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암각화 세계적 가치 생생히 실감
반구대암각화 세계적 가치 생생히 실감
  • 김한태 기자
  • 승인 2012.08.14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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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태 편집국장의 암각화 본산 몽골 알타이산맥 답사기<2>
늑대 울음 들리는 알타이 깊은 골에 거대한 암각화群
반구대 3배 크기 바위에 산양·소·기마상 1천여점 확인
그림 개수에서 월등히 많으나 종
▲ 몽골 차강골의 수많은 암각화 가운데 하나. 사슴을 활로 공격하는 장면을 쪼아파기로 새긴 이 그림은 청동기시대 작품으로 추정됐다. 사슴그림의 길이는 30cm 가량이다.

몽골 알타이 산맥 깊고 깊은 골짜기에서 만난 바위그림은 가슴을 벅차게 했다. 1천개가 넘는 그림이 거대한 암반에 새겨져 있었다. 여기까지 수십개의 산을 넘고 강을 건너왔다. 거친 자갈과 진창길을 달려오느라 타이어가 터지고 엉덩이가 짓물렀다. 인적없는 이 깊은 골짜기에 어떤 인물들이 찾아와 그림을 그렸는지 경이로웠다.

도착하자 비가 내렸다. 바로 옆 산에는 눈이 쌓이고 추웠다. 그래도 틈을 내 몇 개의 바위그림을 볼수 있었다. 밤을 떨며 지낸뒤 막 야영지를 떠나려는데 날이 갰다. 하루 전 못 본 산자락 쪽을 걷다가 휘황한 그림을 만났다.

여긴 해발 2천500m. 안산암이 거칠게 풍화된 바위산이다. 앞에는 강이 흘렀다. 강 이름은 하얀 강이란 뜻의 ‘차강골’. 알타이 산맥과 산맥 사이에 생긴 긴 골짜기다. 동쪽으로 뻗어있어 해가 뜨면 일찍 빛이 도달하는 지점이다.

어렵사리 마주친 차강골 암각화는 대곡천 반구대 암각화와 일대일로 비교해 볼 절호의 기회였다. 돌이켜 보면 울산 또는 한국 사람은 반구대 암각화가 국가의 보물이자 세계적 문화유산이라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바위그림의 무엇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가치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나도 그런 의문을 지니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세계에서 바위그림 가운데 걸출한 평판을 듣고있는 것과 직접 비교해서 평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몽골 차강골에서 그런 비교를 할수 있는 대상을 만난 것이다.

차강골 그림의 양과 규모는 반구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고 컸다. 우선 결론을 말하면 차례로 검토한 결과 반구대 그림의 차별화된 우수성을 인정할수 있었다.

첫째 차강골 그림의 개수는 많으나 종류는 반구대가 많다.

이곳에는 가로 세로 각 1m 안에 50여개의 그림이 보였다. 장석호 박사는 내가 본것보다 12개 더 많다고 하나하나 짚으며 가르쳐 줬다. 어떻든 비전문가인 내 눈에 보인 50점을 감안, 전체 면적(길이 30m 너비 10m)을 어림잡아 계산하니 1천점이 넘었다. 장 박사는 이 정도 밀도는 세계 최고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럼에도 아직 조사연구가 완결되지 않아 유네스코 등재 등의 업무가 미뤄져 있었다.

장 박사는 이 그림들이 청동기~철기~흉노~투르크시대까지 4천여년간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이것에 비해 반구대 암각화는 전체 면적(길이 10m 너비 3m)에 비해 형상이 매우 다양하다.

장석호 박사가 분류한 형상을 보면 반구대 암각화 속에는 모두 270여점의 형상들이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는 얼굴-마스크 두 점을 포함하여 모두 14점의 사람 형상, 59점의 고래, 펭귄, 상어 그리고 물개 등의 바다동물, 41점의 사슴 형상과 21점의 돼지, 20점의 호랑이 그리고 종이 불분명한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그 밖에도 배와 그물 그리고 부구 등 어로용 장비들도 살필 수 있다.

▲ 암각화 학자 장석호 박사가 차강골 암각화에 비닐을 덧대 형상을 채록하고 있다.

장 박사는 “형상의 개체 수와 공간 점유율 그리고 그것들이 구성해 내는 장면이나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의 전개는 반구대 그림이 차강골 그림과 차별화된다”고 말했다.

둘째, 차강골을 비롯 알타이 산맥에 광범하게 그려진 그림이 사슴과 산양이 주요 소재인 반면 반구대는 고래가 핵심 소재다. 세계 암각화사에 고래라는 독보적 영역을 갖춘 것이다.

동북아 내륙지방의 삶은 사슴과 산양의 포획에 의존했다. 반면 동북아 끝 한반도의 맨 끝 자락에서는 고래라는 특이한 존재가 등장한다. 차강골에 늑대가 소를 공격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듯, 반구대에는 포경단이 고래를 잡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직접 목격하거나 잡아본 사람이라야 그리고 새긴다고 했다.(늑대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간밤에 가까운 산록에서 울리는 늑대 울음 소리를 여러차례 들었다. 여긴 여전히 늑대가 있다.)

반구대에는 고래를 직접 잡고 해체한 솜씨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장 박사는 스칸다나비아와 북극의 카렐리아 그리고 베링해협에 있는 고래암각화를 둘러봤으나 그것은 반구대에 훨씬 못미친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반구대 고래그림은 각 고래가 무슨 고래인지 식별이 가능하도록 그려졌으나 그쪽은 그저 고래형태만 그렸다. 오늘날 말하는 분류학적 개념에 차이가 나는 것이다. 또 반구대는 고래의 숫자가 60여 마리에 이르는 반면 그쪽은 몇개씩 흩어져 있다. 반구대 그림이 집적도가 훨씬 높은 것이다.

셋째, 세계적 암각화는 대부분 내륙지방의 수렵생활을 그린 반면 반구대는 바닷가에 위치한 해양성 특징이다.

몽골의 유네스코에 등재된 바위그림을 비롯 각국의 바위그림은 해안에서 수백~수천㎞ 떨어진 내륙에 있다. 반구대는 해안에서 직선으로 20km 가량이다. 더구나 그림이 새겨진 7천여년 전에는 내만 깊숙이 바닷물이 밀려왔던 곳이다.(이 부분은 경북대 지리학자 황상일 교수의 논문이 있다. 지금은 상류 토사로 충적돼 있다.)

이처럼 세가지만 비교해도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적으로 희소하며 독보적 존재임을 알겠다. 그런데 “자,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적이란 것은 이해하겠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데”라는 실용적 질문을 스스로 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 가치를 띤 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지 다시 상념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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