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즈벨트 기획, 이승만 로비로 만든 우표
루즈벨트 기획, 이승만 로비로 만든 우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8.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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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1월 2일 오전 전국우체국을 통해 발매될 이 우표의 발행 의미를 알리기 위해 지방의 한 우체국에서 발매 1호 우표 기념식을 가졌다. 이 때 한국의 대표로서 10명이 참석했으며, 미국의 프랭크 워커 우정장관이 직접 기념우표를 판매하는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미국이 발행한 우표 도안에 ‘KOREA’라 쓰고 중앙의 밝은 광채 속에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그림이 액면가 5센트짜리로 발행됐다. 미국 정부가 한국인들의 독립을 염원하고 투쟁을 지원한다는 의미가 담긴 우표이다. 미국이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에 침략을 당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시리즈우표로서 발행되었으며, 미국은 연합국을 대표하여 침략국에 의해 유린당한 국민들에게 기필코 광복할 수 있도록 도운다는 증표의 일환이었다.

태극기우표는 미국 제32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기획되었고 이승만 박사의 로비에 의해 탄생된 것이다. 두 지도자는 우표에 관심이 많았으며 우표가 지닌 파급효과가 지대함을 알고 있었다. 당시 대통령으로서 대단한 우표취미활동을 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출장을 다닐 때에도 우표첩이 들어 있는 가방을 지니고 다녔으며, “살아가기 위해서 공기가 필요했던 것만큼이나 우표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고 우표에서 얻은 지식이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더 많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태극기 우표가 발행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미국이 1943년 5월에 발행 계획을 발표하고, 같은 해 6월 22일이었으며 폴란드 국기우표를 시작으로 11개국의 우표가 차례대로 발행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네델란드,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오스트리아 순이었으며, 추가로 덴마크가 발행되었다. 이 나라는 독일군의 점령아래에 있었으나 나라의 체면을 구긴다하여 발행에 응하지 않다가 나중에 추가로 발행했다.

국기시리즈 우표에서 계획에 없었던 우리 나라 국기우표가 추가로 발행되어 세계를 깜작 놀라게 했다. 왜냐하면 이미 발행계획에 들어 있었던 나라는 2차대전에 의해 침략을 당한 나라이지만 우리 나라 KOREA는 그들 나라와는 다르게 훨씬 앞선 1910년에 점령당한 나라였기에 기획의도와는 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국기우표시리즈에 우리나라 우표도 발행되기를 소망한 것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한국독립투사들이었다. 이승만 박사를 중심으로 주미 교포들의 적극적인 로비활동이 시작되었고, 이와 때를 같이 하여 1943년 11월 8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한국을 독립시킨다고 한 ‘카이로선언’이 발표되었음에 힘을 얻어 로비에 심혈을 쏟았다. 마침내 1년 뒤인 1944년에 태극기 우표가 발행된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과 이승만 박사의 우표사랑이 큰 몫 했다.

우리 나라의 태극기의 태극 도형은 반만년 역사 속에 우리 민족과 함께 한 정신적 증표이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 사용한 어기(御旗)에 8괘로 된 깃발이 있으며, 1874년 청나라 주재 미국 공사가 조선국의 국기를 고려 국기라 하여 4괘로 그려진 국기를 청나라에 소개하여 ‘통상장정(通商章程)’이란 책 속에 수록되었다고 전해온다. 1876년 고종 13년 병자년에 일본과 수호조약을 맺은 후 국장으로 태극장(太極章)을 내정하였다. 이때부터 태극장을 각 관아의 문짝에 그렸으며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부채의 도안에도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1882년 고종 임금 19년 제물포에서 일본과 조약을 체결한 후 8월에 수신사 박영효 교리 김옥균이 인천항을 떠나 일본으로 가던 중 배안에서 그린 태극기가 우리 나라의 최초, 최고(最古)의 태극기로서 1883년 조선의 국기로 채택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조국의 광복과 함께 각양 각색으로 사용해 오던 태극기 도형은 국기시정위원회에서 현재의 태극기를 국기로 확정하고 1949년 10월 5일 문교부고시 제2호로 확정 발표하였다.

1944년 11월 2일 미국에서 발행한 태극기우표는 박영효가 선상에서 그린 태극기 도안과 비교하면 태극의 모양은 같으나 4괘의 위치가 다르기는 하지만, 도형이 지닌 의미는 변함이 없다. 태극은 창조의 정신을 나타낸다. 4괘는 태극의 양과 음의 원리와 부합되는 이치이며, 나라의 국운이 무궁하고 빛나는 나라가 되자는 의미를 표현한다.

최근 알려진 바에 의하면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하이의 허름한 셋집에서 열린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지금의 국회)에서 제안되었는데, 독립운동가 조소앙(趙素昻 1887~1958) 선생이 임시의정 10조 헌장에 썼으며, 이를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은 독립운동가인 신석우(申錫雨 1895~1953) 선생이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소 이완범 교수는 대한이란 국호는 중국이 봉한 조선의 대안이며, 또한 일본이 조선이란 국호를 선호함에 따라, 자주적이며 반일에 대한 정통성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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