 것 없이 귀신들은 붉은 색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병이나 불행을 가져오는 악귀를 막는데 붉은 빛을 이용했다.

무속인들이 부적을 써 줄 때 붉은 물감을 사용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고대 오리엔트에서 여성들이 붉은 색 흙을 입에 칠한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액운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여성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입술 ‘루즈’로 둔갑하고 말았지만. 아기를 낳은 집 대문에 붉은 고추를 매단 것은 남자아이를 상징하는 것과 함께 악귀를 경계하는 우리 조상들의 습관 중 하나였다.

필자가 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흙담 주변에 봉선화나 맨드라미가 곳곳마다 심겨져 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꽃의 가치를 따진다면 봉선화나 맨드라미는 하품에 속한다.

그런 붉은 색을 집 담장 주위에 심어 액운을 막고자 했던 일종의 ‘비방’이었던 셈이다.

지난 50년대 6.25 전쟁 이후 전국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여성들이 붉은 바지를 입는 패션에 맹위를 떨쳤다는 기록이 이채롭다.

붉은 바지가 의복을 통한 귀신 퇴치법이라면 봉선화, 맨드라미는 자연에서 취한 비법이었고 동지 팥죽은 음식을 통한 반 귀신전선이었다.

밤낮의 길이가 뒤바뀌는 날을 기해 동지 팥죽을 끓여 대문, 담장, 부엌, 외양간 등 온 집안에 뿌리고 그것을 먹는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팥죽을 끓이시던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난 지 한참 후 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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