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년전 고래잡던 잠재력에 불 지펴 성공신화 이룩
수천년전 고래잡던 잠재력에 불 지펴 성공신화 이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5.2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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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입지 선정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무슨 말이냐고? 40년 전에 현대중공업의 부지를 선정한 일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이자 의문 가운데 의문으로 남아 있는 것이 부지 선정의 동기이다. 무엇이 현대중공업 창설자의 발걸음을 울산으로 이끌어 들인 것일까? 그의 고향이 울산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또 그곳이 그의 가족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닐 사건이 있었던 곳도 아닌 듯하다. 그러므로 울산은 표면적으로는 그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 같다. 그런 그가 울산을 선택하여 중공업단지를 조성하였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연관성을 찾으려 하여도 개인적인 관련성은 없는 듯하다. 도대체 그는 1970년대 초의 울산에서 어떤 비전을 보았던 것일까? 어떤 이유가 그를 울산만으로 이끌어 들인 원동력이었을까?

● 40년전 울산서 세계조선사업 꿈 심어

40년 전의 울산만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공장을 짓는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공장을 지어놓고도 그가 내세울 변변한 조선의 실적은 찾을 수 없다. 그가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회고담으로 들려 준 지폐 속의 거북선 하나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그렇게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인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학교 교육을 특별히 많이 받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선박 제조에 관한 특별한 지식을 갖추고 있지도 않았다. 또한 울산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달통한 자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가 변변한 인프라 하나 갖추어지지 않은 허허벌판에다 공장을 지을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불과 40년이 지난 지금, 그가 꾸었던 꿈은 현실로 탈바꿈되었다. 그를 모험의 세계로 이끌었던 비전은 그의 소망대로 이제 실현된 것이다. 그야말로 유토피아가 구현된 것이다. 40년 전만 하여도 불가능에의 도전이라 보였던 그의 꿈은 이제 실현되어 세계 최대의 조선단지가 되었다. 그가 걸어온 발자취는 이제 새로운 신화가 되어 비단 울산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인들 속에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시대를 앞서갔던 그의 놀라운 통찰력의 근원은 과연 무엇이었던 것인가? 그는 울산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그가 회고한 지폐 속의 거북선 이야기를 놓고 본다면, 당시의 그는 대곡리 암각화 속의 고래잡이 배 따위는 모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울산에 조선소를 세운 것은 정말로 탁견 중의 탁견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울산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바다로 나아가 고래를 잡았던 경험을 간직한 도시이다. 그 도시에는 스스로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웠던 사람들의 후예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쩌면 본능적으로 울산만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꿈, 즉 바다에 대한 갈망을 엿보았을지도 모른다. 울산만 사람들의 DNA 속에 면면이 이어져 오던 바다와 고래잡이에 대한 열망, 저 넘실대는 파도를 넘어 고래를 향해 돌진해 나갔던 그 조상들의 기상이 아직도 그 후예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분명히 그리고 또렷이 그가 보았던 확신을 바로 울산사람들이 구현해 내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선사시대부터 배 만드는 기술력 겸비

그렇다. 무슨 일을 하던 간에 그 속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배를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배의 구체적인 이미지 속에는 그것으로써 하고자 하는 일들이 깃들어 있다. 그것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무언가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배가 필요하였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반드시 건너야할 강이 있어야 하고 또 나아가야 할 바다가 있어야 한다. 강이 있고 또 바다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 강이나 바다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절실한 이유가 따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울산에는 일찍부터 바다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래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동기와 목적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제작할 원자재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이 없다면, 마찬가지로 꿈을 실현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선사시대의 울산사람들은 동기와 목적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데 필요한 목재와 더불어 그것을 가공하여 배를 만드는 기술력을 겸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바로 대곡리 암각화 속의 고래잡이 배들이다. 비록 프로필로 그려진 배이기는 하지만, 이물(船首)과 고물(船尾), 배를 타고 있는 사람과 그들이 젓고 있는 노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바다로 나갔는지의 이유는 작살을 들고 있는 작살자비의 손으로써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문명 발상지의 입지 조건은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와 같은 공간의 입지조건은 언제나 물이 풍부하여야 하며,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교통요충지여야 한다. 게다가 사람들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량과 각종 원자재들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한 곳은 대대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개개 구성원들은 무리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저마다 특별한 기술력을 겸비하여야 하며, 그에 따라서 직업과 계급이 분화되었던 것이다.

● 그 땅 지키던 ‘후예들’ 비전 원동력

물론 선사시대의 울산 사람들은 그와 같은 조건이 갖추어진 곳에서 스스로 그와 같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울산은 바다가 있고 또 그곳으로 나가는 강이 있으며, 동시에 뭍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 바다와 강이 있었다. 그 바다의 끝에는 고래들이 떼를 지어 자맥질을 하고 있었고, 그 강과 잇닿은 산등성이와 그 사이의 계곡 그리고 들판 등지에는 산짐승과 더불어 각종 먹을거리들이 자생하고 있었다.

선사시대 울산만 사람들은 일찍부터 고래의 효용성을 파악하고 있었고, 또 그것을 잡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 노력은 다름이 아닌 배 만들기였다. 고래의 무진장한 효용성은 배를 만드는 직접적인 동인이었으며, 배는 고래를 잡기 위한 수단 가운데서도 필수적인 것이었다. 대곡리 암각화 속에는 여러 척의 배들이 그려져 있다. 물론 그와 같은 배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도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와 같은 배들이 어떤 공정을 거치면서 제작되었는지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들을 수행하였던 사람들이 바로 선사시대 울산만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후예들이 변함없이 그 땅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후예들은 배 만들기와 바다로 나가기 그리고 고래잡기 등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의 창업주는 바로 그 울산 사람들의 DNA와 무의식 속에 감춰져 있던 바다에 대한 갈망, 그 도화선에 불을 붙임으로써 성공신화를 이끌어냈다. 그것이 바로 배 만들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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