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월과 꿈
함월과 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6.2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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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 마을이 있다. ‘함월’이라는 지명 앞에 문득 걸음을 멈춘다. ‘꿈’도 그 옆에 있다.

사람들이 꾸는 꿈에 불가능은 없어 보인다. 사람이 하지 않는 일도, 할 수 없는 일도 없는 것 같다. 어느 날 길을 가다 도심 한가운데 우뚝우뚝 솟아 있는 빌딩과 맞닥뜨리고는 우두망찰한다. 자고나면 스카이라인도 지형도 순식간에 바뀌어 있는 도시는 처음인 듯 낯설기만 하다.

십여 년 전 와봤던 이곳은 태고의 원시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의 변방이었다. 울퉁불퉁한 흙길은 걷기가 불편했고, 뜸직뜸직 있던 오리집을 가끔씩 찾는 사람 외에는 별다른 사람의 왕래도 없던 곳이었다.

옛날부터 움직이는 일은 어쨌든 활발한 에너지가 느껴져 좋아했다. 어릴 때 동네 친구들이 어디론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오가는 일을 얼마나 부러워했던지. 한 곳에 붙박인 정지된 삶은 왠지 답답했던 것이다.

그래선지 형제들 중에서 유독 어른들 꽁무니를 많이 따라다녔다. 5일마다 열리는 장터는 물론, 방학이 돼 먼곳에 있는 시골여행이라도 하는 경우엔 너무너무 신이 나서 밤잠을 설치곤 했다.

초등학교 때 교실 한 쪽에 커다란 ‘지구의’가 놓여 있었다. 선생님은 사회시간이면 그 지구의를 가지고 수업을 하셨는데, 둥근 공 표면에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나라들이 촘촘했다. 손가락 반 마디도 안되는 우리나라, 그 속에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엄마를 졸라 기어코 작은 ‘지구의’ 하나를 샀다. 나는 그것을 책상 위 가장 눈에 잘 띄는 장소에 올려놓고 틈만 나면 빙글빙글 돌려 보고는 했다. 그 지구의는 내 꿈의 동그라미였던 것이다.

아는 동생 중에 참 부럽게 인생을 운영하는 이가 있다. 그녀는 늦게 결혼을 했는데,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틈만 나면 세계 여행을 다닌다. “돈은, 벌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라는 지론을 실천하는 정말 현명한 동생이다.

지금은 좋아진 국력 덕에 너도나도 해외여행을 많이 다닌다. 하지만 이십년도 안 된 지난 날, 대부분의 소시민들에게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그리 만만치 않은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마음껏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웠다. 그래선지 직장 때문에 하는 잦은 이사도 힘들어하기 보다는 내심 즐거워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지막 이사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는 또 한 번의 이사를 했다. 이곳 ‘성안’은 참 조용하고 쾌적한 동네다. 성안 둘레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딱딱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를 심심찮게 만난다. 길 한 가운데를 엉금엉금 기어가는 두꺼비와, 와글대는 개구리 울음소리,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훨훨 날다가 논 가운데 내려앉는 백로의 모습은 바로 선경이다.

오월의 ‘아까시’ 향과 줄장미, 찔레향이 진하게 코끝을 어지럽힌다. 때죽 나무도 하얀 꽃을 매달고 있다. 야생의 나무들 마다 피어 있는 꽃과 발밑의 자잘한 들꽃은 참으로 정겹다. ‘마고할미’와 ‘삼천갑자 동방삭’의 전설이 있는 ‘숯못’에는 자라와 잉어가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나는 마치 전설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잘 닦여진 함월 운동장에는 발에 공을 매달고 날아오르는 백로 상이 있다. 그리고 꿈도 함께 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는 딸의 손을 잡고 거니는 남자, 세발자전거를 타는 아이, 롤러스케이트를 배우느라 진땀을 흘리는 아이, 공을 차는 사람, 운동기구에 매달린 사람, 배트민턴을 치는 사람들 사이로 청설모가 뛰어 다닌다.

서녘으로 해가지고 있다. 넓은 운동장에 웅성대는 소리들은 숲속으로 묻혀들고, 사람은 자연의 일부가 된다. 그들 가슴속에는 각각의 꿈이 있을 것이다. 그 꿈들로 이곳은 늘 활기가 넘친다. 꿈은 분명 꾸는 자의 몫이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매 한 마리가 유유히 날고 있다. 나는 고요한 매의 비상에 오래토록 시선을 고정 시킨다.

전해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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