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맛 시앙(1)
슬라맛 시앙(1)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6.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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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실시한 ‘2011년 경찰청 다문화 치안활동 수기집’ 경찰관 부문 장려작에 당선된 강미경(전북 완주경찰서 정보보안과 보안계)씨의 ‘슬라맛 시앙’을 연재합니다.

● 여경으로 쉽지않은 외사업무 지원

내가 다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10년 3월 외사업무를 담당하면서 부터다. 그때까지만 해도 언론에서 결혼이주한 동남아시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볼때면 굳이 그들을 TV에까지 출연시켜야 하는지…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외사업무에 지원하게 된 것은 여러나라 국가권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국제적인 시각을 가지고 그들의 문화도 알고 싶은 내심 큰 포부가 있어서였다.

대한민국 경찰 조직에서 여자 경찰관이 외근을 하기 쉽지 않다. 보통 사무실 내부에서 근무하는 내근 부서로 배치되곤 한다. 외근부서인 외사업무를 지원했을 때 주위 동료들의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어떻게 여경이 외근을… 잘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버틸까? 여러 사람의 우려스러운 시선을 뒤로 하고 당당히 외사 업무에 첫 발을 내딛었다.

완주경찰서는 외사업무를 혼자 담당하고 있다. 외근이지만 내근도 봐야 하고 만능이 되어야 업무가 순조롭게 진행된다. 다양한 국가권의 사람을 만나보려는 내심 큰 포부도 잠시 묻히는 듯 했다. 특히 최근 들어 다문화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관심의 상승 분위기로 인해 경찰의 다문화 치안서비스 지원이 확대되면서 다문화 관련 업무가 많아졌다. 처음엔 그저 업무로서만 다문화 대상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도 그럴것이 혼자 하기엔 너무 많은 일들이라 깊게 접근할 수 없었다.

● 멘토-멘티로 첫 만남

가장 먼저 한 일은 ‘여경과 결혼이주여성간의 멘토·멘티 결연 맺기’이다.

나의 멘티는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으로 8년전 한국으로 결혼이주 했으나, 남편이 3년전 지병으로 죽고 7살난 아들을 혼자서 키우고 있었다. 낮에는 집근처 단무지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퇴근하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데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며 하소연을 하곤 했다.

멘토로서 그녀의 말은 많이 들어주기로 마음 먹었다. 한국말이 아직 약간 서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둘은 잘 통했다. 가끔 아이 걱정도 하고 앞으로 살아갈 생계에 대해 걱정하기도 하고 필리핀 친청집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 설이나 추석명절 때는 가족이 없어 외로울 것 같아 명절 선물을 주기도 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학용품을 선물하기도 하면서 서로의 벽을 허물어 친밀감을 쌓아갔다. 지난해 여경의 날에는 완주경찰서 여경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격려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집에 방문할 때면 필리핀 남성이 함께 있었다. 그 남성과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올해 초 둘이 재혼을 해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이제 나의 멘티는 퇴근 후 충분한 평안을 느낄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올해 완주경찰서 여직원과 경혼이주여성의 멘토 결연은 전년도 2쌍에서 8쌍으로 확대했다. 실제 활동을 통해 멘토 결연이 이주여성들에게 많은 정서적 안정을 줄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화통화나 가정방문 등 우리에겐 소소한 관심이지만 한국사회에서 그들의 편에 설수 있는 한사람으로 존재함이 큰 심적 지지 기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힘들게 사는 어린 이주여성

다른 멘토 가정방문에도 동행한 적이 있다. 그 여직원의 멘티는 22살의 어린 베트남 이주여성인데 힘들다는 문자가 계속와서 직접 집에 가보고 싶다고 해 아이옷을 준비하고 과일을 사가지고 함께 방문 했다.

멘티 이주여성은 8개월 된 아이와 함께 미리 나와서 우릴 반갑게 맞이했다. 그녀의 집에 도착해서 거주 환경을 보고 여직원과 난 말문이 턱 막혔다. 창문도 없는 어둡고 좁은 반 한 칸에 남편과 아이, 그녀가 거주하고 한 여름인데 바람도 들지 않는다. 더구나 시아버지는 18년전 뇌졸증으로 쓰러지셔서 거동을 못하시고, 시어머니는 시아버지 병수발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렇게 다섯 식구가 어두운 굴속 같은 곳에서 오랜 시간 희망을 잃은 채 암울하게 살아온 것이다. 코리안 드림의 큰 희망을 품고 한국으로 결혼 이주해 온 어린 베트남 여성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김재환 전북 완주署 정보보안과 보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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