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9.0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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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뜨거운 밤이었다. 달포 전부터 대대적으로 알려진 ‘태화강’축제를 보러가느라 아마도 울산 인구의 삼분의 일은 찐득한 강바람을 맞으며 삼삼오오 떼를 지어 십리 대숲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겨우 좌석하나를 차지하고 앉았지만, 연신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습기 품은 바람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삼십분쯤 후에는 서둘러 그 속을 벗어나고 말았다.

혼자 걸어가는 강가엔 유난히 괴괴한 정적이 고여 있었고, 저마다의 소리를 내던 풀벌레 울음조차 숨을 죽인 듯 했다. 운집한 인파만큼 주차장도 만원이어서 차가 있는 곳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강변을 벗어나니 그토록 붐비던 차도는 거짓말처럼 한산했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통행마저 뜸했다. 왠지 혼자만 무리를 벗어난 외톨이 같은 생각이 들어 잠시 망연해지는 심사를 추슬렀다.

그리곤 성안 초입을 막 들어서면서 아, 나는 한 번도 눈여겨보지 못했던 풍경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어둠에 잠겨 있는 성안은 그야말로 말 그대로 하나의 커다란 ‘섬’으로 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알 수 없는 힘이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듯 스스럼없이 경찰청 뒷길로 방향을 틀었다. 가로등 불빛에 어른거리는 짙은 나무 그림자가 한결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드문드문 불을 켜고 있는 집 옆으로 난 한적한 길을 따라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유혹하듯 은은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커피점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휘황한 요리집 간판을 눈여겨보기도 했다.

음식점들은 마치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활기가 넘쳐 보였다. 이런 분위기들이 어쩌면 선남선녀들의 기분을 한껏 부풀어 오르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보름달이라도 뜨는 밤이라면 더 할 나위 없을 것이다.

차를 천천히 몰아도 아무도 탓하는 이 없는 여유를 만끽하며 ‘아드리안’을 지나쳤다. 저 멀리 눈 아래로는 울산의 젊음을 상징하듯 휘황하게 출렁이는 도시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언제 봐도 싫증나지 않는 경치였다.

바깥으로 퍼져 나오는 엷은 커피 향과 은근한 불빛, 이마를 맞대고 도란거리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섬처럼 떠 있는 풍경은, 아련한 옛날을 회상하게 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섬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섬은 그렇게 누구나의 가슴에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어둠속에 떠 있는 성안이라는 섬을 한 바퀴 빙 돌았다. 때로는 어두운 골목을, 때로는 환한 상가를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 넓은 운동장도 지나갔다. 여유롭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괜히 행복해져서 혼자 미소를 머금기도 했다.

논에서 개굴개굴 개구리들의 울음이 들려왔다. 이에 질세라 풀벌레들도 찌릭찌릭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직 잠들 시간이 아닌 듯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움직임도 부산하게 느껴졌다. 미물의 마음에도 섬이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성안이라는 큰 섬 속에 각자의 작은 섬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들. 섬 안에서 섬을 키우며 사람들은 살아가고 뭇 생명들은 잉태된다. 따라서 섬은 외롭거나 멀거나 아득해도 결코 혼자가 아닌지도 모른다.

우뚝우뚝 섬이 자란다. 날마다 자라는 섬은 생명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나 또한 그 섬의 일원으로 늘 마음이 벅차오른다. 나름 아름답게 가꾸려 애쓰는 노력이 있기에 성안은, 섬들은 늘 분주하다.

어둠 속에서 간간이 떠다니는 섬들이 보인다. 그 섬들은 하나이거나 때로는 둘이 포개지기도 한다. 어떤 섬이건, 섬의 발끝 아득한 곳에서는 빛이 흐르고 흘러 어디론가 가고 있다.

섬들은 낮은 자세로 더 낮은 자세로 엎드린다. 스스로의 섬에 갇혀 꼼짝 못하는 섬도 있다. 섬들은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사랑을 한다. 그리곤 가슴 가득 섬을 안은 생명들이 살아간다. 나도 섬들에 섞여 조용히 흐른다. 흐를 수 있어 다행이라며 천천히 그들의 율동 속으로 섞여든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섬에도 비가오고 바람이 분다. 바람이 작은 섬을 흔들어 가끔씩은 흔적 같은 무엇을 남기기도 한다.

<전해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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