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생각의 씨앗이자 인류 문명의 수단
이미지는 생각의 씨앗이자 인류 문명의 수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7.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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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다’는 것은 곧 ‘이미지 떠올린다’는 것
구석기 전기유적 없다면 이미지가 없었다는 뜻
물상의 고유한 이름은 이미지의 또 다른 표상
5감 중 시각은 구체적 윤곽으로 기록성 갖춰
인류사에서 이미지가 없었던 시대는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시각을 비롯하여 감각기관이 갖추어진 그 순간부터 인류는 어떤 형식으로든 이미지를 체험하고 또 그 경험들을 간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인류가 이미지를 고착시킨 것은 기나긴 인류사에 비한다면, 겨우 3만년 정도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는 시기의 일이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니, 후기 구석기 시대 이전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였으며, 어떻게 생활하였는지 등은 극히 원론적인 입장에서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 추정 가운데 하나를 우리들은 세계 각지의 박물관 구석기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동물 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불을 피우거나 작살 또는 창을 들고 어로나 사냥을 하는 반쯤은 동물 상태의 먼 조상들의 모습이며, 안타깝지만 우리들은 그와 같은 모습을 통해서 선사 시대 인류에 대한 또 하나의 부정확한 이미지를 고착시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그것이 참인지 혹은 거짓인지 단정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들이 불을 지피고 또 창이나 작살 그리고 가죽으로 된 옷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와 같은 현상이나 물상들에 대한 관념들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들은 그러한 물상들로써 한 때 그들의 동료였던 동물을 비롯하여 야생의 세계에서 벗어나 서서히 문명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앞에서 언급한 소위 ‘물상들에 대한 관념’은 이미지를 전제로 한 것이다. 이미지가 없었다면, 과연 그들은 어떻게 불을 피우고 또 작살이나 창을 만들 수 있었겠는가? 아니 그와 같은 것들을 만들 생각을 할 수가 있었겠는가? 가정을 하여, 처음부터 세상에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마도 생각이라는 말도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생각을 하는 데에는 먼저 이미지가 전제되어야 하며, 그것이 없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어떠한 상도 떠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이란 무언가의 구체적인 상을 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지의 도움이 없이는 어떠한 물건이나 상 따위도 떠올리거나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생각한다’는 말을 다르게 고친다면, 그것은 곧 이미지를 떠 올린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동굴벽화 등 소위 후기 구석기 시대의 조형 예술이 제작되기 이전에는 이미지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후기구석기 시대 이전의 인류가 스스로의 손으로 제작한 이미지들이 아직까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후기 구석기 시대 이전의 인류가 남긴 이미지들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것들이 제작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들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아직 그것을 밝혀내지 못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전자의 경우라면, 인류는 아직 야생의 세계 속에서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거나 혹은 불편하였을지라도 그것을 극복할 뚜렷한 대안을 모색해 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후기 구석기 시대가 되면서 동굴 벽화와 같은 조형예술이 제작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곧 그때부터 인류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또 그 과정에서 떠 올린 이미지들을 제 3의 공간 속에 고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원래는 자연만이 창출할 수 있었던 이미지들을 인간이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으며, 그에 따라서 그때까지도 존재하지 않았던 인공의 세계가 새로이 구축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손에 의해 이미지가 형상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은 비로소 자연과는 구별되는 문명화의 걸음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인류의 문명사는 동굴벽화와 같은 이미지가 제작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지가 없는 문명이나 문명사란 결코 있을 수도 없고 또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의 등장을 기준으로 하여 그 이전과 이후를 각각 혼돈(카오스)의 시대와 질서(로고스)의 시대로 구분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질서’라는 말은 개개의 물상들이 고유한 이름을 갖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곧, 사람들은 물상 하나하나의 차이를 변별하기 시작하였고 또 그 하나하나에 고유한 이름을 부여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 하나하나는 곧 이미지의 또 다른 표상인 것이다.

이렇듯, 인류사 가운데서 혼돈의 시기와 질서의 시기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이미지는 과연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흔하디흔한 말 중의 하나인 ‘이미지’를 사전에서는 어떻게 풀이하고 있고, 또 우리들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사전에서는 그것을 ‘영상(映像)’ 또는 ‘심상(心象)’이라는 말로 정의한다. 이 가운데서 ‘영상’은 ‘물체의 상이 비추어진 것’, ‘영사막 따위에 비추어진 상’ 그리고 ‘머릿속에 그리는 모습이나 광경’ 등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심상’은 ‘감각 기관의 자극이 없이 떠오르는 상’이라고 풀이한다. 이와 같은 풀이들을 정리하면, 사람이 감각기관을 통하여 획득한 정보와 그것으로부터 추출된 상이 곧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image)의 어원은 ‘이마고(imago)’이다. 이 말은 원래 ‘인물의 영상’ 또는 ‘초상’을 뜻하는 것이었으나, 미술사에서는 사물 자체의 상 또는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상들도 포괄하고 있다.

이미지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명한 지각 대상물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그것을 파악할 수 있는 최소 조건으로서의 빛도 필요하다. 인간의 감각기관은 그런 조건들이 구비된 후에 비로소 그것을 지각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구비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미지를 획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심상’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감각 기관의 자극 없이 떠오르는 상’이라고 하였다. 그 말은 곧 심상이 머리나 마음 혹은 관념 속에 떠오르는 상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그 속에는 반복된 경험들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지의 종류는 다양하다. 시각을 비롯하여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 등 인간에게 오관이라고 하는 감각기관이 있는 이상, 그 각각의 기관에 의해 형성되는 이미지의 내용은 다르다. 다시 말하자면,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감각 기관에 의해 획득되는 각각의 이미지는 질과 가치 그리고 모양 등이 서로 다르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현상이나 물체를 두고도 그것을 지각하는 사람들의 기질의 차이에 따라서 획득되는 이미지는 천차만별이다. 물론 대상물 자체도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외적인 환경에 따라 그 생김새가 시시각각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 시각 이미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크기나 구체적인 모양 등을 갖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청각이나 후각 등에 의한 소리나 냄새 등에도 독특한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번역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반면에 시각 이미지는 구체적인 윤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특정한 사실을 기록할 수 있으며, 그 정보를 제3자에게 전달하고 또 보존할 수 있다. 그리고 대상물로부터 획득된 감정까지도 표현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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