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만 되는 일 아니다
법으로만 되는 일 아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5.19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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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부는 2005년 12월 29일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파 22명의 토지 5백 43필지(329만3610㎡)를 국가에 귀속시켰다. 합법적 과정을 거쳤다 해도 국민의 정서에 위배되는 경우 ‘법 보다 인식, 관습, 과정’이 더 중요함을 보여 주는 사례로 여겨진다.

친일 행각을 한 선조로부터 토지를 상속받은 후손들이 적법성을 근거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적법하고 정당하게 부동산을 취득했다’고 백번 인정한다 해도 그 동기가 합법적이지 못하면 원인무효에 해당된다. 도박판에서 빌려준 돈은 채권으로 성립되지 못함과 같은 논리다.

인간이 사는 공동체에는 법, 규율보다 우선하는 관습, 인식, 도덕률 등이 가끔 존재한다. 남아선호사상을 중시하는 노인이 남자아이의 성기를 만지며 귀여워한다고 해서 성희롱이랄 순 없다. 군사부 일체라는 유교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사랑의 회초리’를 든다는 것 자체만으로 폭력이라 해석되지 않음이 그 예다.

‘법대로’보다 사실의 원인, 여건, 과정을 중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합법’이란 가설이 지닌 편법성을 우려해서 인 지도 모른다. 법적 기준, 절차에 하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습, 인식이 성사(成事)를 허용치 않는 경우는 허다하다. 이런 상충과정에서 편법을 용인하게 되는 것이 합법의 내재적 모순이랄 수 있다.

남구 무거동 태화강변에 장례식장을 설치하려는 민간업자에게 남구청이 허가를 내 주지 않자 그 사업자는 남구청을 상대로 지난해 10월 ‘건축허가 반려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울산지방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남구청은 “태화강 복원을 위해 많은 예산과 시간이 들어갔고 생태하천을 위한 울산시민들의 정서와 상반되는 만큼 허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이익이 합법적이라 해도 그것이 공동체 전체의 관습, 인식에 역행한다면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울산12경 중 하나인 태화강 십리대밭 건너편에 장례식장을 설치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합리적이지 못하다. 태화강이 생태하천이란 점을 차치하고라고 장례식장 설치위치가 주위 주거지역, 남산자락과 연결된 지점이기 때문에 주변생활권에 불쾌감을 줄 수 있다.

그 곳에 장례식장을 설치하려는 상업적 의도도 사회적 통념을 위배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강 언덕에 장례식장을 설치해 건너편 대숲과 강을 내려다보게 함으로써 ‘명소‘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분석되는데 이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정서를 감안치 않는 비이성적 사고다.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사업자의 ‘과거 편법시비’도 사업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보도에 의하면 이 민간업자는 1992년 이래 무거동 태화강변에 주유소, 가스 충전소 등을 건립하면서 ‘편법을 이용’해 법망을 교묘히 피해왔다는 의혹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회적 인식, 환경조건, 사업자의 사고 등을 종합할 때 남구청의 이번 장례식장 설치 허가 반려는 타당하다고 본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울산시가 서둘러야 할 일도 있다. 도심 자연녹지를 개발하려는 민간사업자와 자연경관을 보전하려는 행정기관의 법정다툼은 앞으로도 왕왕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행정기관과 개인이 법정에서 다투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차제에 ‘법대로’만 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울산시는 자연의 환경, 경관 보전을 위한 강력한 조례나 지침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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