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 현장 금기 어기면 상응한 벌 받아
암각화 현장 금기 어기면 상응한 벌 받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9.0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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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나 강변의 쉬쉬키노 바위그림 유적.
바위그림 유적지에 지속적으로 희생 제물이나 예물 등이 바쳐지고, 뼈 무더기가 관찰되는 점, 일부 동물 형상들의 몸통에 화살이나 창 그리고 작살 등이 그려져 있는 점, 특정 동물 형상의 머리나 가슴 부분이 짓이겨져 있거나 파여져 있는 점 등을 통해서 선사 및 고대인들이 그것을 숭배하였고 또 그것을 위하여 의례를 거행하였으며, 모의 사냥을 하는 등 이미지 살해를 하였음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점으로써 선사와 고대 수렵 및 유목민들이 지녔던 이미지에 대한 관념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은 특정 동물이나 사람의 이미지가 조형언어로 번역되어 형상화되는 순간, 그 속에는 영혼이 깃들게 되며, 그것은 실물과 같은 또 하나의 존재가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제작 집단이나 그들의 후예들은 정기적·비정기적으로 그 형상이나 유적 앞에 제물을 바치면서 의례를 거행하는 등 신성하게 여겼으며, 때에 따라서 그것을 고의로 훼손하는 등 이미지 학대 내지는 살해를 하였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바위그림 유적지 등 선사 및 고대 조형 예술 유적지를 둘러싸고 갖가지 금기나 비일상적인 현상 등이 연구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그러한 사례 중의 대부분은 현장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현지인들로부터 직접 전해 듣거나 또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조사자들이 직접 겪는 고초라든가 어려움들이며, 이 중에서 후자를 연구자들은 특정 유적 및 형상의 ‘저주’라는 말로 명명하여 부른다.



그중에서 첫 번째는 금기와 관련된 것이다. 이는 대부분 유적지 속의 형상들을 악마의 얼굴이라고 믿고, 그곳에 함부로 접근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접근을 금지하는 경우이다.

아무르 강변에는 ‘사카치 알랸’(나나이족의 말로 ‘멧돼지의 언덕’을 뜻함)이라고 하는 암각화 유적이 있는데, 그곳에는 얼굴-마스크를 중심으로 하여 순록, 호랑이 등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현지 주민인 나나이족은 아직까지도 이 암각화 속의 얼굴 마스크 형상들을 악마의 얼굴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런 이유로 이 유적지에 함부로 접근하는 것을 꺼린다. 물론 그들은 이와 같은 얼굴 형상 속에는 악마의 영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있으며, 잘못 접근하면 금기를 어긴 것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3년간 나는 여름마다 남부시베리아의 술레크 암각화 유적지를 조사하였다. 그 과정에서 유적지의 모든 암면 상황을 파악하였고, 형상들을 채록하여 도면화 했으며, 그 자료들을 토대로 하여 그림의 구성 방법과 양식 등을 분석했고 또 그 형상들의 상징 의미 등을 몇 편의 연구 논문 속에 소개한 바 있다. 이 유적지에는 피산나야, 솔랸나야 그리고 오제르나야 등 세 개의 나지막한 산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 봉우리 모두에 각각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유적지는 지금도 비밀리에 그림들이 그려지고 있는데, 조사 과정에서 현지의 유목민들에게 새롭게 그려진 그와 같은 형상들을 누가 그리느냐고 묻자, 그들은 서슴없이 하카스족의 샤먼들이라고 했다.

바위그림 위에는 수많은 낙서와 사람 이름 등이 덧 씌어져 있었는데, 이러한 글씨를 두고 현지 주민들은 이 그림 위에 낙서를 하면 60세를 못 넘기며 일찍 죽는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림에 낙서를 하면,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영들이 노하고, 동티가 나는 등 불운을 겪게 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저주와 관련된 것이다. 1997년에 나는 레나 강변의 쉬쉬키노 바위그림 유적을 조사했다. 당시 나는 이르쿠츠크대학교의 메데베데프 교수와 현지의 바위그림 전문가 L. 멜니코바 박사, 쉬쉬키노 바위그림 유적지 보호 관리소 직원 등의 도움을 받아 현장 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 L.멜니코바 박사가 동행을 했으며, 3일 간의 현장 체류 기간 중 이 유적의 안내와 더불어 그녀가 조사 과정에서 겪은 경험담 등을 들려주었다. L. 멜니코바 박사는 저명한 러시아의 고고학자 A.P. 오클라드니코프 박사의 사후, 이 유적을 전문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한 학자이다.



