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의 진정한 가치는 위대한 도약대
암각화의 진정한 가치는 위대한 도약대
  • 김한태 기자
  • 승인 2012.08.15 1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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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태 편집국장의 암각화 본산 몽골 알타이산맥 답사기<3>
문화 자긍심·관광자원화 기능은 낮은 가치
비범한 발전 꾀할 문명의 씨앗이자 원형질
양과 고래는 앞으로 그래핀과 수소로 전환
▲ 몽골 알타이 산맥 차강골에 있는 암각화 가운데 사슴의 여러가지 형태. 사슴은 청동기시대인의 그림이다. 크기는 가로 20~40cm 가량이다.
몽골의 깊은 골짜기에 있는 걸출한 암각화와 반구대암각화를 비교하면서 울산 암각화가 왜 세계적인가를 나름대로 확인했다. 그럼에도 허전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는 의문이 고개를 든 것이다. 아울러 이런 흔적을 찾아 분석하는 지금의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문했다.

다시말해 몽골 바위그림이나 울산 반구대 바위그림이 오늘 우리에게 실용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것, 또는 관광자원으로서 활용되는 것에 그치는 것일까? 이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몽골 알타이 산맥 깊은 차강골에서 젖은 바위면이 햇빛에 말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암각화의 진정한 가치를 따져보기로 했다. 물론 나로서는 이 문제를 풀기 어렵지만 내 곁에는 이 분야에 걸출한 식견을 지닌 2명의 박사가 바위그림을 관찰하면서 거닐고 있었다.

나의 질문에 대해 장석호 박사는 아름다울 미(美)자를 예를 들었다. 미(美)는 양(羊)과 대(大) 자가 결합됐다. 수렵민에게 양이 많으면 행복했다. 행복을 주는 요소는 아름다웠다. 차강골 바위에는 뿔이 휘어진 양이 수백마리 그려져 있다. 선사인들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요소가 많기를 기원한 것이다.

내륙인 몽골에서는 양이었지만 해양인 울산은 고래였다. 고래는 풍요를 제공했다. 지금 울산에서는 배와 차와 기름이 고래를 대신한다. 바위그림에 나타난 말은 오토바이가 됐고, 동물성 기름은 원유로 대체된다.

장 박사는 구석기인이 돌던지기를 통해 양을 잡았고 다음은 돌을 깬 타제석기로 진화하고, 돌을 깨다보니 청동을 발견하고 나아가 철을 발견한 뒤 우라늄까지 찾아낸 인류여정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첨단소재인 그래핀과 수소에너지로 넘어가는 과정이란 점을 밝혔다.

아울러 암각화를 중시하는 것은 각 세대간 경험의 공유이며 인식의 전달 기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양자도약(量子跳躍 Quan-tum Jump)이란 개념을 떠올렸다. 양자도약은 비범한 상황을 만들어 비상하게 도약하는 것이다. 우리가 반구대암각화를 줄창 연구하고, 세계적 가치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 목적은 과거의 빛나는 문화유산에서 내일 비약할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라는 생각에 닿았다. 차강골에는 활 쏘는 장면과 마차가 여러 형태로 전개돼 있다. 반구대에는 배가 여러 척 그려져 있다.

앞만 보고 활을 쏘는 방법은 뒤돌아 쏘는 방법이 개량되면서 비약했다. 이른바 파르티안 샷(Parthian shot)이라 불리는 이 방법은 기원전 3세기에 중앙아시아에 있었던 이란계통의 파르티아 유목민들이 이런 자세로 활을 잘 쏴서 붙인 이름이다. 도주하면서 뒤돌아 쏘는 방법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전쟁사를 쓰는 사람은 세기적 도약이었다고 평한다. 이 방법은 고구려 무덤의 벽화에도 나타난다.

마차도 마찬가지다. 당시 수송수단으로서 매우 중시됐음을 반영한다. 마차의 굴대와 바퀴살은 엄청난 도약이었다. 중국인 보다 더 중국문명을 잘 파악한 책을 썼다는 영국의 조셉 니담은 ‘중국의 문명과 과학’이란 저술에서 마차의 굴대와 바퀴살을 중국인의 발명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 차강골에 그려진 숱한 마차 그림을 보면 결코 그것이 중국의 발명품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수렵기마민족인 북방족일 가능성이 더 큰 것이다. 조셉 니담은 중국 문헌중심으로 연구함으로써 오류를 범했을 가능성이 많다.

어떻든 암각화는 선사이래 문명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며 우리가 얼마나 개량해 왔으며 얼마나 비약할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구대의 배도 마찬가지다. 통나무를 긁어내 만들다가 철선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유선형태는 불변이다. 작살촉도 마찬가지다. 미늘이 달린 그 형태는 불변이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변형된 것이다. 암각화는 문화자긍심을 높이거나 관광자원화로서의 가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기본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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