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되는 다문화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되는 다문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6.1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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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실시한 ‘2011년 경찰청 다문화 치안활동 수기집’ 경찰관 부문 최우수작에 당선된 김재환(강원 속초경찰서 보안과 경장)씨의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되는 다문화’를 연재합니다.

지난 4월 양양군청 여성회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계장님, 너무 안쓰러운 결혼이민자가 있어요. 오셔서 저희 좀 도와주셨으면 하는데요.”

● 사별로 어려워진 결혼이주여성

캄보디아 태생의 링따에는 지난 2010년 6월 예쁜 가정을 꾸려가겠다는 소박한 꿈을 안고 낯선 이국 땅 한국에 첫 발을 딛었습니다. 낯선 타국이었지만 남편의 사랑으로 링따에는 점차 한국 생활에 익숙해 질 수 있었고 그러던 와중 사랑의 결실인 아이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캄보디아 새 신부의 행복한 신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평소 직업을 구하지 못해 자신의 처지를 비관, 가끔씩 우울증에 시달리던 남편이 어느 날 자살했습니다.

그렇게 링따에는 결혼 6개월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친척, 친구하나 없는 한국 땅에서 자신과 뱃속의 아기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링따에의 시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가누기에 앞서 갓 시집온 어린 외국인 며느리에게 죄를 지은 것 같아 링따에에게 패물과 옷가지를 챙겨주며 “남편없이 타국에서 혼자 고생하며 살지 말고 모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라”며 그녀를 캄보디아로 돌려 보냈습니다.

그러나 링따에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짧았지만 사랑했던 남편의 아기가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고 자신을 생각하는 시어머니의 마음,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접하며 키워온 한국 사랑을 쉽게 져 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편의 사망으로 링따에는 그 누구의 보호도 받을 수 없고 외국인으로서 국내의 그 어떤 사회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남편의 빈자리를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당장의 생계, 앞으로 태어날 아기의 출산 문제 양육 등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 희망의 등불 밝혀준 고마운 이웃

마침 이 같은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외국인도움센터 운영자 양양군청 여성가족담당(이영선)은 속초경찰서 외사계에 이 사실을 알려오게 된 것입니다.

저희는 우선 가장 시급한 출산비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링따에는 아직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고 또 뱃속의 아기 역시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저희 외사계는 양양군을 찾아가 긴급복지비를 병원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이야기 했습니다.

한편 속초경찰서 직원들, 양양군 여성회 및 청년회의소 회원들의 기부품으로 기저귀, 이불, 욕조, 젖병 등의 출산용품을 마련했고 속초서 외사계와 결연을 맺은 양양군 청년회의소(회장 최태영)는 링따에가 살고 있는 월세를 대신 내주겠다는 큰 결정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출산 후 링따에의 경제적 자립을 도울 수 있도록 저희 외사계는 속초 하도문영농조합 일자리를 주선, 스스로 한국에서 독립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 힘모아 이뤄낸 지원에 보람 가득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라고 생각했던 링따에 돕기는 경찰, 양양군, 지역 봉사단체의 후원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다문화 치안시책을 시행하며 저희 경찰이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인원, 예산, 시간… 사실 그 어떤 것도 다문화 활동을 하는데 있어 풍족하고 여유있는 것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 링따에 지원을 경험하며 저희 외사계 직원들은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안되는 이유가 백가지 만가지라도 주어진 여건 속에서 뜻이 있는 사람이 힘을 모으면 그 힘은 누군가에게는 정말 큰 삶의 빛이 될 수 있고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링따에의 시어머니는 “비록 자식은 이 세상에 없지만 주위의 관심과 도움으로 며느리가 새 삶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며 감사하다는 말씀을 연신하셨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저희 경찰이 다문화 활동을 하는 목적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도 저희 속초경찰서는 민관이 하나되어 저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소외된 이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나누겠습니다.

<김재환 강원 속초署 보안과 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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