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근원 알고자 암각화 응시했다”
“미술 근원 알고자 암각화 응시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8.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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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장석호 박사의 학문편력 들으며 여독 달래
대곡천에서 시작 동북아 전역 탐사한 긴 여정 청취
암각화학자 장석호씨가 알타이 탐사 뒤 귀국해서 보여준 자신이 그린 그림. 그의 작품은 대체로 ‘무리’를 이루며 리듬을 느끼게 했다. (위에서부터 1989년作, 1993년作, 1994년作, 캔버스에 아크릴)
“점은 피아노며, 선은 바이올린, 면은 첼로다.”

그림은 점·선·면으로 구성된다. 피아노·바이올린·첼로는 3중협주곡을 만들어 낸다. 음악애호가인 함유식 울산보건환경연구원장은 베토벤의 ‘3중협주곡’을 고전음악 가운데 최고로 친다. 암각화 학자 장석호 박사는 그림을 악기로 변환시켜 설명했다. 기발한 비교다.

이런 얘기를 여행기간 내내 들었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난다. 먼 외국 여행을 하면 가정사 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로부터도 벗어난다. 간섭없이 얘기하기 쉽고, 각자의 속셈을 들여다 보기 좋은 기회다.

악명 높은 몽골의 서북지역 여행은, 덜커덩 거리는 길의 따분함을 잊기 위해서라도 동행자와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된다.

장 박사는 미술의 근원을 알기위해 암각화 연구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계명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하던 시기 ‘왜 그림을 그리는가’에 대한 근원적 의문에 빠져, 그 해결책으로 고대인의 그림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그 출발시기가 대곡천 암각화를 발견한 동국대 문명대 교수팀이 연구보고서를 출판한 1984년이었다.

그로부터 그는 세계의 암각화를 훑으며 주유했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민족학박물관에 공부하러 갔다가 그곳 종합대학원대학 교수들의 권유를 받고 세계적 암각화가 있는 몽골에 유학했다. 거기서 또 러시아의 암각화 연구가 세계적 반열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러시아 유학을 택했다. 그는 거기서 암각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 덕택에 그는 일본어, 몽골어, 러시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그는 학위를 받고 돌아와 울산 대곡천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을 자기만의 채록방법으로 모든 그림을 떠냈다. 탁본이나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달랐다. 덧댄 비닐에 유성 펜을 사용해서 선사인이 새긴 그림 하나하나의 선을 따라가며 채록했다. 대곡천 2개의 암각화를 모두 그려본 연구자는 그 뿐이다. 그런 연구태도로 동북아시아 그림 수만개를 그려냈다.

그렇기 때문에 가령, 여러 학자들이 반구대암각화의 인물상 배 부위의 튀어난 형태를 두고 남자의 ‘고추’라고 했을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동북아 암각화에서는 짐승의 가죽을 통째로 말려 입었을 때 종종 생겨나는 돌출부가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장 박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때쯤 필자는 몽골 음식과 거친 산에 진력이 나있었다. 육개장과 생선회가 생각났고 강과 바다가 그리웠다. 그래서 장 박사의 고향 하동 얘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경남 하동종고 출신인 그는 계명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종고에서 그림 공부하러 간 것도 드물다. 그런 그가 졸업작품을 냈을때 학교로부터 대상을 받았다. 그는 대학원 다닐 때 고향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섬진강 맑은 물가에서 후배들에게 그림에 대한 소양을 불어넣은 결과 매년 6명 가량씩 5년간 40명을 미술대학에 진학시켰다. 종고에서 대학진학이 드문데 그것도 미술대학에 여러명을 진학시킴으로써 고향에서 일약 스타가 됐다고 했다.

그는 그림을 원형적으로 본다. 어떤 작가의 스타일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파악한다. 가령 마네의 그림 ‘풀밭위의 식사’에서 팔을 괴고 비스듬히 누운 형상은 그리스의 물의 신에서 유래하고, 더 나아가 구석기 막달레느기의 그림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파악한다. 그것은 가장 어색하지 않고, 가장 편안한 포즈로써 고대와 현대 미술이 연결돼 있는 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암각화를 비롯 회화사, 색채학, 조형학 등을 두루 섭렵한 그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점과 선은 말할 것도 없고 새 을(乙)자만 억만번 그려봤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점은 피아노, 선은 바이올린, 면은 첼로의 음향과 동일시하는 관점을 얻기도 했다.

그의 말이 허튼 소리인지, 귀국하면 반드시 그의 그림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러마’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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