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 빠진 차에 12시간 버틴 고고학자
강에 빠진 차에 12시간 버틴 고고학자
  • 김한태 기자
  • 승인 2012.08.16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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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자에 전폭 지지 보낸 몽골 권위자
18개국 러브콜 제치고 험한 답사길 동행
만년설 녹은 물에 흠뻑 젖어 떨며 밤 지새
▲ 해발 2천500m 지점에 있는 평원속의 강을 건너다 물살에 쓸려 오도가도 못하게 된 탐사용 승합차. 최근 몽골에 많이 내린 비와 만년설이 녹은 물이 겹쳐 예기치 않은 사고가 났다.

승합차가 강에 빠지고 몽골 고고학자 체르빈도르지 박사가 차 속에 12시간 갇히는 사고가 생겼다. 6인승 승합차가 강을 지나다가 그만 물살에 떠밀렸던 것이다. 일행은 급박하게 차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차가 넘어지면 익사할 판이었다.

카메라와 노트를 치켜들고 물속에 몸을 담그니 물이 차가웠다. 인근 만년설에서 녹아내린 물이었다. 몽골의 서북부 지방에서 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물이건 진창이건 그대로 밀고갔다. 이번에도 그러다 사고가 났다. 다행히 차는 전복되지 않았지만 차에 실은 식품과 옷가지들이 모두 침수됐다. 놀라운 것은 조수석에 앉은 체르빈도르지 박사가 꼼짝하지 않은 것이었다. 위급하니 내려라고 요청했으나 거부했다. “나는 물속에 들어가지 않아”라는 한마디로 끝이었다. 운전자의 판단착오와 난처한 상황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때 몽골의 고집을 봤다. 박사는 차를 물밖에 끌어내기까지 12시간을 버텼다.

비까지 내린 이날 밤은 텐트 안에서 장석호 박사와 함께 추위로 잠 한숨 못자며 이런 저런 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 전자 기기가 든 작은 가방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젖어버린 탐사단은 12시간만에 차를 건진뒤 짐을 풀어 말리고 있다. 멀리 뒤쪽 산에 흰 눈이 쌓여있다.

이번 여행 중 동행한 체르빈도르지 박사와 장석호 박사는 20년 교분을 이어온 사제지간이다. 체르빈도르지 박사는 올 여름 세계 각국의 고고학자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었다. 징기스칸 묘를 찾는 세기적 탐사를 하려면 반드시 그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올 여름 몽골에는 고고학과 인류문화학 등을 연구하기 위해 18개국 20개국 팀이 몰렸다고 한다.(사실 이렇게 많이 몰린 것이 진정한 학술연구인지 아니면 세계 10번째로 많은 몽골의 광물자원을 노린 것인지 알수 없다.)

체르빈도르지 박사가 여름 답사철을 맞아 바쁜 가운데 멀고 험한 여정에 기꺼이 참석한 것은 순전히 암각화 학자 장석호씨와의 교분 덕택이었다.

그는 캐나다, 미국, 아프리카 등 곳곳서 초청받고, 그가 연구활동을 할라치면 몽골 대통령이 헬기를 내줄 정도라고 한다.

이번 여행을 시작할 때 체르빈도르지 박사가 ‘앞으로 나의 얼굴은 너의 얼굴을 통해 나타난다’고 장 박사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전폭적 지지를 의미하는 이런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가 40여년 이상 국내외 고고·암각화 학자와 함께하면서 장 박사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장 박사가 암각화를 연구하면서 다른 학자와는 달리 미술사나 조형미술론 등 기본이 꽉 잡힌데다, 현장을 중시하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와 장 박사는 이미 3권의 암각화 연구서를 공동 저술해 각국 연구자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그는 출발하기 전 장 박사에게 이런 말도 했다. “알타이에 들어가 보라. 들어가면 나오지 못할 것이다. 며칠이고 그림을 채록하고 음미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한반도의 7배 되는 몽골 국토 곳곳에 있는 중요 암각화를 죄다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몽골의 보물지도’란 느낌을 준다.

몽골 고고학연구소장 체르빈도르지 박사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때문일까? 100kg에 이르는 육중한 몸을 가진 그는 물에 빠진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전화가 통달되지 않고 구급전화할 119도 없었다. 큰 차량을 불러오려면 12km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야 했다. 몽골 서북지역 답사여행은 고달팠다. 교통과 추위와 음식이 힘들었다. 긴급구난 대책이 없는 것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장 박사는 현장답사형이다. 기자로 치면 전화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터지면 무조건 현장을 가는 스타일이었다. 알다시피 현장은 많은 얘기를 들려준다. 일군의 학자들이 남의 자료를 베낄 때 그는 발로 뛴다. 이번에 고달픈 답사를 하면서 꾀를 피우는 학자들이 왜 현장을 기피하는지 알수 있었다.

이런 사례도 들었다. 어떤 여류 인류문화학자가 게르(몽골텐트)생활을 체험한다면서 나섰다가 이질문화를 견디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학문 자체를 포기했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솔직하다. 가보지도 않거나, 가도 여행삼아 주마간산식으로 보고, 남의 책을 들여다 보고 논문을 쓰는 작태가 흔한 것이다.

12시간 뒤 차를 물에서 건졌다. 그러나 전자기기를 제외한 모든 것이 젖어버린 우린 추위에 떠는 난민 꼴이었다. 건진 차의 기름통에는 물이 들어갔다. 인근에는 주유소가 있을 턱이 없다. 카자흐스탄 출신 운전자 슐레만(37)씨는 능숙한 솜씨로 기름과 물을 분리했다. 물과 기름이 섞인 것을 페트병에 옮긴 뒤 호스를 넣어 입으로 빨아 뜬 기름만 뽑아냈다. 엔진도 분리해 말렸다. 이 보다 앞서 타이어 펑크가 났을 때 20분만에 땜질해 운행한 솜씨가 여기서도 빛났다.

시동이 걸린 승합차는 다음 행선지를 향해 터덜거리는 길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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