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더해지는 순간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
이미지 더해지는 순간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9.0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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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희망·저주·염원 담은 실물 대역
‘생명 위독·살아 움직였다’ 기록 잇따라
구석기 시대부터 지속적으로 숭배·파괴
마침내 인류 구축 정신세계 모두 담겨
베소브이 노스 암각화 유적의 조사를 마치고 되돌아오다 물에 빠진 바로 그날부터 나의 비디오카메라는 작동되지 않았다. 그 당시에 찍었던 동영상 자료는 물론 한 번도 재생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다. 물에서 허겁지겁 나오자마자, 필름을 빼고 카메라를 해체하여 말리는 등 부산스럽게 움직였지만, 비디오카메라는 어떤 작동도 하지 않았고 또 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나의 비디오카메라는 화석처럼 굳어버렸고, 더 이상은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발굴 조사를 나온 몇 사람을 빼면, 완전히 무인도와 같은 아네가 호숫가에서 우리들이 취할 수 있었던 대책은 아무 것도 없었으며, 설령 우리들이 가까운 도시로 나 간다고 해도, 그것을 수리할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베소브이 노스의 ‘저주’는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 말고도 또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암각화 속 신상의 온전한 모습을 담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찍었던 사진이 쓸모가 없이 된다든가 채록하였던 도면이 못 쓰게 되는 일 따위가 그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남부 시베리아의 투바에 있는 ‘비치그트 하야(투바어로 ‘글씨 바위’를 뜻함)’ 암각화 유적지를 조사하게 되었는데, 당시 이 유적의 조사에 동행하였던 M.킬루노브스카야 박사는, 이 암각화에 관하여 연구자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던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해 주었다.

그것은, 이 암각화 속에 그려진 커다란 새 한 마리를 둘러싼 이야기이다. 그 새는 마치 몇 개의 얼굴 마스크를 품고 있는 듯 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 새의 형상을 제대로 찍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연구자들은 그 이유를 아마도 그 새 형상이 특별히 영험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장조사 및 형상 채록의 어려움 그리고 조사 과정에서의 사고 등은 모두 이미지의 마력과 관련되어 있는 셈이다. 이렇듯 믿기에는 난감한 일들이지만, 이와 유사한 이야기들은 도처에서 전해지고 있다.

베소브이 노스 암각화 유적의 조사를 마친지 7년이 지난 2010년 10월에 국제 암각화 학술회의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했다. 당시 노르웨이에서 이 학술회의에 참석하였던 보존 전문가 앙 소피 히겐 및 크누르 헬츠코크 등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베소브이 노스 암각화의 조사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대뜸 베소브이 노스의 악명 높은 저주에 관한 유사한 사례들을 소개해 주었다. 팔다리가 부러져서 고생했거나 차가 전복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경우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전문가들의 고생담이 이 유적과 관련돼 있었으며, 그 가운데 나의 경험담이 하나 더 더해지게 된 셈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모두 형상의 마력과 관련된 것들이다. 흔하디흔하고 또 특별히 주목을 끌만 한 것도 없이 지극히 평범한 종이와 돌멩이 그리고 바위 등이, 그 위에 이미지가 더해지는 순간, 그것들은 돌변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모양을 갖춘 이미지들로 인하여 벌어진 몇 가지 사례들은 이미지가 지닌 또 다른 유형의 마력을 살피게 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미지가 살아있는 존재로 탈바꿈한다는 내용들이다. 그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살필 수 있는데,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이 상아로 조각한 여성상을 자신의 아내로 만들어 달라고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간절히 기도하자, 조각상에 온기가 돌고 마침내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이다. 피그말리온은 온 힘을 다하여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여성을 조각하였고, 마침내 완성된 조각상의 완전한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진정한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현상까지도 파생하게 되었다. 그것은 무엇이든 온 정성을 다하여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중국의 궁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궁정의 벽에 폭포를 그릴 것을 주문한 황제는, 마침내 폭포 그림이 완성되자 만족하였으나,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그 폭포를 지우라고 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유인 즉, 밤 새 그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 길지 않은 이야기는 이미지의 마력을 단순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궁정의 빈 벽에 그려진 것은 폭포 그림으로 인하여 황제는 폭포와 관련된 온갖 연상을 하게 되었고, 그런 중에 폭포에서 떨어지는 웅장한 물소리까지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소재는 다르지만 이미지가 실물처럼 살아났다는 유형의 이야기들이 결코 적지 않게 전해지고 있다. 잘 알려진 ‘화룡점정(畵龍點睛)’도 그것의 좋은 예 가운데 하나이다. 이 말은 양나라의 화가 장승요가 용을 그린 후, 마지막으로 눈에 동자를 그려넣게 되었는데, 그러자 그 용이 날아갔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그 밖에도 흙으로 빚은 남편의 소조상(塑造像)과 과부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거나, 종이나 나무로 만든 말들이 실제로 뛰어다녔다는 이야기 등도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 즉 이미지가 실물이 되었다는 줄거리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물이 이미지로 바뀌는 예들도 또한 살필 수 있다. 삼국유사 ‘탑상(塔像)’의 ‘흥륜사 벽화 보현’이나 ‘감통(感通)’의 ‘진신수공(眞身受供)’ 조에는 왕이나 사람들이 부처와 제석 등을 실견하는 장면과 더불어 그것이 그림이나 돌로 바뀌는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다. 무속에서 무당이 접신을 하고 몸 주를 그리는 일들도 넓은 의미에서 같은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인류는 구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었고, 또 그것을 숭배하였으며, 때로는 가차 없이 그것을 파괴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미지로부터 온갖 저주담이 파생되었으며, 심지어는 그로 인한 동티로 생명이 위독해지는 사례들도 있다. 그리고 또 이미지가 실물처럼 살아 움직였다는 일들도 기록 가운데 남아 있으며, 그래서 결국은 그것을 지우거나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렇듯, 이미지를 둘러싸고 갖가지 일들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이미지가 실물을 대신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실물의 대역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근거하여 사람들은 피하고 싶은 일들을 그것으로써 대신하게 했다. 희망의 염원을 그 속에 담아서 이루고자 하였으며, 때로는 이미지를 처참하게 살해하였고 또 때로는 이미지 속에 갇힌 영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그것을 잔혹하게 파괴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일들은 인류가 축적해 온 긴 조형 예술의 역사 가운데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 과정에서 이미지는 스스로 생명력을 갖게 되었으며, 온갖 의미들과 상징 그리고 타부 등이 그 속에 기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미지는 그것의 시각적인 외양, 즉 껍데기 속에 인류가 구축해 온 정신 세계의 모든 것을 담아 넣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이미지는 그 본래의 생김새보다도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이 우선적인 과제로 바뀌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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