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기호·도구 이미지 포착해 새김으로써 문명사 시작
동물·기호·도구 이미지 포착해 새김으로써 문명사 시작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8.1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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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상 분리·분류 못했다면 인류는 하층동물에 머물러
선사미술은 인문학의 바코드이며 당대 문화의 핫이슈
고대 동물형상은 오늘날 문자 메시지·동영상과 동질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각 이미지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은 동굴 속의 천정이나 벽, 동물의 뿔과 이빨 그리고 뼈, 돌멩이나 바위 표면 등에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은 이미지들은 주로 자연 속에 존재하는 각종 동물들과 더불어 인간이 도안한 기호 그리고 만들어 썼던 도구 등을 표현 대상물로 삼은 것들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형상들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의 창의성에 의해서 발현됐고 또 그의 손에 의해서 제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와 같은 이미지의 형상화가 그 이전의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점 등에서 앞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문화적 현상이라 할 수 있고 또 그런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이미지를 고착하게 된 그 순간, 그들의 삶은 급변하게 됐다. 그것을 기점으로 기록과 보존 그리고 정보 공유 등이 가능하게 됐다. 인류가 이미지를 고착시킬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지루하고 더딘 시간이 흘렀고 또 시행착오를 거쳤는지 아직은 구체적으로 복원해 낼 수는 없다. 그러나 인류는 마침내 그가 생각하였던 세계, 즉 눈앞에 펼쳐진 현상계는 물론이고 비가시적인 존재와 세계까지도 가시적인 형상으로 바꿀 수 있게 됐다. 이로써 그동안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덧없이 사라져 갔을 영감과 비전들은 이제 지속 가능한 이미지로 우리 앞에 남아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순간부터 인류는 자연으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인공이라고 하는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으며, 동시에 인류의 ‘문명사’는 서막을 올리게 됐다.

만약에 인류의 먼 조상들이 자연계 속에 무질서하게 혼재했던 물상들을 하나하나 개별적인 개체로 분리·분류할 수 없었고 또 그것을 분류하기는 하였지만 이미지화 하지는 못했다면 그리고 또 포착한 이미지들을 조형언어라고 하는 제3의 형식으로 고착시키지 못했다면, 아마도 인류는 아직까지도 동물계의 하층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획득된 이미지를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형상화해 낼 수 있었느냐의 여부가 곧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중요한 바로미터이기도 한 셈이다.

그런 까닭에 인류가 특정의 이미지를 인식하고 또 그것을 지속적으로 형상화한 일은 곧 인류 문명사를 조형언어로 번역한 일인 셈이다. 소위 ‘선사미술’ 속의 각각의 형상들은 인류가 쌓아 온 ‘인문학’의 바코드이며, 새로운 제재와 더불어 시대별로 창출된 조형 양식 등은 인류가 향유하여 온 당대 문화의 핫이슈였던 것이다. 더 나아가, 만약에 그와 같은 이미지들이 집적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마도 우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소위 보편적인 질서와 가치 따위는 물론이고 광케이블과 같은 최첨단의 정보 전달 시스템과 그에 의한 정보 공유 등은 불가능하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명의 여명기에 인류가 분별하고 남긴 하나의 동물 형상들은 곧 오늘날의 우리들이 주고 받는 문자 메시지나 동영상 등과 동질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가장 오래된 인류의 조형 이미지들은 동굴 속의 벽이나 천정, 동물의 뼈나 뿔 혹은 이빨 그리고 돌멩이나 바위 표면 등에 시문되어 있었다. 추측하건대, 당시의 사람들은 이들 이외에도 나무나 동물의 가죽 등 기타의 매체를 통해서도 그와 같은 이미지들을 형상화시켰을 가능성은 높다. 이미지를 고착시키기 위한 바탕이 되었던 벽이나 천정, 뼈나 뿔 그리고 바위 표면 등은 저마다의 고유한 속성들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것으로서의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그와 같은 매체를 배경으로 삼고, 그 위에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순간, 이미지는 그의 바탕이 되어준 물질이나 공간 등을 모조리 지배하고 만다. 그리하여 공간을 새롭게 지배하기 시작한 형상, 즉 이미지가 물질이나 배경 등의 전면으로 나서게 되고, 그것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여 준 바탕이나 매체는 역설적이게도 저만큼 뒷전으로 물러서거나 아예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이런 점에서 이미지는 그것 이외의 다른 것들과 공존하는 것을 몹시 꺼려하는 점을 알 수 있고 또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것은 매우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어떤 특정한 공간이나 물질 위에 이미지가 정착된 경우, 사람들은 그 공간이나 물질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의 전면에 등장한 이미지에만 전념하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특정 공간을 점유한 이미지는 그 공간을 지배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않는다. 그것은 처음에는 공간과 그 바탕재의 물성을 대표하지만,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그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지는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급기야 사람들은 그가 지각한 이미지와 그것의 원형을 동일시하며, 이전에 그가 원형을 통해서 획득한 온갖 경험과 감정들을 그 속에 투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순간, 이미지는 곧장 실물과 동일한 것으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지가 지닌 바로 이와 같은 성질, 즉 그것이 지니는 실물과의 동질성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물의 또 다른 드러남, 다시말해 현현(顯現)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앞의 형상들을 신성시하고 또 두려워하였으며, 그것을 향하여 경배했고, 그 앞에 희생 제물을 바쳤다.

또한 실물과 동질의 가치를 지닌 이미지에 상처를 내면 실제의 동물이나 사람 등 생명체들이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에 따라서 한편으로는 고의적으로 그 이미지를 살해하기도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에 접근하는 것조차도 꺼려하는 등 극심한 공포감을 갖기도 했다. 물론 이와 같은 관념의 연장선상에서 ‘동종주술(同種呪術)’이나 ‘타부(禁忌)’ 등이 파생된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선사 미술 속의 각종 형상들을 실물의 ‘대역’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굴 속 벽면의 동물 형상이나 각종 뼈나 뿔 등에 시문된 형상들 가운데 일부에는 창이나 돌을 던진 자국 등 모의 사냥의 표적으로 활용된 흔적들이 관찰되고 있고, 또 일부 동물 형상에는 창이나 화살 등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또 몇몇 선사 시대의 동굴벽화 중에는 덧그려진 형상들이 여러 겹의 층을 이루고 있기도 했는데, 선사학자 가운데 일부는 이렇듯 무질서하게 덧그려진 형상들이 지속적으로 거행된 의례와 관련되어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다시 말하자면, 의례를 거행할 때마다 신상 또는 사냥 대상물 등 실물의 대역이 필요했으며, 의례의 완성과 더불어 그것들의 역할도 끝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의례를 거행할 때에는 그 목적에 합당한 새로운 대역의 제작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사 미술에서의 이미지와 형상 등은 오늘날의 회화나 디자인과 기본적으로 그 궤도를 달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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