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에 대한 착각
판사에 대한 착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5.19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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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은 권력에 아부하고, 약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무시하는 태도를 갖고 있는 이중인격의 표본인 사람이다. K는 무표정에, 전혀 속마음을 열어 보인 적이 없는 일명 크렘린이다. L은 자기가 가장 친하다고 여기는 동료 P의 자녀가 판사가 되었다고 하니까 표가 날만큼 으스대고 다녔다. K는 그런 일에는 초연한 것처럼 무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그 속을 아무도 몰랐다. P는 축하한다는 인사말에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겸손해 하는 것처럼 대했고, 직장의 상사도 그에게 일종의 특혜까지 주었다. 어느 정권에서 하는 모습과 닮았다.

L은 이런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일이 생기지 않나 두리번거리는 것 같아 보였다. K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P에게 다가가 자녀의 고시 동기 중에 변호사 개업한 사람이 있나 없나 알아보았다. 직장 상사는 P를 개인 면담한다고 고급 음식점에 초청하여 직장 카드로 저녁을 크게 내었다. 이 모두를 관찰하고 있는 J는 ‘세상은 이런 거야. 하여간 있고 볼 일이야’하면서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수 년 전에 J의 제자가 판사로 발령 받고 인사로 전화를 걸었을 때, J는 “축하해, 나도 이제 큰 ‘빽’이 하나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고 껄껄 웃어준 일이 있다. 그 제자는 어이가 없었던지 아무 말을 안 했다. 하여간 J는 판사 제자를 두었으니 어떤 권력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겠거니 하는 착각에 빠졌었다. 그러나 대단한 착각이었음을 나중에 반성했다. J가 하는 일이 법과 관계되는 일이 아니고, J가 접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법을 어기는 일이 없으니 재판 받을 일이 없고, 재판 받을 일이 없으니 다른 지역에 근무하는 판사는 동네의 주차관리원, 완장을 찬 사람만도 못 했다. 아마 자신의 자녀가 판사가 되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판사는 선고 공판에서 형량 판단의 권한을 철저하게 법조항과 판례에 근거하여 행한다. 여기에 자기들끼리의 이해, 일컬어 법조인(판사, 검사, 변호사)들 끼리의 이해의 범위 안에서 형량이 가감 된다. 이것을 모르고 자녀가 판사가 되었다고, 자신의 자녀가 마음대로 형량을 조정할 수 있고, 그것을 수렴청정(垂簾聽政)할 수 있는 부모인 것으로 착각하면 금방 후회하게 된다. 더 법을 잘 지켜야 하고, 법 때문에 손해도 감수해야 하고, 특히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귀찮아지기도 한다. 그들은 아직도 이것을 모르고 거들먹거린다.

우리 둘레에는 아직도 판사의 아비와 어미도 선고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으로 진짜 오판하고, 온갖 아첨과 아양을 떠는 비열한 사람이 더러 있다.

L은 아직도 기회를 기다리는 것 같다. K는 P의 자녀 고시 동기생 변호사 몇 명의 개업장소를 알아두었다. 그 직장 상사는 자기 돈을 쓰지 않았으니 뭐 손해 볼 것이 없다.

다만 J는 그 자녀가 곧 변호사 개업을 자기 고향에서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J야 말로 무서운 사람이다. P의 자녀가 판사로 있건, 변호사를 개업하건 모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진정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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