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준 진단평가에 대해
국가수준 진단평가에 대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5.1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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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초순 대한민국의 모든 초등학교에서는 국가수준 진단평가를 쳤다. 똑같은 시각에 똑같은 시간표, 똑같은 문제지를 가지고 치른 시험이었다. 시험의 형태를 본다면 대입수능시험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문제형식은 모두 객관식으로 서른 문제가 나왔다. 답안지도 있었는데, OMR카드와 비슷한 것이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작은 혼란이 있기도 했다. 그간에 아이들은 백점을 만점으로 하는 시험지만 받아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제당 배점이 1점이라서 만점이 30점이었다. 28점을 점수로 가지고 온 아이가 있어서 어떤 학부모는 너무 놀랐단다. 국가수준 시험에서 우리 아이가 이렇게 점수가 낮은가 싶어서 놀랐던 것이다. 나중에 설명을 듣고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어떤 학부모에게서 듣고 처음에는 허허 웃고 말았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것은 앞으로 벌어질 혼란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현재는 이것이 학생개개인에게 교사가 알려주는 정도에서 그칠 뿐이니 부담이 덜하다. 만약에 평가결과가 입체적으로 활용된다면 그 결과는 아주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우선 평가점수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집단 안에서 학생의 서열을 표기해서 공표하는 단계가 된다면 학생과 학부모는 아연 긴장할 수 밖에 없다. 거기다가 학교와 학급의 등위를 비교할 수 있다면 학교관리자와 교사들은 평가결과를 그저 그렇게 쳐다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정부에서는 국가수준 진단평가를 치는 의도가 학생의 실력을 측정하여 국가가 적절한 교육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라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의문이 든다. 실력측정을 위해서라면 1% 정도의 표집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미 대중화된 여론조사기법이 입증한 것처럼 표본조사만 해도 거의 진실에 근접한 효과를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시험지를 강제하겠다는 것은 교육에 대한 국가의 강제력을 높이려는 의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학생간, 학급간, 학교간의 경쟁을 통해서 학교의 효율을 높이겠다는 진정한 의도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효율과 경쟁력이 과연 21세기 교육의 본질에 적합하냐는 것이다. 그러한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지필평가와 객관식 시험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결과적으로는 한 세대 전에 유행하던 문제풀이식 교육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창의력과 자기주도적 학습력의 향상이라는 명제는 교육과정 지침서 속에나 존재하는 허울 좋은 글귀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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