쉬쉬키노의 회랑을 거닐면서, 산기슭의 샤먼 바위 위에 예물을 바치면서 그리고 별들이 쏟아져 내리던 시베리아의 여름날 저녁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우리들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런 과정에서 그녀가 이 유적을 조사하게 된 경위, 그때까지 새롭게 파악한 내용과 선행 연구자들이 남긴 도면의 문제점, 바위의 성질과 제작 기법의 상관성, 빛의 각도에 따라 드러나고 감춰지는 형상들, 조사 과정에서 혼자 곰과 만났던 위기의 순간, 발정기의 수컷 순록들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 등을 진솔하게 전해주었다.

그 중에는 무신론자였던 그녀가 이 바위그림 속의 형상들이 영험을 지닌 신령한 존재임을 믿게 된 과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물론에 입각하여 교육을 받았던 그녀에게는 종교가 없었고 또 귀신 따위도 믿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해에 조사를 마치고, 다음에 올 때는 맛있는 것을 준비하여 바치겠다고 혼자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방문하였을 때는 이전에 그녀가 한 말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유적 보호 관리소가 지어지기 이전이었고, 그래서 텐트를 치고 조사를 하여야 했는데, 갑자기 돌개바람이 불고 날씨가 사나워져 결국 조사를 포기하고 돌아가게 됐으며, 그 순간 그녀는 머리카락이 서고 소름이 돋는 등 무서움을 느꼈으며, 그때까지 한낱 형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들이 새로운 모습, 즉 영이 깃들어 있는 또 다른 존재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초콜릿과 비스킷 그리고 불을 붙인 담배 등을 샤먼바위 위에 얹어 놓고, 잠시 동안 무언의 기도를 했다.



2003년도 여름에는 아네가 호숫가의 베소브이 노스 유적을 조사하였다. 이 유적은 스타라야와 노바야 잘라부르가 등과 더불어 카렐리야 지방의 대표적인 암각화 유적이다. 거대한 아네가 호숫가의 동쪽 기슭에는 베소브이 노스를 중심으로 하여 페리 노스 등의 암각화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그 중에서도 베소브이 노스 유적에는 샤먼을 비롯하여 수달과 모캐(대구과의 민물고기) 등 거대한 형상들이 전체의 30%를 넘는 백조들과 함께 그려져 있다.

그림은 호숫가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넙적 바위에 그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일부 백조들은 물과 맞닿은 지점에 그려져 있기도 했다. 한낮에 직사광선 아래에서는 형상파악이 어렵고 뜨거워서 아침 일찍 사진과 비디오로 그림을 촬영하고 또 그 형상들을 채록했다. 거대한 샤먼 형상의 위에는 동방정교 선교사들이 십자가를 새겨놓았으며, 그것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수달과 모캐가 각각 그려져 있고, 이들 사이에는 목이 기다란 백조와 배 등이 보다 작은 크기로 그려져 있다.

두 명의 도움이와 함께 조사를 마친 나는 호안가의 넙적 바위를 따라 베이스캠프로 되돌아갔으며, 도중에 미끄러져 순식간에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도 카메라 가방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그것을 두 손으로 치켜들고 바깥으로 나가고자 발버둥을 쳤으며, 그럴수록 물결에 휩쓸려 점점 안으로 빠져 들어갔다. 함께 가던 칼메크인 도우미 발로자는 나를 구하기 위하여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나는 그에게 카메라 가방을 넘겨준 후 간신히 그곳을 헤어 나왔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현지의 연구자들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베소브이 노스’의 저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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