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부터 얻은 선물
나무로부터 얻은 선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2.05.2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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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해열과 진통을 위해 사용했다는 살리실산이란 약물은 버드나무 껍질에서 즙을 빼낸 것이라 한다.

이 물질을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엘이 인공적으로 합성해 만들어 낸 아스피린(Aspirin)은 인류가 만들어 낸 최고의 영약(靈藥)으로 꼽힌다. 이후 사람들은 꽃과 식물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으리라.

조선 정조 때 시인이며 사상가인 박제가(朴齊家)가 북쪽(중국)을 알아야 된다고 외치며 지은 책 북학의(北學議)에 이런 글이 나온다. ‘어린 뽕나무는 잎이 더디게 나서 기다리기가 어렵고, 늙은 뽕나무는 병들어 잎이 작고 오디(열매)가 많다’며 개량된 뽕나무를 모래밭에 심었다. 박제가는 이 이론을 명나라 서광계(徐光啓 1562~1633)가 편찬한 농정전서(農政全書)에서 옮겨 온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시장에 가면 ‘천디호박’이 비닐 랩에 똘똘 쌓인 채로 팔리고 있다. 아예 호박이 다 자란 크기에 맞춘 포장용 비닐 속에 넣어 키운 것이다. 호박은 어린 것을 먹어도 맛이 있고, 늙으면 늙을수록 단맛과 짙은 맛을 간직하기에 더욱 선호하는 식물이다. 그래서 어린 ‘애호박’과 늙은 ‘누런디이’도 골고루 얻기 위해 개량된 것이 ‘천디=천덩이’ 호박이라고 짐작한다.

이른 아침 샛노랑과 맑은 주황빛이 고루 물든 호박꽃이 좋아서 한동안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호박꽃 보는 재미에 푹 빠진 적도 있었다. 아침이슬에 갓 세수한 어린 순은 물기를 머금은 채 생얼이 부끄러워 곰지락곰지락 숨어드는 듯 하면서도 그저 반기곤 했다.

아토피가 심한 옆집 아이의 엄마는 3년전 이사 오면서 집을 새로이 단장했다. 그런데 며칠 전 다시 이사 갔다. 집 단장을 하면서 새로운 인테리어 재료에 포함된 새집중후군을 불러들인 것이 화근이었다. 해서 여러 사연에 의해 시골로 가지는 못하고 아예 헌집을 찾아 옆 동으로 옮겨갔다.

우리는 숲에 간다. 거기서 뿜어내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온 몸으로 마시기 위해서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병원균, 해충, 곰팡이 따위에 저항하려고 분비하는 물질로서 삼림욕을 통해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 기능이 강화되며 살균 작용도 이뤄진다고 한다. 그리고 집안에서 발생되는 독성물질을 중화하는 작용도 한다는 글을 읽고나서, 편백나무 둥치를 집안에 들여다 놓자고 한 적이 있었으나 그만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레이철 카슨(1907∼1964)이 쓴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나무를 아는 것은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고’ 일러 준다.

조선시대 세종(世宗) 임금으로부터 5세(五歲) 신동(神童)이라 하여 사랑 받았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겪으면서 방외(方外)의 거사로서 유랑할 때 군주가 인재를 고르는 일을 목수와 의사의 일에 비유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한 말을 남겼다.

“나무를 잘 아는 목수는 나무의 크기에 따라 대들보와 기둥으로 쓰고, (중략) 자그마한 나뭇가지 하나 널빤지 한 쪽이라도 쓸 만한 것은 모두 그에게는 좋은 재목이 될 것이다. 약을 잘 아는 의사는 약재를 정련하고 배합하여 단약과 환약, 탕약과 가루약을 만들며 모두 좋은 약재로 쓰인다. 사람들의 재능과 알맞은 직책을 안다면 어찌하여 지금 시대에 인재가 없다는 걱정을 하는가!”라는 것이었다.

반구대암각화 현장에 가면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주식의 재료였다는 꿀밤이 열린 나무들을 종류별로 다 볼 수 있다. 흔히 ‘도토리 6형제’라 불리는 참나무 6종류를 다 볼 수 있는 곳이 흔하지 않은데 이곳에선 다 볼 수 있다.

오래 전 짚신을 신고 다닐 때 신 밑에 깔았던 크고 길쭉한 신갈나무, 떡을 싸거나 머슴의 밥을 담아 주었다는 손바닥만큼이나 넓적한 잎새를 지닌 떡갈나무, 수피(나무껍질)가 갈갈이 찢어진 갈참나무, 수피를 코르크(포도주 병 뚜껑) 재료로 사용한다는 굴참나무, 수피가 약간의 은빛을 내면서 비교적 잎의 크기가 작아 쫄병이란 별명을 얻은 졸참나무, 임금님의 수라상에 이 열매로 묵을 만들어 올렸다는 상수리나무, 그리고 참나무과는 아니면서 참나무 잎새와 거의 비슷한 모양의 잎새를 지닌 자작나무과의 개암나무를 포함해 참나무의 변종도 보인다.

가을이 오면 모든 식물이 울긋불긋한 자신만의 독특한 옷으로 갈아입으며 뽐낸다. 이때가 되면 참나무가 온 여름 이글이글 타는 듯한 뜨거운 태양열을 견디며 지켜온 자신만의 인내가 영글어 확실한 자신의 이름을 밝힐 것이다. 살아선 사람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어 주었고, 죽어서도 인간의 건강을 보살피기위해 영지버섯이 자라는 터전이 되도록 둥치를 통째로 내어준 나무가 참나무다.

전옥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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