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판 공공의 적
신판 공공의 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9.09 1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래전 필자의 중학교 시절, 도덕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후덕하게 생긴 얼굴에 흰머리가 멋있게 어울리는 선생님께서 슬리퍼를 신고 교실에 들어섰다. 학생들은 명색이 도덕시간이라 다른 수업시간보다 약간 긴장이 되는 듯 각자 자세가 반듯하고 신중하다. 선생님께서 출석을 부르고 나서는, 평소와 달리 호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들고 가래침을 퉤! 하고 받아 접은 후, 도로 호주머니에 넣고 말을 시작한다. 학생들은 약간 당황한 듯 주의 깊게 한 말씀 한 말씀 귀담아 듣고 있다. 그 당시에는 워낙 길거리에 침을 아무데나 뱉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앞으로 절대 침을 뱉지 말라고 하는 은연중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시연(試演)이었던 것이다.

어느 대학로 근방에 재미나는 거리 하나가 생겼다. 일명 ‘바보사거리’라는 곳이다. 그 네거리에 들어서서 먹자골목으로 가려고 하면,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바보처럼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의미에서 생긴 말이다. 이곳에서 좀 떨어져 사는 필자에게는 아침 산책을 겸해 자주 왕래하는 곳이어서 저절로 관심이 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오전 7시경의 모습이다. 길바닥에는 일회용 라면그릇에서부터 담배꽁초, 광고전단지, 술병 등 그야말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또 학교 담장을 끼고 있는 으쓱한 담벼락에도 마찬가지다.

오래 전 몇 년간 도쿄 어느 주택가에 자리를 얻어 살았던 적이 있다. 그곳은 일본의 평범한 가정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는 동네이어서, 다른 곳보다 일본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데 안성맞춤이다.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휴지조각 하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비가 온 후 골목길을 걸어가 보면 집집마다 출입구에는 작은 화분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모든 동네 골목길은 깨끗하기 그지없다. 더욱이 아스팔트 위에 그려진 하얀 선의 도로표지 글자모양은 예술적인 분위기마저 든다.

도쿄 중심지에서 동북쪽으로 20분 정도 전철을 타고 가면 디즈니랜드라는 레저 타운이 나온다. 미국의 디즈니랜드를 흉내 내어 만든 일본풍의 테마 파크인 셈이다. 구내에는 군데군데 많은 휴식 공간이 있고 벤치도 여기저기에 놓여 있어 관광객들은 즐겁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깨끗함이다. 길바닥에 휴지나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기만 하면 관리원이 쏜살같이 달려와 휴대용 집게로 주워 쓰레기통에 담는다.

2006년 ‘외국인이 뽑은 아시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싱가포르가 뽑혔던 적이 있다. 이 나라가 깨끗하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된 것은 인권유린이라는 말도 있지만 태형(笞刑)제도를 시행해 무섭게 제압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사다리 모양 나무 형틀에 사람이 엎드려 있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다리가 묶여있고, 엉덩이 부분은 옷을 벗겨 맨 살이 드러나 있다. 그 옆에서 건장한 교도관이 온 힘을 다해 가늘고 긴 등나무 회초리로 내려친다. 비명소리와 함께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른다…/ 끔직한 고통이 따르는 체벌이다.

화제를 잠시 바꾸어보자. 농촌의 가난한 아들로 태어나 구두닦이·신문팔이를 하며 독학으로 공부한 류태영 박사가 있다. 젊었을 때 덴마크 국왕의 초청을 받아 유학했고 이스라엘 정신문화의 원천인 탈무드(Talmud)의 독특한 교육방법과 철학을 연구한 한국의 독보적인 농업전문가이다. 한 때 청와대에 초청받아 대통령 부처 앞에서 새마을 운동의 효시가 된 덴마크의 선진 농업방식을 직접 설명해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그는 또 이스라엘 협동농장의 운영방식을 연구하면서, 근면·자조·협동 3대정신을 모토로 하는 새마을 운동의 토대를 닦은 행동학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운동을 이제 새삼스러이 우리의 ‘도시’ 구석구석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더 이상 우리는 쓰레기와 침을 아무 곳에나 버리는 그런 공공의 적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바야흐로 우리도 1996년 OEC D 가맹국이 됐고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성공리에 개최해 국위를 선양한 저력 있는 민족이지 않은가? 더욱이 1인당 GNP도 2만 달러 이상이 넘어 선진국 대열에 올라 선 근면하고 우수한 민족이지 않은가? 결론을 내리면 지금이야말로 스스로 행동을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자세를 가지면서 살아가야 하며, 나아가 도시 새마을 운동을 전개해 깨끗하고 행복한 나라로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마지못해 싱가포르와 같은 태형을 도입해야하는 건지? 이제 우리는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 왔다고 본다.

<김원호 울산대 교수>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