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사 터의 부처님 사리탑
태화사 터의 부처님 사리탑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6.1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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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사는 중구 반탕골(태화동)에 세운 신라시대의 절이었다.

덕만(德蔓)이라 불렀던 진평왕의 딸인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당시 자장(慈藏) 스님이 부처님의 불력에 힘입어 신라의 국력을 높이려고 중국 땅 당(唐)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 부처님의 치아 등 사리(舍利) 100립(粒) 가운데 일부를 태화사에 모시기로 계획했다. 돌로서 종(鐘)모양으로 만든 사리 보관 탑 외벽에 12지신상(支神像)을 장식하고, 탑 몸에 별도의 공간인 감실(龕室)을 두고 불사리를 소중히 모셨다고 믿는다. 그 태화사지12지신상사리탑은 학성공원에서 자리를 옮겨 현재 울산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십이지상에 관련하여 그 기원은 정확하진 않으나, 12동물은 방위와 시간을 맡아 지키는 신을 상징하며 이미 인도 불교를 도입하기 사작한 중국 한나라(漢, 기원전 206~220년) 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계에선 십이지신상은 부처의 사리가 안치된 공간을 수호하면서 나아가 불국토를 수호하려는 당대인들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한다.

일부에선 태화사지12지신상사리탑이 임금님의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할 즈음 지방세력이 득세하는 선종(禪宗) 시대 어느 스님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라 하고, 문화재 지정 명칭도 승탑으로 돼 있으나, 사리탑(=부처님사리탑)임을 알 수 있는 그 연유를 찾아가 보기로 한다.

삼국유사 권 제3 탑상 제4 황룡사9층탑조에 사리와 관련된 기록에 따르면,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재위 632~647년) 시절, 자장스님이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은 사리 100립과 부처님이 입었다는 붉은 가사 한 벌을 가지고 귀국했다. 사리는 645년에 세운 황룡사의 9층탑의 찰주 속에 넣었으며, 646년 세운 통도사의 금강계단에는 사리와 가사,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자장 스님이 세운 태화사의 탑에 사리를 나누어 모셨다.

이로써 태화사 연못에서 만난 신인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 약속을 실행했다. 탑을 세운 후 천지가 비로소 태평했다고 한다. 현재 통도사의 금강계단에 모신 사리탑만 보존되고 있다.

신라국이 외국과 교류를 하기 위해선 항구도시 울산지역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태화사12지신상의 사리탑 감실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심은 당시 신라왕실의 당연한 역사(役事)였을 터이다. 울산을 통과하여 신라국에 출입을 하는 경우에는 입실(入室) 지역에 세운 관문성(關門城)을 지나야 했다. 신라국의 안위는 곧 울산지역의 안위와 함께해야 했다.

호국사찰 태화사에 모신 부처님사리탑을 두고 승탑(僧塔)이라 하는 그 이유 중 하나로서 예를 들기를, 울주군 율리 청송사지승탑과 비슷한 종 모양임을 내세우기도 한다.

울주군 웅촌면 고연리에 원효(元曉, 617~686년)스님이 세운 운흥사와 통일신라(676년 이후) 때 세운 청량면 율리 청송사의 터에 남아 있는 두 곳의 조선시대 승탑이 태화사지12지신상사리탑과 비슷한 종형임을 내세워 태화사지12지신상승탑이라고 한다면, 혹여 조선시대 스님들이 부처님을 닮고자 한 불심의 발로에서 그들 스승의 사리를 태화사지12지신상사리탑과 비슷한 모양의 종형으로 제작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

선종으로 대표적인 석남사에 824년 선종 9산을 세운 도의선사의 사리가 보관 된 승탑과 망해사의 2기의 승탑 그리고 전국의 선종스님들의 승탑과 비교하면 태화사지의 사리탑은 전혀 모습이 다르다. 오히려 그들 승탑은 나름대로 거의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나라 임금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王卽佛)을 표방한 신라가 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김유신을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하고, 묘지의 호석을 12지신상으로 했다. 그 후 여러 왕릉의 호석을 십이지신상으로 둘렀음을 참고한다면, 불가분(不可分) 태화사지12지신상사리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럼에도 매우 불충한 가정을 해 보면, 천재지변에 의해 통도사의 금강계단의 사리탑이 그 자리를 떠나 흩어져 있는 상태에서 수습하여 모셨을 때 지금과 같은 논리라면 틀림없이 어느 큰스님의 승탑이라고 지정했을 수도 있다고 봄은 비약일까?

태화사12지신상사리탑은 자장 스님이 가져온 부처님 사리를 나누어 모신 것이다. 선종이 일어나기 230여 년 전의 일이다. 울산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보물 제441호 태화사지12지신상사리탑은 비록 사리가 유실되고 없으나 사리탑이라고 다시 정리해 본다.(현재의 태화사와 관련 없음)

이참에 세상사에서 기존의 어떤 틀에 비교하여 만사를 재단함은 참으로 아둔한 실수를 낳을 수도 있음을 세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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